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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을 쳐다보는 정조. 그의 정치적 꿈은 무엇이었을까?
 하늘을 쳐다보는 정조. 그의 정치적 꿈은 무엇이었을까?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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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산>에서는 크게 세 갈래의 흐름이 전개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장태우와 최석주를 중심으로 한 수구적 조정세력이 정조의 대과 2천명 선발방안에 대해 저항하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혜경궁 홍씨와 홍국영을 중심으로 한 외척세력이 홍국영의 누이(원빈 홍씨)를 후궁으로 들이기 위한 물밑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또 다른 쪽에서는 젊은 개혁군주 정조가 즉위년(1776)부터 규장각을 중심으로 ‘새로운 피’를 수혈하기 위한 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규장각과 관련하여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종래에 차별 받던 서얼들이 이곳을 통해 정치일선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 조정 내 수구세력의 흐름과 혜경궁·홍국영 중심의 흐름을 같은 문단에서 설명하고, 정조와 규장각 중심의 또 다른 흐름을 별도의 문단에서 설명한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후자가 전자를 극복하기 위한 장기적 차원의 포석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정조가 규장각 작업을 진행한 장기적 목적 속에는 조정 내의 수구세력뿐만 아니라 홍국영 같은 외척세력의 척결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정조가 규장각을 세운 목적은?

규장각 설립 초기부터 정조가 그 같은 정치적 의도를 품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한국사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인 것으로 생각된다. 학계의 통념에 따르면, 규장각은 단순한 문화적 목적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를 아우른 복합적 목적 하에서 세워진 국립도서관 혹은 국립학술기관이다.

그런데 정조가 규장각을 설립한 목적 가운데에 홍국영 같은 외척세력의 척결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그 이야기는 정조가 즉위 직후부터 홍국영을 찍어낼 생각을 품고 있었다는 말인가? 정조가 규장각을 세운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이 글의 주제를 먼저 검토한 다음에 홍국영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정조가 규장각을 세운 데에는 원대한 포부가 숨어 있었다. “숨어 있었다”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왜냐하면, 규장각 설립 당시만 해도 정조는 이 기관이 단순히 왕립 도서관에 불과할 뿐이라면서 그 의미를 애써 축소했기 때문이다. 정조가 규장각을 본격 가동한 것은 정조 5년(1781)부터였다.

지난주 <이산>에서는 서얼들이 모여 규장각 설립에 담긴 정조의 숨은 큰 뜻을 ‘너무 일찍’ 폭로해버리는 장면이 방영되었지만, 실제로 설립 당시에는 정조의 정치적 의도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규장각 공사 현장을 둘러보는 정조. 드라마 <이산>.
 규장각 공사 현장을 둘러보는 정조. 드라마 <이산>.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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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규장각 설립에 담긴 정조의 원대한 포부란 무엇일까? 그것은 ‘유교적 이념이 올바로 정립된 새로운 조선사회’의 건설이었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유교적 이념을 올바로 정착시키는 전제 하에서 국가의 근간인 사대부들의 공론을 골고루 수렴하면서 백성들을 두루두루 잘살 수 있도록 만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니, 기존의 ‘유교적 이념’을 근간으로 하는 개혁을 추진했다고 하면서 어떻게 그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조의 인식세계를 들여다보면, 그에게는 ‘제도’보다는 ‘인간’이 문제의 본질이었다. 그는 당시의 조선사회가 체제위기에 빠진 원인을 제도적 문제점에서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이 위기의 본질이기 때문에 ‘인간’을 바로잡으면 조선사회를 구출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에게는 ‘인간’이 올바로 서는 세상이 ‘새로운 세상’이었던 것이다.

‘인간’이 올바로 서는 세상을 만들자면 노론세력만 갖고 나라를 이끌어서는 안 된다. 조선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인간들’을 대표할 만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조정에 들어와야 하고 또 그런 사람들이 군주의 측근에서 국정을 보좌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을 규장각에 두고 나의 측근으로 삼고 싶다. 그것이 정조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규장각을 통해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자 했다. 사색당파는 물론이고 서얼까지도 등용함으로써 규장각을 초당파적인 권력기구로 만들고자 했다. 이 규장각을 통해 신진 인물들을 양성한 다음에 그들과 함께 수구적 조정 중신들뿐만 아니라 외척세력까지도 배척할 것이며,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겠다는 것이 정조의 원대한 포부였다.

정조는 규장각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고 싶어했다

그러므로 기존의 유교적 이념을 꿈꾸었다고 해서 정조가 새로운 세상을 아니 품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지난 2002년에 한국인들이 ‘Again 1966(과거 사실)’을 외치며 월드컵 4강이라는 ‘새로운 ★’을 꿈꾸었듯이, 정조 역시 ‘Again 공맹(孔孟)’을 외치며 ‘새로운 조선’을 열려고 한 것이다.

이런 정치적 의도를 숨긴 채, 즉위년 9월에 정조 임금은 신설 기구인 규장각을 두고 그저 ‘왕립 도서관’ 정도로 그 의미를 축소했다. 장차 이 기구를 바탕으로 수구적 조정세력뿐만 아니라 외척세력까지도 제거하려는 자신의 속뜻을 감추고서 말이다. 정조 특유의 퍼스낼리티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오늘날의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서울대학교 소재.
 오늘날의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서울대학교 소재.
ⓒ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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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정조가 수구적 조정 중신들뿐만 아니라 외척세력까지도 배척할 목적으로 규장각을 세웠다면,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뭐가 이상하다는 말일까?

정조가 그런 목적으로 규장각을 세웠다면, 정조가 규장각 설립 당시인 정조 즉위년(1776) 9월 25일에 홍국영을 규장각 직제학(규장각 책임자인 제학의 바로 밑)에 앉히고 정조 2년(1778) 3월 25일에는 그를 규장각 제학에 앉힌 게 이상하지 않은가? 홍국영 같은 외척을 제거할 목적으로 규장각을 세웠다면서 정작 외척인 홍국영을 그 수장 자리에 앉혔다는 게 어딘가 모순적이지 않은가?

위에서 규장각 설립에 정조 특유의 퍼스낼리티가 작용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정조는 자기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또 일을 한 번에 이루려 하기보다는 차근차근 진행하는 스타일의 소유자였다. 그는 ‘미래의 목표’를 추구할 때에 반드시 ‘현실의 조건’을 고려하는 사람이었다.

홍국영이 규장각 직제학·제학 등을 지낼 때만 해도, 그에 대한 정조의 정치적 의존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즉위 직후만 해도 정조는 인적 기반이 취약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홍국영에게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홍국영에게 규장각을 맡긴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정조가 규장각을 홍국영에게 맡겼던 것은...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홍국영이 규장각 고위 책임자 자리에 있었을 때에는 정조가 규장각에다 온 열정을 쏟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조가 규장각의 조직·기능을 정비하면서 이 기구를 활성화시킨 시점은 홍국영이 제거된 뒤인 정조 5년(1781)이었다. 이때부터 정조는 규장각을 통한 정치적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본격적인 작업을 개시한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팽(烹)이라는 단어를 연상했을지도 모른다. 토사구팽의 그 ‘팽’ 말이다. 정조 역시 사람을 실컷 이용하다가 단물만 쪽 빼먹고 내쳐버리는 그런 류의 ‘인간’이었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기 부인인 효의황후를 죽이려 한 홍국영에 대해 가산만 몰수한 채 낙향시키는 조치를 취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정조는 인간적으로 그렇게 매몰찬 사람이 아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정조의 인간성은 정적을 다루는 태도에서도 잘 드러났다.

홍국영 역시 자신이 싫어하는 외척의 일원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은인인 홍국영만큼은 어떻게든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홍국영에게 규장각을 맡긴 동안에는 홍국영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그가 변화하기를 기다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홍국영이 그런 정조의 마음을 몰라준 게 그의 실각을 초래한 결정적 원인일 것이다.

정조에 대해 너무 호의적인 게 아니냐고 할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정조가 그렇게 매몰찬 ‘인간’이 아니었다는 점 ▲정조가 즉위 직후부터 홍국영을 내칠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볼 만한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에 위와 같이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주군의 숙원인 탕평정치를 외면한 채 자신의 세도정치를 확립시키려 한 홍국영이 제거되고 난 뒤에야 규장각은 비로소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힘찬 뱃고동을 울리게 되었다. 이 규장각을 통해 각양각색의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여 새로운 세상을 한 번 만들어보겠다는 것이 젊은 군주 정조의 원대한 ‘희망사항’이었다.

사색당파는 물론 서얼들까지도 참여하는 새로운 조정을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조선을 만듦으로써 조선의 체제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것이 정조의 열정이었다. 정조 임금이 어느 제왕보다도 열심히, 그것도 밤늦도록 집무실을 지킨 데에는 그 같은 열정이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슬람 군대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코란을 들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조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 손에는 장용영을, 한 손에는 규장각을 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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