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506> 포스터

포스터 ⓒ 보코픽쳐스


대한민국의 성인 남자라면 대부분 군대에 관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전역하고 십수 년이 지난 후에도 군에 다시 입대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물론 그런 꿈은 대부분 악몽이다.

<GP506>의 공수창 감독도 군대에 관한 꿈을 가끔 꾼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면 그 빈도가 더욱 잦아진다고 한다. 전작인 <알포인트>를 촬영할때도, 이번에 <GP506>을 작업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공 감독은 암울하던 5공화국 시절에 강원도 속초에 있는 한 탄약부대에서 군생활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GP(최전방 경계초소)에 들어가 본 적도 있었다.

그는 군대에서 금기시되는 사상서적을 관물대에 놓아두었고, <한국일보> 문화면을 즐겨본다는 이유로 '험한' 군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직도 군대에 관한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일까?

"군대 속에서 고립되어가는 느낌을 담으려 했다" 

 인터뷰 중인 공수창 감독

인터뷰 중인 공수창 감독 ⓒ 김준희


<알포인트>도 <GP506>도 모두 군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알포인트>는 베트남전을, <GP506>은 비무장지대의 GP가 무대다. 수많은 사연을 가진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곳, 워낙 폐쇄되어 있어 당사자들만 입을 다물면 끔찍한 사건도 은폐할 수 있는 곳, 극단적인 상명하복의 명령체제를 가지고 있는 곳, 군대. 어찌보면 군대 그 자체가 공포 또는 미스터리를 만들어 내는 듯하다.

지난 3일 개봉한 <GP506>은 비무장지대 GP에서 전 소대원이 몰살 당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지난 9일 총선 투표일, "군복 입은 젊은이들만 보면 안쓰럽다"고 말하는 공수창 감독을 만났다.

<GP506>의 많은 장면에서 비가 왔듯이, 그 날도 비가 내렸다. 아래는 공수창 감독과의 일문일답.

- <GP506>은 전작 <알포인트>와 유사한 점이 많다. 폐쇄된 장소, 고립된 대원들…. 이런 비슷한 점을 염두에 두고 제작했나?
"대부분 군대 생활하면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는다. 왠지 모르게 폐쇄되고 고립되어 있다는 것, '내가 고여서 썩어가는구나'라는 그런 느낌을 많이 넣으려고 했다. <알포인트>가 이렇게까지 날 따라다닐 줄은 몰랐다. (많은 이들이) <알포인트>와의 유사성을 얘기하는데,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을 분석하지는 않는다. 내 스타일대로 만들다 보니까 비슷하게 된 것 같다."

- 영화의 배경이 된 GP는 어떤 곳인가.
"GP는 비무장지대 안에 위치한 최전방 경계초소다. 실제 GP와 영화 속에서 세트로 제작한 GP하고 많이 유사하다. 우리 때는 성곽처럼 꾸며져 있지는 않았다. 그 당시에는 '벙커'보다 '토치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굉장히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 영화에서는 노 원사(천호진), 강 상병(이영훈)은 물론이고, 군의관(이정헌)도 변해간다. 변해가는 캐릭터 모습이 흥미롭긴 하지만 그 과정이 생략된 것 같아 아쉽다.  
"개인적으로 그런 부분을 많이 다루었다고 생각한다. 군의관의 경우는 변해가는 과정을 많이 찍었는데, 편집과정에서 제외한 부분이 많다. 2시간짜리 영화니까 모든 것을 다 담을 수는 없다."

- 그 부분에서 팀 로빈스 주연의 베트남 전쟁 영화 <야곱의 사다리(1993년)>가 떠올랐다.
"<야곱의 사다리>는 나도 많이 좋아하는 영화다. 특히 엔딩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야곱의 사다리>에서는 미군이 병사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실험을 하지만, <GP506>은 그렇지 않다."

- 후반부에 "그냥 덮어두면 돼!" "죽건 말건 위에서는 신경도 안 써!"라는 대사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거기에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많이 들어갔다. 내가 군생활하면서 느꼈던 군대조직의 모순 등이 담겨 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우리는 살고 싶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만 살고 싶다'는 것이다. 군 조직과 시스템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군 시절, '난 물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GP506의 한 장면.

GP506의 한 장면. ⓒ 보코픽쳐스



- 계속 전쟁과 군대를 다루고 있는데 관객들에게 특별히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나?
"나는 좀 미시적으로 들어가보고 싶다. 반전(反戰)도 포함되겠지만 그보다는 그런 환경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더 관심이 많다."

- '군대라는 조직 또는 전쟁이라는 상황이 개인을 어떻게 바꾸는가',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건가?
"그게 제일 하고 싶은 얘기 중 하나다.

군대 생활을 하면서 군가를 부를 때마다 '왜 항상 피와 목숨을 원하는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난 이등병 때부터 계속 일기를 쓰면서 '나는 물들지 않겠다, 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상병 때였던 어느날 부대 앞으로 할머니가 지나가는데, 나도 모르게 그 할머니를 보고 야유하면서 휘파람을 불고 있더라.

당시 그런 내 모습이 무척 충격적이었다. 그런 일들이 쌓이면서 충격 때문에 실어증이 생겨 일주일 정도 병원 신세를 졌다."

- 무척 예민했던 것 같다.
"군 생활 당시에 내가 많이 건조했다는 걸 느꼈다. 어느날 밤에는 몰래 교환대에 들어가서 FM이 잡히는 무전기로 강릉 FM을 듣고 있었다. 30분쯤 듣다 보니까 해바라기의 '내 마음의 보석상자'가 나오더라. 그 노래를 들으면서 울었다. '내가 이렇게 건조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그 때의 경험이 컸다. 인간이 어떻게 바뀌는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것은 인간성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상황의 문제다."

- 군대라는 조직에 속해 있을 수밖에 없는 군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군복 입은 친구들을 보면 참 안쓰럽다. 어떻게 보면 가장 소외받은 사람들이다. <알포인트> 찍을 당시 고사를 지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은 죽어서도 혼이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구나'. 이 생각 때문에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당시에 이라크 파병이 문제였는데 '또 같은 역사가 반복되는구나'라는 울분이 생겨났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소재를 다루고 싶다. 이라크 파병부대를 포함해서 레바논 평화유지군도 이야기해보고 싶다."

- 그것을 소재로 영화화한다면 역시 공포, 스릴러의 형식으로 만들 생각인가?
"그건 아직 모르겠다. 어떤 형식으로 만들건 자본이 문제다. 투자자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결국 내 욕심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을 해야하는데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을) 해야할지 고민이다. 투자자들을 만나려면 자기검열도 해야 하고, 여기저기서 얻어맞기도 하는데…. 그런 부분이 제일 힘들다."

"군복 입은 친구들, 안쓰럽다... 가장 소외받은 사람들"

 공수창 감독

공수창 감독 ⓒ 김준희


- <알포인트>를 찍을 당시에는 많이 외롭고 힘들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어땠나?
"아무래도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알포인트> 찍을 때는 내가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다. 이번에는 내가 고민할 문제도 다른 사람들에게 미루고 했다. 나 때문에 PD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 배우들을 선정하게 된 계기는?
"유중위(조현재)는 그 역할에 대해서 내가 나름대로 구상한 면이 있었다. 조현재를 직접 만나 보니까 얼굴에서 느껴지는 것이 비슷하더라. 이영훈은 실제로도 약간 개구쟁이 같은 모습이 있었고. 천호진의 경우는 <주먹이 운다>에서 너무 좋게 봤다. 그 영화에서 느껴지는 포스가 대단했다."

- 투자문제로 중간에 4개월 정도 제작이 중단된 적이 있었다.
"영화 흐름에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 제작이 재개되면서 10월에 다시 촬영에 들어갔는데 11월 중반부터 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11월부터는 GP 외부의 모습을 찍는 경우가 많았다.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그 눈을 치우느라고 고생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비내리는 장면을 자주 찍었는데, 물을 뿌리고 나면 바로 고드름이 되서 얼어버리더라. '컷' 소리가 나면 다들 그 고드름 녹이느라 고생했다."

- 감독 데뷔 전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는데 <텔미썸딩> <링>을 기점으로 성향이 공포· 스릴러로 바뀐 것 같다.

"스릴러 소설은 그 몇 년 전부터 많이 읽었고, 사실 공포에는 정말 관심이 없었는데 먹고 살기 위해서 시작했다. 그런데 공포를 하다 보니까 재미있더라. 나는 공포의 근원적인 요소는 '억압'이라고 생각한다. <여고괴담>이 성공했던 이유가 있었다. 입시에 대한 억압, 이성문제에 대한 억압, 이런 것들이 뒤섞였기에 성공했던 거다.

그렇게 억압에 대해서 관심을 갖다보니까 결국 <알포인트>가 나오게 됐다. 공포는 그런 억압을 다룬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한편으로는 슬픈 것이다. 공포는 기본적으로 '두려움과 슬픔'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공포의 근원은 억압... 병사들의 절망을 봐달라"

- 다음 영화로 첩보물을 구상 중이라던데.
"본격적인 첩보물이라기보다는, 일선에서 활약하다가 어떤 회의를 느끼고 은퇴한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볼까 생각 중이다."

- <알 포인트> <GP506> 모두 여배우가 없다. 그 세 번째 작품에는 여배우가 등장하나?
"등장한다(웃음). 누구를 캐스팅할지는 아직 미정이다. 내가 여배우를 잘 몰라서…. 유일하게 아는 여배우가 전지현이다."

- 마지막으로 <GP506>의 관객들께 한마디 부탁한다.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장르적인 측면보다는 그 안에 감춰진 메시지를 봐주시기 바란다. 단말마의 비명 속에서 죽어간 이름없는 병사들의 절망, 거기에 초점을 맞추면 좀 더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것 같다."

 GP506의 한 장면.

GP506의 한 장면. ⓒ 보코픽쳐스


<GP506> 공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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