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곪은 종기는 붕대로 덮기보다 째고 도려내야 치유된다고 본 것일까? 오바마는 에둘러 가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사회에서 그간 공론화 자체가 금기로 여겨질 법한 흑·백간의 민감한 인종적 편견을 드러내놓고 헤집으며 통합의 해법을 모색했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18일 필라델피아에서 그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연설문을 들고 지지자들 앞에 섰다. 이 연설문은 무려 5천 단어에 가까운 장문의 글이다. 미국 언론은 벌써 오바마의 필라델피아 연설이 "나에게 꿈이 있다"는 마틴 루터킹 목사의 연설 이후 미국의 인종 갈등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연설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선거 한번으로 흑백갈등 해결되지 않아"

 

미국의 독립선언문이 작성된 필라델피아에서 행한 이 연설에서 오바마는 "일부 비판론자들의 지적과 달리 자신은 미국의 흑백갈등이 선거 한번으로 해결될 것으로 믿을 만큼 순진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어린 시절 자신을 양육한 백인 외할머니가 "흑인에 대한 편견 섞인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며 진저리를 친 적도 있었다"며 자신의 개인사를 직접 밝히기도 했다.

 

또 자신에 대한 백인사회의 지지를 "흑인후보에 대한 의도적 옹호이며 흑백 화합을 싸구려로 얻으려는 일부 진보적 백인들의 움직임"으로 평가절하하는 시각도 있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설교 중 "갓댐 아메리카"(빌어먹을 미국)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자신의 담임 목사 라이트를 향해 "미국 사회가 인종문제에서 그래도 꾸준히 진보해 왔음을 직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지만 그렇다고 그와 의절할 생각도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보다는 라이트 목사의 발언이 나오게 된 흑인 사회의 뿌리 깊은 분노의 역사를 이해하자고 촉구했다. 라이트 목사가 젊은 시절을 보낸 1950~60년대 같은 노골적인 인종차별은 이제 미국사회에서 사라졌지만, 흑인은 "일자리, 노조, 주택, 의료, 교육의 기회 등 모든 부분에서 아직도 사회적인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

 

오바마는 특히 "흑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시설과 교육의 질이 백인 학교에 비해 월등히 떨어지고, 이것이 취업과 부의 축적에서 불평등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빈곤이 대물림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흑인과 백인이 각각 지닌 분노, 이해한다"

 

그는 백인들이 흑인에 대해 지닌 분노의 근원 역시 솔직하게 인정했다.

 

백인들은 "조상들이 저지른 흑백차별의 원죄에 대해 자신들이 죗값을 치르고 있는 현실"에 분노하고 있으며 이것이 결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보수혁명으로 폭발했다는 것. 백인들 사이에는 흑인에 대한 옹호정책 때문에 자신들의 정당한 일자리와 부의 기회마저 빼앗기고 있다는 박탈감이 팽배하다는 것이 오바마의 지적이다.

 

오바마는 "미국의 많은 정치인들이 흑백간의 이런 인종 갈등에 편승해 편가르기 전략으로 정치적 생명을 유지해왔다"고 비판하고, 특히 우파 방송인들을 겨냥 "가짜 인종주의를 의도적으로 자극해 자신들의 입지를 구축해 왔다"고 맹공을 날렸다.

 

하지만 미국 사회의 이런 암담한 현실에 대한 솔직한 인정에도 불구하고 오바마가 행한 필라델피아 연설의 결론은 결국 통합과 전진이다.

 

미국의 왜곡된 정치, 추락하는 경제, 갈수록 줄어드는 일자리, 부실한 의료체계, 노후한 교육시설로 고통을 받는 것은 "흑인, 백인, 라틴계, 아시아인을 가릴 것 없이 모두의 공통된 고민거리"라는 것.

 

오바마는 "필라델피아에서 만들어진 독립선언문 역시 인종차별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하고 이를 후대의 과제로 남겨두었다"며 미국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항상 완벽을 향해 나아갔다고 지적했다.

 

오바마는 "의료, 복지, 교육에 대한 투자는 인종에 관계없이 미국의 번영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호소하고 "이는 다른 인종의 희생을 요구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며 40여분에 가까운 연설을 마쳤다.

덧붙이는 글 | 아래는 유튜브에 등록된 오바마의 18일 필라델피아 연설 동영상이다.




태그:#오바마, #흑백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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