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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단 한편도 추리소설을 쓴 바 없으며 통속적 역사소설 또한 쓴 바 없습니다. 아마도 김성종이라는 추리소설가와 나 김성동을 착각하여 한 말인 듯한데(실제로 그런 오해를 받은 바 있음. 독자들한테서) 김성종과 김성동을 혼동한다는 게 이른 바 평론가로서 말이 됩니까?" (작가 김성동)

 

창작과비평사와 더불어 한국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문학과지성사가 지난 해 11월 끝자락 펴낸 문학선집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세계를 잘못 평가해 출판계는 물론 해당 작가와 문단에 큰 파문이 일고 있다.

 

문학과지성사(대표 채호기, 이하 문지)는 지난 해 11월 26일 펴낸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소설2>(이하 소설2)에서 <만다라> <국수>의 작가 김성동을 '생계를 위해 문학의 순수성과 관련된 본격문학에 집중하기보다는 추리소설을 창작하거나 신문에 역사소설을 연재'하는 작가라고 평가 절하했다.

 

바둑 소재 작품 쓴 적 없는데, '바둑 소설 작가'?

 

<소설2> 661~663 페이지에 실린 작가 김성동의 '작품세계 해설'(충북대 국문과 이익성 교수)에는 '김성동의 작품이 지향하는 세계는 구도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것으로, 불교적인 세계나 바둑을 소재로 하는 일련의 작품이 그러한 경향을 대변한다'라고 실려 있다.

 

작가 김성동(61)은 이에 대해 "평자라는 사람이 작품을 보는 눈은 다 다를 것이므로 어떻게 평하든 그것은 자유이겠으나, 이 사람은 '바둑을 소재로 하는' 작품을 쓴 바 없다. <오막살이 집 한 채>와 <국수>에서 바둑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것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를 위한 하나의 작은 소도구에 불과할 뿐 그 소설의 주제나 본 줄거리와 깊은 연관이 없다"고 못박았다.

 

작가는 이어 "이러한 상식적 소양에 속하는 것을 가지고 '바둑을 소재로 하는 일련의 작품이 그러한 경향을 대변한다'고 해놓았으니, 이 사람이 마치 '바둑소설'을 쓰는 작가인 줄 독자들이 알지 않겠느냐"며 "이익성이라는 사람 온전한 정신이냐? 이런 글을 싣는 문학과지성사라는 출판사의 양식은 또 무엇이냐? 격렬한 분노를 넘어 통절한 슬픔에 젖게 된다"라고 분개했다.

 

<소설2>는 작가 김성동의 소설집에 대해서도 '구도적인 경향을 종교에서 바둑으로 관심영역을 확장하여 <국수>와 같은 작품을 창작하기도 하고, 사회적 관심을 보인 <영부인 마님 정말 너무해요>와 같은 작품 등을 발표하였다'는 해설 아닌 해설을 싣고 있다.

 

작가 김성동은 이에 대해 '<영부인 마님 정말 너무해요>라는 작품을 쓴 바가 없다며 그 책은 80년대 초중반쯤 신원문화사인가 하는 출판사에서 여러 작가들의 단편인가 꽁트인가를 모아 낸 책 제목이었음'을 밝힌 뒤 그 책의 지은이 란에 아마 '김성동 외 지음'이라고 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작가는 문지를 향해 "이처럼 아주 기본적 소양도 없고 문학의 자세도 되어 있지 않는 평론가(?)의 글을 해설이라고 달아놓은 문학과지성사의 양식과 양심, 그리고 문학적 자세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통렬하게 묻는다"고 재차 강조했다.

 

"소설 읽지도 않고, 신문 기사 제목으로 해설 쓰나?"

 

또 작가 김성동의 단편소설 <오막살이 집 한 채>에 대한 해설에서 이익성 교수는 '이 소설이 발표된 시기가 1982년임을 고려할 경우, 이 소설은 1980년대 중반기에 문단에서 유행병처럼 발표된 광주민주항쟁과 관련된 후일담 소설'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작가 김성동은 이 작품해설에 대해서도 <오막살이 집 한 채>는 특정한 시대배경을 드러내지 않는다며, 억압과 불평등이 있고 그것에 항거하는 깨어 있는 정신이 있는 세상이라면 언제 어느 때라도 상관없는 일 아니냐며 "굳이 말하자면 6.25사변 직후가 되나 6.25를 전후로 한 일련의 연작소설 가운데 한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광주항쟁이 아무리 참혹한 민족사의 비극이었다지만 모자가 깊은 산속에서 기약 없이 숨어살 만큼한 상황은 아니었다. 이00이라는 이는 이 소설을 읽어보지도 않고 어떤 신문기사 제목만 보고 해설을 쓴 것으로 보이니, 이런 엉터리 글이 어디에 있다는 말이냐. 작가에 대한 아무런 관심도 애정도 없이 이런 엉터리 글을 악의적으로 폄하하는 글을 쓰는 자가 평론가라니, 격렬한 분노를 느낀다."

 

단편 <오막살이 집 한 채>는 동무 하나 없는 깊은 산 속 오막살이 집 한 채에 사는 아이(영복) 혼자 바둑 두는 것을 보는 어머니가 어디론가 끌려간 채 돌아오지 않는 지아비를 그리워하던 중 다리를 삔 중년의 사내가 찾아와 영복과 바둑을 두다가 다음 날 형사들에게 영복의 엄마와 함께 잡혀간다는 내용이 뼈대를 이루고 있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은 지난 1999년도 끝자락에 기획을 시작해 9년 만인 2007년 11월 26일 모두 네 권(시, 소설1.2, 북한문학)으로 출간되었다. 시는 최동호 신범순·정과리·이광호, 소설1권은 조남현·홍정선, 소설2권은 우찬제·김미현, 북한문학은 신형기·오성호·이선미씨가 엮었다.

 

작가 김성동은 지난 1월 7일, 작가와 작품 해설에 대해 잘못된 점을 조목조목 따지는 항의편지를 문지에 보내며 ▲이 사람의 소설을 선집에서 빼줄 것 ▲빼는 것이 곤란하면 해설을 다른 사람이 다시 쓸 것을 요구했다.

 

"몸 전체를 붓 삼아 이 참혹한 절망의 분단시대, 절망의 신자유주의 시대를 뚫고나가 보려는 진정한 작가에 대한 중대한 모욕과 모멸이다. 참혹한 모욕을 당한 작가가 취할 수 있는 행동에 무엇이 있을까. 분하고 원통해서 소주만 마시고 있다. 잠을 못 이루고 있다. 문학과지성사의 빠른 답신을 기다린다."

 

문학과지성사 측, "있어선 안 될 큰 실수"

 

이에 문지는 지난 1월 18일 편집주간 김수영의 이름으로 "있어서는 안 될 큰 실수였다. 엮은이들과 급히 모여 상의를 한 결과 문제가 된 이익성 교수의 글을 삭제하고, 엮은이 중의 한 사람인 우찬제 교수가 다시 해제를 작성하여 책을 새로 만들기로 결정했다"고 통보했다. 문지는 이와 함께 "2월 중순께 우 교수의 해제가 완성될 듯하다. 원고가 작성되면 먼저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수록하도록 하겠다"는 답신을 작가에게 보냈다.

 

하지만 작가 김성동은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지 측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한 상태다. 따라서 작가는 문지 측에 ▲서점에 깔린 책 부수와 판매부수 공개 ▲서점에 깔린 <소설2>의 전량 회수를 요구할 계획이며, 명예훼손에 따른 법적 대응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지 채호기 대표는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우리 편집주간이 있으니까 회사로 전화하라"며 전화를 끊었고, 문제의 해설을 쓴 이익성 교수는 기자가 몇 차례에 걸쳐 전화인터뷰를 시도했으나 끝내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지 김수영 편집주간은 2월 중순 우찬제 교수의 해제를 받아 책을 새롭게 만들기로 약속한 것에 대해 "우찬제 교수의 글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안 들어와서 그렇다. 책 판매내역은 빠른 시일 내 작가에게 알려드릴 것이다"라며, 책 전량회수에 대해서는 "창고에 있는 것은 교체하라고 했고, 서점에 깔려 있는 것은 회수에 문제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사실이 문단에 알려지자 시인, 작가들은 한결같이 "인문학의 위기라더니, 문지가 인문학을 깡그리 무너뜨렸다. 문지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김성동을 파괴했다.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문지가 어떻게 이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느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국립대 국문과 교수란 사람까지 이러하니, 대체 누굴 믿을 수 있겠느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문학과지성사는 1970년 가을, 문학평론가 김현, 김병익, 김치수, 변호사 황인철씨가 창간한 계간문예지 <문학과지성>을 주춧돌로 삼아 1975년 12월 김현, 김병익, 김치수, 김주연, 오생근이 창립한 출판사다. 문지는 1980년 언론기관통폐합 조치로 강제 폐간된 뒤 무크지 <우리세대의 문학> <우리시대의 문학>을 발행하다가 1988년 봄호부터 제호를 <문학과 사회>로 바꾸어 재창간했다.

 

한편, 작가 김성동은 이번 사건을 소설화한 단편소설 <발괄하는 앵벌이>를 <실천문학> 여름호에 발표할 예정이다.


태그:#작가 김성동 , #윤재걸,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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