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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밥하고 나물 가지고 왔다.  보름날은 지났지만 먹어봐라. 안 먹으면 올 한해가 왠지 서운할 것 같아서.”

“어머나 엄마!”

“할머니 이젠 그렇게 무거운 거들어도 돼?”

“응 간신히 들고 왔어.”

 

딸과 큰손자가 놀란다.

 

 

 

정월 대보름은 지났지만 왠지 섭섭한 마음이 들어 24일 오곡밥을 안치고 나물을 무쳤다. 일요일이라 마침 우리집과 딸네 가족도 모두 집에 있기에 조금씩 담아서 딸아이 집에 갖다 주었다. 딸아이는 “이젠 손을 마음대로 써도 되나보네. 좀 더 쉬지”라고 한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손이 아픈 동안 많은 것을 느껴, 며칠 늦었지만 가족들을 위해서 오곡밥과 나물을 볶은 것이다. 보름이 3~4일 지났지만 손은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이젠 물리치료도 안 해도 된다. 그 대신 집에서 뜨거운 타월로 찜질을 하고 손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뜨거운 물속에서 손을 굽혔다가 폈다가, 주먹을 꽉 쥐었다가 폈다가 등을 되풀한다. 그렇게 하루에 2~3번씩 해주면 할 때마다 한결 달라진 것을 알 수 있기에 꾀를 부릴 수 없는 것이다. 아플 동안 가족들에게 무엇을 해주고 싶어도 못해주다 보니, 가족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또 아프니깐 하고 싶은 일은 왜 그리도 많은지. 며칠 전 보름날에 하고 싶었지만 그때는 지금만큼 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할 수가 없었다. 쌀을 힘주어서 씻어 준다거나, 파를 썬다거나 마늘 다지는 것, 나물의 물기를 짜는 것 등 힘을 주면서 손놀림을 할 수 없었다. 하여 이번 보름명절은 ‘그냥 지나가야하는가 보다’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지난 일요일 아침 일어나보니 한층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깁스를 푼 지도 15일이 지났지만 한꺼번에 좋아지지는 않고 있다. 날마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필요한 만큼만 좋아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손은 퉁퉁 부어 주먹을 쥘 수가 없다. 잠시 마사지를 해주고 나면 이내 부드러워져서 손을 폈다 오무렸다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양치질을 해보면 어제보다 오늘, 얼마만큼 좋아졌는지 알 수 있다. 윗니와 아랫니의 안과 밖을 어제보다 더 골고루 잘 닦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를 감을 때도 손에서 가까운 곳은 비비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머리를 감을 때마다 전보다 더 골고루 비빌 수 있다. 

 

외출을 할 때는 아직 보조기구에 의지를 할 때가  더러 있지만 이만큼 손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러면서 정말 중요한 것을 깨우쳤다. 몸은 빨리 빨리 서두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은 천천히, 천천히 변하는 것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다쳤던 손이 한꺼번에 좋아진다면 인간인 나는 아마도 교만에 빠질 수도 있었으리라.

 

가끔, 아무 생각없이  오른손을 사용하면서도 문득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내가 이렇게 자유롭게 오른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어제 힘들게 들었던 국 냄비를 오늘은 덜 힘들게 들 수 있었다.

 

오늘(25일)은 아침부터 오른손을 이용해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쓰레기도  버렸다. 그런가하면 저녁 때는 오른손으로 쌀을 씻어 밥을 짓고, 냉장고  문을 열어 김치를 꺼내 썰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밥상을 차려 줬고, 설거지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해왔던 이런 일상들이 이렇게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몸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주 천천히 천천히를 원하고 있듯이, 앞으로 무슨 일이 닥쳐도 성급하게 서두르기 보다는 때가 되기를 기다리는 지혜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태그:#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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