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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①] KBS <개그콘서트> 달려라 울언니. 매주 우리의 깍두기 언니들이 모여 자기들끼리 한국 드라마의 "뻔한 공식"들을 연출하고는 "완전 뻔해, 완전 뻔해"를 외치며 박장대소하는 모습.

 

[장면②] KBS <미녀들의 수다>. 잊힐 만하면 끄집어내 이야기 소재로 삼는 한국 드라마의 뻔한 공식들. 얼마전엔 주인공이 손을 들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미끄러져 들어오는 드라마 속 비현실적인 택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처럼 한국 드라마의 뻔한 공식들은 우리 일상과 TV 프로그램 속에서 인기 있는 이야기 소재로 등장하며 끊임없이 환기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선 뻔한 공식을 뻔하다고 조롱하는 것까지도 뻔한 공식의 일부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사실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진부하고 뻔한 공식들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오죽하면 <라듸오 데이즈>란 영화에선 "출생의 비밀, 애인으로 만났는데 알고 보니 이복 남매, 불치병"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드라마의 원형을 소급해 보니 1930년대 신파극이었다는 엉뚱한 상상을 다 했을까?

 

그와 같은 영화적 상상이 사실이든 아니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 연극, 영화 등에서 정형화된 공식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멀게는 고대 신화와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가깝게는 셰익스피어와 제임스 조이스에 이르기까지 출생의 비밀, 비극적 운명 같은 영웅서사의 전통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뻔한 공식의 정식 이름은 클리셰

 

따라서 오늘날 한국 드라마에 난무하는 "뻔한 공식"들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비단 한국 드라마 뿐만 아니라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도 진부한 연출과 작위적인 설정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할리우드 영화에서 모든 전화번호 국번이 555라든지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가 "엎질러진 음료수"로부터 비롯된다든지 하는 따위다. 이를 일컬어 "클리셰(Cliche)"라 한다.

 

원래 클리셰란 말은 19세기 인쇄공들이 활자판에 쉽게 끼워 넣을 수 있도록 미리 만들어 놓은 조판을 의미하는 인쇄 용어였는데 19세기 말부터 진부한 문구나 생각, 개념을 비유하는 의미를 포괄하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판에 박은 듯한 문구 또는 진부한 표현"을 가리키는 문학용어로도 쓰이고 있다.

 

앞서 소개한 <개그콘서트> <미녀들의 수다>에서 소재로 삼았던 "뻔한 공식"의 정식 이름이 바로 "클리셰"인 셈이다. 알고 보면 출생의 비밀, 시한부 인생 같은 클리셰들은 한류 드라마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세계가 공유하는 코드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류 컨텐츠를 구성하는 다양한 클리셰들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에서처럼 영화와 관객을 매개하는 유용한 장치나 소품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클리셰를 무제한적으로 허용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만약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들이 매번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채 태어나 불치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연인과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다 결국 이복남매임을 알게 되어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클리셰는 양날의 검과도 같다.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득이 되지만 무분별하게 남발하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555국번만 사용하는 것, 신생아의 신체 사이즈가 일정한 것(주로 생후 2개월 된 아기를 출연시키기 때문), 한국 영화에서 장바구니에 꼭 파가 담겨 있는 이유(가볍고 풍성해 보여서) 등은 가벼운 애교 정도로 봐줄 수 있지만 출생의 비밀이나 시한부 인생처럼 서사구조의 일부로 차용되는 클리셰들은 한두 번만 사용해도 수명이 다했다고 봐야 한다.

 

컨텐츠 개발만이 살 길이다

 

요즘 한류 컨텐츠의 고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에선 무분별하게 남발한 우연과 작위적 설정 등이 한류의 생명을 단축시켰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분명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동안 전세계로 퍼져 나간 한류는 나름대로 다양성을 확보하면서 질적 성장을 도모해 왔다.

 

초창기 한류를 이끌었던 컨텐츠가 비극적 서사의 클리셰들로 촘촘하게 그물을 짠 <가을동화> <겨울연가> <천국의 계단> 등이었다면 최근 한류는 다양한 분야에서 문화 교류의 형태를 띠고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할리우드 제국주의로 대변되는 미국의 방식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바로 여기에 한류가 지향해야 할 미래가 있지 않을까? 할리우드 제국주의에 맞서 우리 문화 주권을 지키는 동시에 전세계인들에게 친근하고 따뜻한 동반자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한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태그:#클리셰,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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