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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대 해직 교수 김명호씨

난 이른바 "석궁테러" 사건의 김명호씨 항소심 변호를 맡았다. 그런데 1심에서 4년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한 사건에서 서울동부지방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신태길)는 2008년 3월 14일 김명호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그대로 4년 실형을 선고하였다. 검찰도 형량이 너무 적다고 하면서 (검찰은 1심에서 10년을 구형하였다.) 항소를 하였으나 검찰의 항소 역시 기각되었다.

 

난 이 재판을 진행하면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이토록 황당하다 못해 비참한 재판을 진행할 수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법부는 이 사건에 대해 아무런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고 하지 않고 오로지 피고인의 유죄만을 주장하는 재판을 노골적으로 진행하였다. 이 사건 피해자라고 자처하는 서울고등법원 부장 판사 박홍우의 거짓말을 덮어 버리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고위 법관이 있지도 않은 사실을 언론에 이야기하고, 이로 인해 이 사건은 일명 "석궁 테러"로 불리어졌으나 이제 사건의 진실은 박홍우 판사에 의한 "사법 테러"로 밝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진실하여야 할 고위 법관이 거짓으로 사건을 부풀리고 증거조작에 가담한 흔적이 짙은 이 사건은 그것 자체로서 사법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사법부가 기를 쓰고 이를 은폐하려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항소심 재판을 진행하면서 이러한 사법부의 의도는 더욱 극명하게 나타났다. 검찰이 피해자 박홍우의 옷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양복 등의 옷가지에 묻은 혈흔이 과연 박홍우의 혈흔인지 아닌지에 대해 감정을 하자고 여러 차례 피고인측이 신청을 하였으나 재판부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기각하였고, 박홍우의 옷가지라고 주장하는 옷을 누가 수거해 갔는지에 대하여 사실 조회를 했으나 검찰과 송파경찰서는 모른다고 답변하였으며, 이에 대해 재판부는 아무런 문제도 삼지 않았다(사건 당일 박홍우 판사는 집으로 올라가 양복을 완전히 갈아입고 폴라티를 입은 평상복 차림으로 병원에 갔다).

 

박홍우 판사의 상처가 과연 석궁에 의해 발생할 수가 있는 상처인지 석궁 실험을 통해 진실을 규명해 보자고 줄기차게 신청을 하였지만 역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기각하였다. 더 나아가 이 사건의 유일한 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박홍우 판사의 증언이 횡설수설하여 그 진위를 다시 따져 보기 위해 증인 신청을 계속 하였으나 이것 역시 아무런 이유도 대지 않고 기각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공소사실인 고위 법관들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에 대해 피해자로 지목되고 있는 고위 법관들에 대한 증인 신청과 처벌 의사 여부에 대한 사실조회 신청조차도 기각하였다. 고위 법관들은 법 위에 군림하는 사람들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나아가 검찰측에 당시 사건 현장에 있었던 "부러진 화살"의 존재 여부와 행방에 대해 밝혀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역시 밝히지 않았고 오히려 재판부는 "모른다고 하지 않은가"라고 대신 답변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였다. 그 이외에 검찰 측에 박홍우 판사가 어떻게 어디에서 화살에 맞았다고 보는지, 중간에 입은 와이셔츠에는 왜 혈흔이 없는지, 양복 등에 묻은 피가 박홍우의 혈흔이라고 보는지, 석궁과 화살 등에 대한 적법한 압수 수색 영장이 있었는지, 피해자 박홍우의 진술 번복의 동기가 무엇인지 등에 대하여 입장 표명할 것을 요구 하였으나 재판부는 검찰측이 모른다고 하거나 궤변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을 감싸는데 급급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참한 폭력적 재판을 감추기 위해서 새로 재판을 맡은 신태길 재판장은(항소심을 처음 맡았던 재판장은 3회까지 공판을 진행하고는 갑자기 사직하였다) 기습적으로 녹음, 녹취도 하지 않았고, 속기록도 공개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1심부터 항소심의 재판장이 신태길로 바뀌기 전까지는 모든 재판과정들이 녹취록으로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적 재판의 최일선으로 뛰어든 재판장 신태길은 모든 것을 비공개로 하였다.

 

이것은 폭력적일 뿐만 아니라 코미디인 이 재판이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 한 야비한 조치일 뿐이었다. 그리고 강제적으로 변론을 종결했다. 신성해야 할 재판정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계란이 날아가고 고함이 오가고, 피고인과 변호인이 항의 표시로 퇴정하고….

 

이것이 과연 문명사회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재판이란 말인가. 분명히 말하지만 테러를 한 것은 피고인이 아니라 사법부였다. 재판테러 말이다. 이 사건이 발생한 직후 실체적인 진실이 밝혀지기도 전인 2007년 1월 19일 전국 법원장 회의에서 이 사건에 대해 "사법부에 대한 테러"로 규정하고 "엄단"하겠다는 의사 표현을 분명하게 하였다.

 

재판의 공정성은 법관의 "예단 배제"에 있다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다. 그리고 헌법과 형사소송법에도 "무죄 추정 원칙"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수장들이 이미 이 사건에 대해 유죄의 심증을 가지고 엄단하겠다고 하였으니, 이 사건에 대해 어찌 우리나라 사법부가 공정한 재판을 할 수가 있겠는가.

 

이미 사법부는 이 사건에 대해 재판을 할 자격을 상실하였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2008년 3월 7일 전국 수석 부장판사 회의를 열어 역시 이 사건을 사법부에 대한 테러로 재규정하고 또 엄단하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것이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사건에 대해 사법부가 할 수가 있는 짓인지 알 수가 없다. 사법부는 이미 사법부가 아니었고 "신성한" 법정은 시정잡배들이 폭력을 휘두르는 추악한 장소보다 더 못한 곳이었다. 그곳은 법정이 아니었다.

 

피고인 김명호는 무죄다

 

이른바 석궁 사건에 대한 공소사실의 증거물로 제출된 석궁, 화살 3촉, 화살 6촉, 회칼, 다다미판은 압수 수색 영장 없이 압수된 물건으로서 증거 능력이 전혀 없었다. 더구나 석궁은 수리된 상태였다. 현행범인으로 체포하였다 하더라도 형사소송법 제217조 제2항에 따라 48시간 이내에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받아야 하는 것이다. 피고인이 임의로 제출한 것도 아니고 유류한 물건은 더욱이 아니었다.

 

따라서 적법 절차에 의한 압수 수색 영장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은 명확한 것이었다. 이러한 적법 절차에 따르지 않은 증거물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물이 분명하다. 따라서 위 압수물들은 증거로서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이었음에도 재판부는 이를 그대로 인정하였다. 이것은 형사소송법 제308조의 2가 정하고 있는 위법수집증거 배제 법칙을 정면으로 어기는 판결이었다.

 

박홍우 판사는 이 사건의 핵심적인 증인이었다. 그런데 박홍우 판사는 최초에는 "1.5미터 거리에서 피고인이 정조준하여 자신을 쐈다."고 주장을 하다가 진술을 번복하여 오로지 다른 것은 기억이 나지 않고 "화살이 박혔다. 화살을 뺐다. 그 화살은 부러져 있었다"고만 하였다. 이러한 진술 번복 동기에 대해 "의사가 상처의 방향이 위에서 아래의 방향이라고 해서 처음에 그렇게 진술을 하였지만 나중에 경찰관이 와서 자기에게 말하기를 의사가 그러든데 상처의 방향은 박힌 화살을 어떤 방향으로 뽑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을 듣고는 모든 기억이 없어져 진술을 번복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어떤 의사도 박홍우 판사에게 그러한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였고, 경찰관도 그런 말을 박홍우 판사에게 한 적이 없다고 명확하게 증언하였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박홍우의 말을 신빙할 수가 있다는 것인가. 오로지 신빙할 수가 있는 것은 같이 현장에 있었던 경비원도 증언하고 있는 "부러진 화살"이 있었다는 것뿐이다. 나아가 박홍우는 석궁을 잡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주장을 하고 있으나 경찰 제2회 진술조서에는 명확하게 "석궁을 잡고 실랑이를 하였다."라고 진술되어 있었다.

 

또 박홍우는 사건 현장에서 집으로 올라가 양복 윗도리만 벗고 잠바만을 갈아입고 나왔다고 하였으나, 그날 박홍우는 양복을 완전히 다 갈아입고 폴라티를 입은 평상복 차림으로 구급차에 실려 갔다. 그 어느 하나 신빙할 수 있는 진술이 없었다. 그리고 박홍우를 현장에서 치료한 구급대원은 박홍우로부터 "화살이 배에 맞고 튕겨 나갔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하고, 그것을 그 당시 현장 활동일지에 그대로 기재한 다음 이를 다시 법정에 나와 확인해 주었다. 배에 꽂혔다던 화살이 어떻게 배를 맞고 튕겨 나갈 수 있다는 것인지 참으로 신묘하고 기묘한 이야기였지만 재판부는 박홍우의 증언을 유죄의 증거로 채택하였다. 참 이 정도이면 '개그콘서트' 수준의 극본이 아닐 수 없다.

 

증거물로 제출된 박홍우의 옷가지 (양복 상의, 조끼, 와이셔츠, 내복, 러닝셔츠)는 박홍우의 것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하였다. 박홍우의 것이라는 것이 전혀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홍우의 옷가지를 수거한 경찰이 누구인지가 밝혀지지도 않았고 박홍우가 그 옷가지를 어떻게 전달을 하였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나아가 박홍우의 옷가지에 묻은 혈흔이 박홍우의 것인지는 더욱이나 밝혀지지 않았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혈흔 감정 신청을 기각하여 아무런 혈흔 감정 작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조끼와 속옷의 중간에 있는 와이셔츠에 혈흔이 없다는 것으로 보아(이점에 대해 항소심은 판결을 하면서 와이셔츠에 묻은 혈흔이 사라진 것이라고 참 기가 막힌 설명을 하였다) 증거물로 제출된 박홍우의 옷가지는 사건 당시의 옷가지도 아니고 박홍우의 피도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증거 조작을 하였다는 것이다.

 

박홍우 판사와 아파트 경비원이 명확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이 사건에 사용된 화살은 화살촉 끝이 뭉툭하고 뒷부분이 부러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없다. 화살을 바꿔 치기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이었다. 검찰은 화살 존재 여부조차 확인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부러진 화살은 분명히 거기에 있었고 아파트 경비원이 그것을 경찰에 주었다. 그리고 증발한 것이다. 경찰 수중에서 말이다. 현장에서 수거된 화살 중에서 어느 것에도 혈흔 반응이 전혀 없었다고 국과수가 감정하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박홍우 판사의 복부에 "박혔다"는 부러진 화살은 어디에 갔는가.

 

경찰의 석궁 실험을 통해 밝혀진 것은 석궁의 위력이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이를 석궁전문가도 증언하였다. 석궁에 의한 것이었다면 박홍우의 상처가 그 정도로 경미할 수는 없다 (지름 2㎝라고 하였는데 최초에는 0.5㎝이었고 깊이는 알 수가 없을 정도로 경미했다). 이를 밝히고자 석궁실험을 하자는 증거 신청을 여러 차례 하였으나 아무런 이유도 없이 기각만 하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증거로 박홍우 판사의 복부 상처가 석궁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

 

증거에 의한 재판이었다고 한다면 피고인 김명호는 무죄임이 틀림이 없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증거로 김명호가 석궁으로 박홍우 판사를 쐈다는 것을 증명되었다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 재판이었다.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통렬한 반성을 촉구한다

 

원래 형사 사건은 검찰이 유죄를 입증하여야 한다. 피고인이 무죄를 입증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검찰은 항소심에 올라와 항소 이유를 말한 것 이외는 5차 공판 내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였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형사 재판은 검사와 피고인 사이에서 공방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이 재판에서는 검찰측은 침묵으로 대응하였고 오히려 재판장이 모든 것을 가로막고 피고인측과 싸우는 어처구니없는 재판으로 일관하였다.

 

검찰은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이야기 하여야 한다. 도저히 양복을 뚫을 수 없었던 끝이 뭉개지고 뒤쪽이 부러진 화살을 바꿔 치기 하였고, 혈흔을 조작하였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떳떳하게 옷가지에 묻은 그 혈흔이 누구의 것인지에 대해 밝히는 감정에 응하여야 하고 박홍우 판사의 옷가지를 수거한 경찰과 부러진 화살의 행방을 밝혀야 한다.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사법부는 고위 법관의 거짓말을 폭력적 방식으로 억지로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법부에 대한 불신만을 더욱 더 가중시킬 뿐이다. 난 이 재판을 진행하면서 사법부에 대한 극도의 반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하나 이성적이고 상식적이고 법률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없었다. 난 이러한 "재판 테러"에 맞서 진정으로 "석궁테러"로 맞서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듯하였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매우 이치에 맞는 모든 증거 신청을 아무런 이유 없이 기각 시키고 재판을 서둘러 종결하였던 것이다. 사법부는 이 치졸하고 음모적인 재판을 시정을 하지 않는다면 커다란 저항에 직면할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난 항소심 최후 변론에서 이렇게 말을 끝맺었다.

 

"재판장. 부끄러운 줄 아세요. 부끄러운 줄 말이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훈 변호사는 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장이며 김명호 교수 변호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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