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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하수상하다. 아동 성범죄가 난무하는가 하면, 북한이 남한을 향해 극단적인 비난을 퍼부어댄다. 이런 현상 자체도 무섭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이를 계기로 드러나는 우리 안의 폭력성, '정의'의 이름으로 정당성을 찾으려 드는 바로 그 폭력성이다.

 

살인사건과 아동 성폭행 사건에 분개해 '피해자의 인권'을 이야기하며 분노하는 그들, 물론 그 분노 자체는 당연하고도 마땅히 일어나야 하는 분노다. 분노 안 하면 그게 어디 사람인가?

 

사형제와 범죄 예방은 거의 관계가 없다고 봐야

 

그럼에도 나는 그속에서 폭력성이 표출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폭력성'이라고 정의한 나는 아마 그네들에게 삼대가 육시를 당할 욕을 먹을 것이 분명하다. 그게 왜 '폭력성'인지, 분노한 당신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반응은 뻔하다.

 

"네 엄마와 누나나 여동생이 비참하게 살해당해도 한가한 소리나 할 거냐?"

 

이 무서운 가정을 봐라. 가정을 해도 이렇게 밖에 못한다. 아니, 이런 가정을 꼭 해야 할까? 사형제 폐지하자는 사람들이 언제 "피해자의 인권은 가해자의 인권보다 못하다"고 했나? 

 

단지, 사형제 자체가 치안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감정적으로는 그럴듯해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사형제와 범죄 예방은 거의 관계가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남은 이유는 두가지다. '피해자 가족'을 명분삼아 감정적 분노를 풀려 하는 이들의 스트레스 해소와, 치안 질서 확립이나 그 대비 및 대처에 실패한 검찰과 경찰의 주위 환기다. 

 

그들은 정말, 흉악범이 사형당해 죽었다는 뉴스를 봐야만 치안이 좋아졌다고 안도할까? 한명의 사형수가 죽었다고 다른 흉악범들이 그를 반면교사 삼아 겁을 먹고 범죄를 그만둔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연쇄살인범 유영철도 "왜 사형집행을 하지 않느냐"고 따졌다지 않나.

 

지금이 함무라비 시대가 아님에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스트레스 해소성 보복을 '간수'라는 공무원이 대행해야 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살인은 있어서는 안되며", "너희들의 감정적인 분노에 의해 사람 죽이는 일을 업으로 삼아야 하는 사람들"의 처지도 판단해보라는 것, 그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사형제에 찬성하는 당신들의 주장은 찬성하지는 않을지라도, 하나의 주장으로서 마땅히 존중한다. 자기 의견과 다르다는 이유로 "너도 재수없게 억울한 누명써서 사형 한번 당해볼래?"라는 저주를 퍼붓는다면, 그 사람은 더이상 사람의 탈을 쓸 자격이 없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고민해야 한다. 99명의 쳐죽여도 시원치 않을 인간을 죽이는 가운데, 1명의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왜 모르나. 근현대사 교육을 부실하게 받아서 '인민혁명당 사건'이 뭔지 모른다는 것쯤은 이해할 수 있지만, 최소한 단 1초라도 생각은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두개골 안에 뇌가 들어있는 인간의 도리라고 할 수 있다.    

 

흉악범죄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은, 신경정신과 진단을 유독 꺼리는 대한민국 사회 특유의 정서를 해소하는 것이다. 사소해 보이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충격이 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국내외에 걸친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이 몸으로 보여준 바 있다. 감정적 보복에 들뜰 때가 아니라 근본적인 처방을 판단해보라는 이야기다. 

 

그것이 자신없다면, 재밌다고 밤새 지켜 본 범죄 미스터리 미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FBI 행동과학부와 같은 프로파일링 부서들을 대대적으로 늘리면서 전문가들을 양성할 것(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위를 대국민홍보용으로 써먹을 것이 아니라 제2의 권일용을 앞으로도 더욱 늘려 특유의 초동수사 부실을 방지해야 한다)을 경찰에 요구하는 것도 좋다. 

 

사이코패스 범죄자를 비롯한 흉악범죄자들을 발견되는 족족 죽이라고 아우성치는 것보다, 그 부서를 통해 그들의 범행 근원과 행동양상이나 심리적인 공통점을 연구해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사형제가 있다고 범행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를 피하기 위해 더 지능적인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음을 왜 모르는건가.

 

유영철도 "왜 나를 사형집행하지 않는 것"이냐고 항의했으며, 텍사스주 주지사 시절 사형집행 서명을 자주 했다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올해 연두교서에는 '사형제 폐지 찬성' 뜻을 밝혔다고 한다. 유영철과 조지 W. 부시, 이 두 사람이 보인 뭔가 뒤바뀐듯한 행동 속에서 뭘 느끼나.

 

'불체자 강간미수 살해사건'을 악용하는 수구 인터넷 언론

 

이 분노에 기름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경기도 양주에서 일어난 필리핀 국적 불법체류자가 여중생을 강간하려다 실패해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사건이다.

 

이 사건은 자연스레 '불체자 추방론'으로 연결된다. "불법체류자를 추방하자"는 목소리는 응당 상식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사건이야말로 그네들의 한계를 다양하게 노출시킨 계기가 됐다.

 

일단, '국적의 차이'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해당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언론의 기사를 살펴보자. 용기있게 취재해 사건을 끈기있게 보도한 점은 마땅히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다음 부분에서 한마디로 '어이 상실'이다.

 

"양주시 회암동에서 발생한 여중생 살해사건을 취재하면서 아무런 대항을 할 수 없는 우리의 딸인 故강수현양이 성인이며 불법체류자인 필리핀인 범인에게 어린몸을 유린당하고 목숨마저도 빼앗기는 암담한 현실 앞에 우리의 사회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감히 묻고 싶습니다."

 

"무엇이 옳은건지 불법체류 외국인의 인권만을 강조하며 한국인은 모두 외국인노동자에게 고압적이며 노동착취하는 자로 비쳐지는 작금의 현실은 과연 누구의 잘못인지요?

국가가 관리하여야 할 불법체류 외국인에 의해 저질러진 참혹한 범죄에 의해 희생되어진 우리의 어린딸인 故강수현양의 영전에 우린 무엇을 들고 가야 한단 말입니까? 진실은 묻히고 정의가 승리하지 못한다면 이 사회가 백년을 이끌어 가던 천년을 이끌어 가던 무슨 이득이 있단 말입니까?"

 

'우리의 딸'이라는 이 목소리를 이어받아 '대한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누리꾼들도 있다. 단지, 흉악살인범이 필리핀 국적의 불법체류자였을 뿐이었다는 것도 모르는 지능일까? 여기서 왜 '우리의 딸'과 '대한의 딸'이 나오나?

 

그뿐일까? 논조의 과격함으로는 조선일보를 능가하면서 그 지위는 '인터넷 조선일보'이고 싶은, 그러면서 기사의 태반을 '좌파 토벌 선동'으로 덕지덕지 도배하는 어느 인터넷수구언론의 기사도 가관이다. 이 사건을 '불체자 추방론'으로 연계시키는 목소리와 움직임에 대해 독설로 유명한 어느 문화평론가가 '네오나치'라고 악담을 퍼부었다며, 분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싼걸 어쩌나. 살인사건의 범인은 그 사람 자체를 주목해야 한다. 품위있는 엘리트도 저지를 수 있는 것이 살인 아니던가. 하지만, '우리의 딸'을 찾고 그 목소리를 이어받아 '대한의 딸'로 승화시키는 누리꾼들은 이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정의의 사도여, 깃발을 들고 소리높이 외쳐 한국인의 분노를 깨워야 한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저 불체자 XX들이 겁대가리 없이 '우리 한국인'을 상대로 수많은 강력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다 추방해야 한다."

 

이런 목소리가 하나하나 모이다 보면, 피부색의 유무에 따라 특별한 계기에 따라 무차별 테러로 번질 수도 있다는 것은 지나친 상상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 문화평론가도 '네오나치'라고 평가했을 것이다. 그가 정말로 그렇게 말했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언론에서도 보도된 바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말 한번 잘 했다. "국가가 관리하여야 할 불법체류 외국인에 의해 저질러진 참혹한 범죄"라는 점은 맞다. 국가는 불법체류 외국인을 근절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추방만 한다고 다 해결될까? 이 언론의 기자들이나 이 언론의 선동 아닌 선동에 부화뇌동해 "저 불체자 XX들이 겁대가리 없이 '우리 한국인'을 상대로 수많은 강력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 불체자들은, 한국 정부와 싼값에 노동력 착취하고 쉽게 버리는 한국 기업의 냉엄한 자화상이다.

 

우리나라에는 '산업연수생 제도'가 존재했으며, 현재는 '외국인고용허가제도'라는 것이 존재한다. '불체자 추방론'을 이야기하려면, 최소한 이런 제도 정도는 웹서핑해보고 나서 이야기해야 한다. 유괴살해사건의 불똥을 인권단체들이 오로지 뒤집어쓰는게 유행이라지만, 이 유행에 편승해 이주노동자 문제 대처에 나선 인권단체까지 뿔 달린 괴물로 묘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하는 이야기다. 

 

이 제도는 '사업장 이전 제한'이나 '1년마다 계약 갱신' 등의 독소조항이 존재한다. 이 제도를 악용하는 중소기업들이 일부 존재하면서 불법체류자 양산에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이주노동자가 '사장님한테 들었다'는 협박 중에 하나가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는데, 아무날이고 해고해버려서 불법체류자로 전락시켜버리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여러분들이 그토록 저주하는 이주노동자 관련 인권단체는 "불체자가 무슨 짓을 하든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독소조항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기업에 의해 자의적으로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현실과 싸우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살인범'과 '불법체류자'는 등식이 아니다. '불법체류자 중 한 사람'이 '살인범'인 것이다. 외국에서 '한국인 유학생'이 대량총격살인을 벌였다고 '한국인=대량총격살인범'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흉악범죄를 저지르는 불법체류자가 많다는 말이 맞다고 해도, 이것이 전체로 확산돼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불법체류자 추방론'을 제기하려면 '외국인 고용허가제도'가 무엇인지 정도는 최소한 인지하고 나서 제기하도록 하라. 본질을 깨닫고 나면,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대처하는 한국정부와 일부 악랄한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멀쩡한 외국인 이주노동자마저 불법체류자로 전락시키는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외면해가며, '우리의 딸'이니 '감히 우리 한국인들'이라느니, 다분히 '네오나치'스러운 발언을 내뱉는다면, '악담'이라도 그 지적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은 '네오나치'다.

 

'좌파 박멸론'과 '불체자 추방론'의 대두

 

왜 글 초반에 북한을 이야기했을까? 다분히 의도된 북한의 강경한 대남 메시지와 그에 기름을 끼얹는 한나라당 정권의 대처 속에서 '좌파 박멸론'이라는 낡은 테이프를 돌리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낡은 테이프와 '불체자 추방론' 등의 '네오나치'스러운 극우 선동이 어우러지면, 조만간 스킨헤드족의 탄생을 기대해 볼만도 하다.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에 댓글을 달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손이 시키는대로 댓글을 쓰는 누리꾼들이 많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모니터 저 너머에 '인간'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과연 알까?

 

'피해자의 인권'을 운운하는 이들이, '네오나치'스러운 언행을 사방에 과시하는가 하면 '사형제 유지 찬성'이라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너희 가족도 당해봐야 알겠어?"라는 협박 아닌 협박도 마다하지 않는 촌극을 바라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다. 우경화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지만, 우경화에도 정도가 있다. 적당히 해야 하는 것이다.

 

경기불황이 만성화되면 사회가 어지러워진다. 사회가 어지러워지면 강력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며 사회구성원의 '의식의 우경화'가 진행된다. 이 순환구조를 타파하지 못하는 한, 사회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때려잡아 분풀이하며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쉽지만, 그것은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공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안전하고 밝은 사회를 지향하는가? 그렇다면 '구조'를 주목해야 한다. 아무리 사형을 시키고 불법체류자를 추방해도 근본적인 범죄 양산 구조를 타파하지 않는 한, 강력범죄의 확산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네오나치'스런 언행은 그만두고, 만행을 보고 싶지 않다면 생각하고 고민하라. 가장 쉽게 보이는 길은 결코 근본적인 길이 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어린이 납치미수, #사형제, #혜진 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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