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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연수구에 단 한 분 남은 위안부 출신 여복실(87) 할머니가 지난 7일 저녁 7시30분 임종했다. 인천적십자병원에 입원한 지 50여일 만이다.

 

전남 장흥에서 태어난 여 할머니는 16살 때 일본 경찰과 군인에 의해 납치돼 중국 천진으로 끌려 갔다. 4년간 일본군에 의해 모진 고통을 당한 할머니는 조선인 통역관의 도움으로 탈출했고 평양에서 살다가 광복을 맞으면서 풀려났다.

 

여 할머니는 고향으로 돌아온 뒤 경찰관과 결혼했지만 자궁에 이상이 생겨 아이를 낳지 못했고 결혼 4년만에 집에서 나와야 했다. 이후 할머니는 거동이 어려워졌고 옥련동 쪽방에서 돌봐주는 사람 없이 외롭게 살았다.

 

그러다 지난 91년 봄 수양아들 박씨를 만나게 됐다. 박씨는 어렵게 살고 있는 할머니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쪽방을 찾아 모자(母子)의 인연을 맺은 것이다. 2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지방의 친할머니와 함께 살아온 박씨는 "친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이 있었고 중학교 때 돌아가시면서 그리움이 더했다"며 "여 할머니를 처음 본 순간 내가 모셔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박씨는 여 할머니의 지병인 척추압박골절(척추를 지탱하는 물렁뼈가 주저앉는 질환)이 악화되자 95년, 부모 집에서 나와 인천 연수구 선학동 시영아파트 11평형 임대아파트에서 여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러다 최근 지병이 악화되어 돌아가시게 된 것이다.

 

여 할머니의 지인으로 알려진 박원규(81)씨는 "정신대 할머니인 여씨가 의인인 박 군을 만나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지냈다는 사실에 마음이 흐뭇하다"며 "여씨가 병이 악화되면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을 때 대소변을 수년 동안 직접 받아 내는 등 친자식보다 더 극진하게 할머니를 모셨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태그:#여복실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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