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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이산>에서 고부갈등을 보이고 있는 혜경궁 홍씨와 효의황후.
 드라마 <이산>에서 고부갈등을 보이고 있는 혜경궁 홍씨와 효의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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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위 등극'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이미 달성해서 그런지, 요즘 <이산>의 '아군 진영'에선 자체 분열이 다소 심각한 편이다. 홍국영의 무한질주에 대해 정조 임금도 어딘가 약간은 견제를 하고, 사이좋던 혜경궁 홍씨와 효의황후 사이에서도 자꾸만 갈등이 생기고 있다. 

홍국영의 누이와 성송연 중에서 누구를 새로운 후궁으로 '공천'할 것인가를 놓고 혜경궁과 효의황후 사이에서 심각한 '당내 갈등'이 발생했고, 이 싸움에서 일단은 궐내 어른인 혜경궁이 승리했다. 하지만, '공천 후유증'이란 게 있듯이 양측의 갈등은 여전히 미봉합 상태로 남아 있다. 

이처럼 <이산>의 내명부 갈등은 혜경궁·원빈 대 효의황후·성송연의 구도로 전개되고 있지만, 혜경궁이 효의황후보다는 어른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혜경궁·원빈 쪽에 힘이 쏠리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런 드라마 내용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혜경궁과 원빈이 같은 홍씨이기 때문에, 그 두 사람이 정말로 똘똘 뭉쳤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만약 홍씨끼리 정말로 단결했다면, 김씨인 효의황후가 따돌림을 받았을 것임은 분명한 일이다. 그 당시는 아직 성씨(성송연)가 역사무대에 출현하기 이전이었으므로, 만약 상황이 정말로 그러했다면 효의황후의 고립은 드라마에서보다 훨씬 더 심각했을 것이다.

과장된 미사여구로 혜경궁 홍씨를 잔뜩 띄워준 김조순

 <이산>에서 전개되고 있는 원빈홍씨·혜경궁 대 효의황후·성송연의 대결구도.
 <이산>에서 전개되고 있는 원빈홍씨·혜경궁 대 효의황후·성송연의 대결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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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실제 역사 속에서 혜경궁과 효의황후 사이에 정말로 갈등이 존재했을까? 역사 기록에 따르면 한없이 조용하고 품격 높았던 두 여인이 정말로 그런 갈등을 빚은 걸까?

혜경궁과 효의황후의 관계는 오늘날의 <이산>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18·19세기 조선인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을까? 그것은 혜경궁 홍씨가 죽은 뒤인 순조 16년(1816)에 기록된 홍씨의 지문(誌文)을 통해서 추론할 수 있는 일이다. 지문이란 죽은 사람에 관한 이러저러한 정보들을 기록한 문서를 말한다.

이 지문을 작성한 사람은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1765~1832년)이었다.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기초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어명을 받아 지문을 작성한 김조순은 혜경궁 홍씨에 관해 칭찬 일색으로 일관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야 틀리지 않지만, 상당히 과장된 미사여구로 혜경궁 홍씨를 잔뜩 띄워주고 있다.

이렇게 순풍에 돛 단 듯이 혜경궁을 찬미하던 김조순은 지문의 끝부분에 가서 갑자기 잠시 '멈칫' 한다. 바로 혜경궁·효의황후·원빈홍씨 3자가 관련된 부분에서 그가 속도를 확 줄인 것이다. 속도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갑자기 말이 많아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로 달리다가 전방의 장애물을 발견하고는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뭔가 조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정부 공식 기록에는 없는 '고부갈등'

세 사람에 관한 부분에 이르자, 김조순은 갑자기 말이 많아진다. 앞부분에서는 혜경궁 홍씨에 대한 칭찬 일색으로 술술 잘 나가더니,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칭찬은 하되 설명을 좀 덧붙이자'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이 부분에서마저 칭찬 일색으로 나갔다가는 자칫 독자들이 자신의 글 전체를 불신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한 듯하다. 문제의 부분은 다음과 같다.

"홍국영의 악이 무르익었을 때에 그 누이동생을 궁중에 들이고는 원빈이라고 일컬으면서 분수에 넘는 일을 넘보았으므로 중궁(효의황후, 인용자 주. 이하 같음)이 여러 차례 위태로운 지경에 놓였다. 하지만 빈(혜경궁)께서는 간사한 싹을 미리 꺾어 극력 보호함으로써 마침내 안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궁중의 일은 은밀하여 아는 이가 없기 때문에, 불만을 품은 무리가 도리어 간사한 말을 퍼뜨리기를 '중궁이 위험에 빠진 것은 자궁(혜경궁)이 주장하여 꾸며낸 일'이라고 하였다. 아! 이는 하늘마저 속이려는 짓이니, 분명히 따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앞부분 같았으면, 그냥 "혜경궁은 효의황후를 극진히 사랑한 자애로운 시어머니였다"라고 한마디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김조순은 이 부분에 이르러 갑자기 한없이 신중해졌다. 혜경궁과 효의황후의 관계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소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혜경궁·효의황후·원빈홍씨 사이에 그 만큼 민감한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조순의 말에 따르면, 누이인 원빈 홍씨를 후궁으로 들인 홍국영 때문에 중전인 효의황후가 여러 차례에 걸쳐 위험에 빠졌지만, 그때마다 중전을 위기에서 건져준 사람이 바로 혜경궁 홍씨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조선정부의 공식 기록에 의할 것 같으면, 혜경궁 홍씨와 효의황후 사이에서는 고부갈등이 없었다는 말이 된다. 드라마에서는 혜경궁이 원빈 편에 선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순조실록>에 실린 '혜경궁 홍씨 지문'에서는 위와 같이 혜경궁이 효의황후 편에 서서 원빈에게 맞섰다고 기록하고 있다.

 시어머니 혜경궁 홍씨. 그는 과연 효의황후와 고부갈등을 일으켰을까?
 시어머니 혜경궁 홍씨. 그는 과연 효의황후와 고부갈등을 일으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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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조순 자신도 그렇게 말하고 넘어가기에는 어딘가 좀 마음이 걸렸던 모양이다. 또 김조순이 그냥 그렇게만 말하고 넘어갔다면, 두 사람에 관한 나쁜 소문을 알고 있는 당시의 독자들은 김조순의 기록 자체를 통째로 불신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김조순은 나름대로 근거를 제시한다. 그는 "궁중의 일은 은밀하여 아는 이가 없다"는 말로써 '두 사람에 관한 안 좋은 소문은 근거 없는 것'이라는 인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는 "'중궁이 위험에 빠진 것은 자궁(혜경궁)이 꾸며낸 일'이라는 세간의 의혹은 불만을 품은 무리들이 꾸며낸 일"일 뿐이라고 일축해버린다.

우리는 이런 기록을 통해, 정조 시대에 "혜경궁과 원빈이 한편이 되어 효의황후를 괴롭히고 있다"는 소문이 세간에 나돌았음을 역으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풍문이 없었다면, 김조순이 굳이 혜경궁과 효의황후의 관계를 해명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김조순은 두 사람의 갈등을 그저 단순한 풍문으로 일축하면서 혜경궁과 효의황후 사이에는 그 같은 갈등이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항간에 떠도는 풍문보다는 김조순의 공식 기록을 믿을 수밖에 없지만, "궁궐의 일은 은밀하여 아는 이가 없기 때문에"라는 그의 말이 마음에 걸리는 것은 왜일까? "궁궐의 일은 은밀하여 아무도 모르는 것인데, 대체 무슨 근거로 혜경궁이 효의황후를 미워했다고 단정할 수 있느냐?"고 김조순이 말했지만, 궁궐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면 "혜경궁이 중전을 은밀히 비호했다"는 김조순의 말 역시 믿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궁궐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는 표현은 김조순의 말을 뒤집고자 하는 쪽에도 얼마든지 유용한 논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이것만큼 '무책임하고 간편한 근거'는 없을 것이다. "너희들이 궐내 사정을 어찌 아느냐?"는 김조순의 논리는 그래서 더욱 더 신빙성이 떨어진다.  

<이산>은 이들의 고부갈등을 어떻게 처리해 나갈까?

이처럼 '혜경궁은 효의황후를 비호했다'는 것이 조선정부의 공식 입장이었지만, 김조순이 제시한 근거가 상당히 취약하고 신빙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 기록은 100% 신뢰하기 힘든 자료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풍문을 부정할 만한 뚜렷한 증거를 제시했다면 모르겠지만, 김조순의 글에서는 그런 면모를 발견하기가 힘들다.

별다른 사실관계를 제시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궁궐의 일을 너희들이 어찌 아느냐? 혜경궁은 효의황후를 은밀히 도와주었다"는 말로 혜경궁과 효의황후 간의 갈등을 부정하는 김조순의 논리로부터 우리는 별다른 신뢰성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선정부의 공식 기록으로부터 두 사람 간의 고부갈등이 심각했을 가능성을 역으로 도출해볼 수 있을 것이다.

품격과 기품이 하늘을 찔렀다는 두 여인. 그들은 과연 어떻게 고부갈등을 전개했을까? 드라마 <이산>이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 나갈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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