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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회가 현재 밤 10시까지로 되어있는 학원의 심야수강 시간제한을 폐지하기로 해 논란이 벌어졌다. 이유인즉슨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 시장의 자율성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대형 입시학원들은 대환영이지만, 교육·시민단체들은 ‘아이들을 말려죽일 작정이냐’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시의회가 학부모와 학생을 볼모로 입시학원의 배만 불려주려 한다는 비아냥거림도 있다. 대부분의 언론과 시민여론도 시의회에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낸다.

 

그러나 정작 사고를 친 교육·문화위원회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사태평이다. 빗발치는 반대여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본회의까지 이대로 밀어붙일 태세다. 이 대통령까지 나서서 "공교육의 자율성을 높이자고 했더니 사교육의 자율성을 높이려 한다"고 에둘러 반대의사를 표명했는데도 한 발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막가파'가 따로 없다.그 와중에 정연희 교육문화위원장의 '황당발언 시리즈'가 여론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정연희 교육문화위원장의 '황당발언'

 

정 위원장은 13일 방영된 KBS TV <생방송 시사투나잇>과의 인터뷰에서 "일을 하다 과로로 죽었단 얘기는 있어도 학생이 공부하다 피곤해서 죽었단 얘기는 들은 적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한 청소년단체 관계자는 "지금도 일 년에 수백 명의 청소년들이 공부나 성적 때문에 자살하는데, 도대체 얼마나 죽어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이냐?"고 분통을 터뜨린다.

 

올해 1월 한국사회조사연구소에서 전국의 고등학생 28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정 위원장의 발언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위험한 말인지 금방 드러난다.

 

실제로 이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36.0%가 자살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등교시간대별로 보면 새벽 6시에서 6시 30분 사이에 집에서 나오는 학생의 47.4%가, 새벽 1시 이후에 집에 들어가는 학생의 47.6%가, 하루 평균 수면시간이 4시간 미만인 학생의 49.6%가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이 자료는 학원수강으로 인한 지나치게 이른 등교와 늦은 귀가가 청소년의 자살충동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음을 말해준다. 또 통계청이 발표한 최근자료에 의하면 2006년 현재 청소년 사망원인의 2위가 자살이며, 가출 또한 최근 몇 년째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결국 정 위원장의 발언은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거나, 알고도 일부러 모른 척 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만약 전혀 모르고 한 말이었다면, 이는 정 위원장이 교육·문화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소관업무인 교육과 청소년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지식조차 갖추지 못한 '무식꾼'임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반대로 이런 사실을 알고도 일부러 모른 척 했다면, 이는 진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더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정 위원장이 자신의 발언에 대해 책임 있게 해명하지 않고, "이 대통령이 개정안을 제대로 안 본 상태에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라는 둥, "일부 사회단체의 반발을 너무 의식한 것"이라는 둥, 변명으로 일관하는 것은 자신의 실언을 '남 탓'으로 돌리려는 떳떳치 못한 태도이다.

 

더욱이 "이 문제를 놓고 대통령과 토론도 할 수 있다"고까지 한 대목에서는 실소를 금하기 어렵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정 위원장의 지금 처지는 ‘토론’이란 말을 입에 올리기 이전에 의도했든 아니든 평지풍파를 몰고 온 자신의 ‘실언’에 대해 해명부터 먼저 해야 할 때이다. 게다가 그 상대방도 이 대통령이 아니라 정 위원장의 ‘실언’으로 인해 상처받고 분노하는 국민들이다.

 

건강권도 학생과 학부모가 책임지라니...

 

정 위원장은 또 "24시간 학원교습이 학생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심야교습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는 학생과 학부모가 선택할 사안이며, 건강권도 학생과 학부모가 책임질 문제"라고 답변했다. 그걸 누가 모르는가? 심야교습이 아이들 건강에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시킬 수밖에 없는 학부모들의 참담한 심정을 정 위원장은 정말 모르는 것일까? 학원영업을 무제한 허용해서 경쟁분위기 실컷 조장해놓고 "싫으면 말고"라니…

 

그런 식의 논리라면 피시방·노래방·단란주점도 모조리 청소년 출입을 무제한 허용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건강과 행복은 어차피 학생과 학부모가 알아서 책임질 문제니까 말이다. 국가가 왜 개인의 건강과 행복까지 챙겨줘야 하는가? 사오정이 따로 없다. 정 위원장은 서울시의 조례를 다루기 전에 먼저 그 상위법인 ‘헌법 제10조’부터 한 번 읽어보는 게 좋겠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만약 정 위원장이 그 의무를 지기 싫으면 방법이 있다. 하나는 국가기구의 일부인 시의원을 당장 그만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을 모아 ‘헌법 개정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모든 국민은 자신의 존엄과 가치를 스스로 갖든가 말든가 하며, 행복하든 말든 그것은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질 문제가 아니니 알아서 즐쳐드셈~."

덧붙이는 글 | 송원재 기자는 전교조 결성 관련 해직교사 출신으로 전교조 대변인을 지냈으며, 현재 전교조 서울지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태그:#학원조례, #정연희, #서울시의회, #학원영업, #시간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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