당구 세리머니 수원 삼성의 공격수 서동현(오른쪽)과 미드필더 박현범과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당구 세리머니 수원 삼성의 공격수 서동현(오른쪽)과 미드필더 박현범과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수원 삼성


경기 전 선수대기실에서 팀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던 제주 유나이티드 알툴 베르날데스 감독의 얼굴은 핼쑥했다. 지난달 15일 대전 시티즌과의 경기에서 2-0의 승리를 거둔 이후 2무5패라는 저조한 성적에 대한 반응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얼굴이 핼쑥해진 것 같다"고 질문을 던졌다.

알툴 베르날데스 감독의 고민

알툴 감독은 그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웨이트트레이닝 같은 운동을 많이 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별것 아니구나 하고 다음 질문을 하자 숨겨뒀던 알툴의 고민거리가 숨김없이 터져나왔다. 주요 선수들의 부상에서부터 일부 외국인 선수의 기량 미달, 제주 선수들의 체구가 타 팀에 비해 조금 작다는 사소한 이야기까지 어려운 팀 사정이 나열됐다.

핼쑥해진 얼굴에는 분명 숨겨진 이유가 있었던 것. 팀에 대한 고민을 열거하던 알툴은 이내 상대팀에 대한 부러움으로 연결됐다. 그는 상대를 가리켜 "시스템적으로 배워나가야 할 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제주에 모인 선수들도 상대팀만큼 최고의 선수들"이라고 치켜세웠다.

이런 알툴 감독의 고민과 칭찬에도 불구하고 잘나가는 상대를 잡기에는 힘겨웠다. 제주는 26일 저녁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삼성 하우젠 K리그 2008 7라운드 수원 삼성과의 경기에서 1-2로 패하며 무패행진의 제물이 됐다.

위안거리를 삼는다면 연속 무실점 기록과, 무실점 연승, 경기당 2득점 이상 무실점 연승을 깼다는 것이다. 수원은 제주와의 경기에서 후반 29분 조용태의 뒤꿈치 패스를 받은 서동현이 로빙슛으로 골대를 가르며 1-0, 선제골을 넣은 뒤 후반 31분 이관우의 코너킥을 마토가 컨트롤 해 박현범의 머리에 연결 2-0을 만들었다.

2-0으로 앞서자 무실점기록 경신 여부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그 기록이 깨지는 데는 8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제주는 후반 39분 수원의 마토가 사타구니 부위 치료를 하러 그라운드 안팎을 오가는 사이 조형재의 패스를 받은 심영성이 골 지역 정면에서 오른발로 만회골을 넣으며 7경기 연속 무실점 연승을 하던 수원의 기록행진을 멈추게 했다.

기습 카드섹션 이날 수원 서포터 <그랑블루>에서는 경기 시작 전 보여주던 카드섹션을 경기 도중 기습적으로 시도했다. 카드섹션은 2004, 2006년 각각 안양과 부천에서 서울, 제주로 연고이전 한 FC서울, 제주 유나이티드를 비하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 기습 카드섹션 이날 수원 서포터 <그랑블루>에서는 경기 시작 전 보여주던 카드섹션을 경기 도중 기습적으로 시도했다. 카드섹션은 2004, 2006년 각각 안양과 부천에서 서울, 제주로 연고이전 한 FC서울, 제주 유나이티드를 비하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 이성필


"질 때도 제주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수원을 '시스템적으로 배워나가야 할 팀'이라 정의한 알툴 감독의 말을 뒤집어 보면 제주의 조직력이나 경기 자세가 아직까지 덜 완성됐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알툴 감독은 "선수들의 정신력이 좋아야 한다. 질 때도 제주가 강하다는 것을 상대에 보여줘야 한다"며 연이은 무승에 안타까워하는 선수들의 정신 자세를 지적했다.

제주는 부산 아이파크, 경남FC와의 네 차례 경기에서 모두 1골로 패하거나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아슬아슬한 경기를 보여줬다. 지난 20일 FC서울과의 경기에서도 1-1로 대등하게 경기를 하다 후반 39분 교체되어 들어온 서울의 이승렬에 1골 1도움을 헌납하며 스타로 만들어줬다.

제주는 수원과의 경기에서 74분 동안 실점하지 않았다. 수비벽을 두껍게 해 지난 컵대회에서 0-3으로 완패한 것을 다시 맛보지 않으려는 것과 더불어 빠른 시간 내 골을 넣어 기록을 이어가려던 수원의 조바심을 적절히 이용했다. 수원의 왼발잡이 수비수 마토가 두 번이나 오른발로 슈팅해 골 지역과 먼 곳으로 공을 흘려보낸 것이 그랬다.

그래도 수원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수원은 10경기 동안 3실점밖에 하지 않은 안정적인 플랫 포를 구축하고 있다. 플랫 포 중 세 명이 중앙수비 요원이지만 상대의 공격수 배치에 따라 언제든 측면도 소화 가능하다. 플랫 포의 바로 앞에는 공수가 적절히 분배된 중앙 미드필더들이 배치되어 있고 노련미와 패기가 조화된 측면 미드필더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 골 맛을 제대로 보는 공격수들을 지원한다.

정규리그 개막 후 10경기(컵대회 포함) 동안 네 명의 선수가 단 한 번도 교체되지 않고 경기를 치른 체력도 있다. 골키퍼 이운재를 비롯해 수비수 곽희주, 마토, 미드필더 조원희가 단 한 번도 교체되지 않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900분을 소화한 것. 추가시간까지 포함하면 이들의 경기시간은 1000분에 가깝다. 한 경기를 더 뛴 거나 마찬가지.

수원의 조원희는 "기록은 언제나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도전을 하면 된다. 실점했지만 우리 수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며 여유를 보였다. 알툴 감독이 선수들에게 원하는 것이 바로 조원희 같은 여유와 동료에 대한 믿음, 정신력이다.

그나마 알툴 감독에 희망적인 것은 수원 신영록과 함께 지난해 FIFA(국제축구연맹) U-20(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던 공격수 심영성이 알툴 감독이 준 기회에서 골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부상중인 구자철과 경고누적으로 빠진 전재운까지 돌아온다면 43일 동안 무승으로 핼쑥해진 알툴 감독의 얼굴에도 미소가 돌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경기결과

수원 삼성 2-1 제주 유나이티드(득점-후29, 서동현 도움:조용태 후31, 박현범 도움:마토<이상 수원 삼성> 후39, 심영성 도움:조형재<이상 제주 유나이티드>)

수원 삼성
골키퍼-이운재
수비수-송종국, 곽희주, 마토, 이정수
미드필더-박현범, 조원희, 김대의(후8, 이관우)
공격수-신영록(후11, 서동현), 루이스(후25 조용태), 에두

제주 유나이티드

골키퍼-조준호
수비수-변성환, 조용형, 이정호, 강동구
미드필더-호물로(후41, 김영신), 오승범, 이동식, 조형재
공격수-빠찌(후34, 심영성), 조진수
알툴 베르날데스 수원 삼성 제주 유나이티드 박현범 서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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