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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 친구들 만나서 자전거 타고 놀 거야."
"안 돼. 그냥 집에서 아빠하고 놀아. 책이나 읽던가."
"왜? 왜 그래야 하는데?"

11살 딸 질문에 대답할 말이 없었다. "불안해서 너 혼자 밖에 내보내지 못하겠다"는 말이 입안에서 빙빙 돌았지만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윽박지르다시피 해서 집안에 앉혀두기는 했지만 ‘뾰로통’해진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영 개운치가 않았다. 햇살 좋은 일요일 오전, 한창 뛰어놀아야 할 아이를 강제로 집안에 가둬두는 것 같아 미안하기만 했다.

정말 불안하다. 혜진·예슬이 유괴살해 사건 이후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딸애에게 불안한 마음을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도 없다. 사실대로 말하면 아이가 불안해 할 것 같아서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어린이 유괴살해 사건이 일어난 안양8동과 내가 살고 있는 석수동은 꽤 먼 거리다. 그렇지만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 범인 정모씨 같은 싸이코 패스가 안양8동에만 있으란 법은 없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쭈삣'거린다.  안양에 살고 있는 다른 부모들 심정은 어떨까? 궁금했다.

안양 시민들 심리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3월 31일 월요일 오후에 자전거를 타고 거리로 나갔다.

"햇살 좋은 일요일, 아이를 집에 가두는 것 같아"

혜진·예슬이가 사라진 날 함께 놀았던 놀이터, 31일 오후 4시경 방문했을 때는  인적조차 없었다.
 혜진·예슬이가 사라진 날 함께 놀았던 놀이터, 31일 오후 4시경 방문했을 때는 인적조차 없었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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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불안해요. 그 동네 말고 다른 동네에서도 그러지 않았을 까요? 아마 피해자가 한둘이 아닐 것 같아요. 혹시 범인이 우리 동네에도 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 소름이 쫙 끼쳐요."

딸 둘(14세·11세)을 키우고 있는 석수2동 유인선(가명, 39세 주부)씨는 이렇게 말하며 몸서리를 쳤다. 아이들에게도 철저히 교육시켰다. 위급한 상황이 오면 소리를 지르라고. 특히 화장실에서 조심하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당연히 불안하지요. 명학 초등학교는 아이들 심리 치료 까지 시키고 있어요. 일산 어린이 납치 미수사건 보세요. 경찰도 믿을 수 없잖아요. 8동 부근 어린이 놀이터에서는 애들 보기도 힘들어요. 아이들이 잘 돌아다니지를 않아요.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데 큰일이에요."

안양 8동에 사는 박사옥(35세, 안양나눔여성회) 대표도 불안감을 나타냈다. 박 대표도 딸 둘을 키우고 있는 엄마다. 지난 26일 경기 고양 일산에서 50대 괴한이 초등생 강모(10세)양을 폭행하며 납치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폭행 사건으로 처리했다. 박 대표는 이러한 경찰의 안전 불감증을 강하게 비판했다.

"학원 간 아이가 조금만 늦어도 불안해요. 엄마도 불안하지만 여학생들이 특히 불안해하는 것 같아요. 딸 친구 하나는 그 사건 본 이후 소름 끼치고 구역질나서 고생했대요. 어떤 엄마들은 옆집 아저씨하고도 눈 마주치지 말라고 당부한대요."

15세 딸을 키우고 있는 주부 김지연(가명, 38세)씨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이 외출했다가 조금만 늦어도 계속 전화하게 된다. 여학생들이 구역질이 날 정도로 충격 받았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안양8동 문예회관 근처에서 하연호(안양시의회) 의원을 만났다. 하 의원은 8동 부근에 사는 주민들이 정신적 공항 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 아이들 집 밖으로 내놓지 못하겠다는 주민들 이 많고 실제로 길거리에 아이들도 별로 없다는 것. 또, CCTV 설치 문제, 경찰서 건립문제 등 치안 방범 문제에 대한 건의가 많다고 전한다.

고통스러운 것은 여성들만이 아니다. 안양 8동 부근에 살고 있는 회사원 김준모(38세)씨는 어린이 살해 사건이 터진 이후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혼자 살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뒤통수가 뜨끔 거릴 때가 한  번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낸 다는 것을 느낄 때 마다 기분이 묘하다며 이사하던지 결혼 하던지 결정해야 겠다고 말했다.

혼자 사는 남성도 괴롭다

시화호, 예슬이 시신 수색장면.
 시화호, 예슬이 시신 수색장면.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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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예슬이를 무참히 살해한 범인도 잡았고 자백도 받아냈다. 혜진·예슬이를 찾아달라는 전단지가 붙어 있던 자리에는 총선 후보들 홍보 전단지가 붙어 있다. 플래카드가 걸려있던 자리에도 마찬가지로 총선 후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걸려있다. 이제 사건은 거의 끝났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지킬것인가 하는 문제다. 또, 피해자 가족들을 어떻게 위로하고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안양 시민들 마음을 어떻게 보듬어 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들려온 일산 초등생 폭행 미수납치 사건을 보며 절망한다. 경찰은 10살짜리 꼬마를 아무 이유 없이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폭행하며 끌고 가려 했는데도 단순 폭행사건으로 처리하려 했다. 이날 인터뷰한 대부분 시민들은 이 사실에 분개하며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우리 아이들이 마음 놓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올 수 있을런지?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에도 실릴예정



태그:#혜진 예슬, #어린이 폭행 납치 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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