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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객의 칼이 정조를 겨누다. <이산> 제46회 예고편.
 자객의 칼이 정조를 겨누다. <이산> 제46회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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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위식 직후 왕궁의 수비가 소홀해진 틈을 타서 정후겸의 자객들이 대전을 습격한다. 대전 내관·상궁들을 죄다 죽이고 침전까지 범한 자객은 국왕의 목에 칼을 들이댄다.

정후겸 세력이 전답까지 팔아서 스카우트한 일급 자객의 칼날에 이산이 이번엔 정말로 죽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들지 모르지만, 우리의 이산은 언제 배웠는지 그의 특급 검술을 일급 무사 앞에서 뽐낸다. 결국 자객들은 모두 진압되었다.

거사가 실패했음을 확인한 정후겸과 화완옹주는 청나라 망명을 시도하지만, 양화진 포구에서 홍국영과 금군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홍국영이란 존재는 정후겸에게 영원히 넘을 수 없는 장벽이었을까? 이제 정후겸은 정조의 처분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상은 25일 밤에 방영될 <이산> 제46회 스토리 중 일부다.

이산이 출생하기 3년 전인 1749년에 인천의 어물전에서 태어나 평범한 유년기를 보내던 중에, 남편 없는 화완옹주의 양자가 되는 일대 행운을 걸머쥔 정후겸. 영조의 총애와 화완옹주의 지원에 힘입어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나이 29세에 참판(차관급) 자리에까지 오른 정후겸. 동년배인 세손의 등극을 막고 어떻게든 자기 세상을 만들어보고자 했던 정후겸.

그는 자신의 두뇌와 능력을 믿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그가 결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있었다. 그 벽이란 신분제적 왕조사회였다. 그가 아무리 머리와 능력이 좋다 해도, 별다른 결격사유 없는 세손 이산을 몰아낼 만한 명분과 역량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전봉준처럼 혁명적 대의와 역량을 보유한 것도 아니면서 그저 머리 하나를 잘 굴려서 권력을 잡아보려 한 정후겸은 처음부터 ‘넘볼 수 없는 것’을 넘본 사람이었다. 그는 <정감록>의 정 도령도 아니면서 자신이 세상을 어떻게 한 번 해보려고 시도했다. 그런 그를 기다리는 것은 가혹한 형벌뿐이었다.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정후겸을 두고 1776년 정조 즉위 직후부터 조선정부에서는 처벌 논의가 진행되었다. 홍인한과 더불어 정조의 등극을 극렬히 방해했을 뿐만 아니라 만만치 않은 세력을 보유한 정후겸을 그냥 두고서는 정조가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정조는 처음에는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공제(公除)가 끝난 후에 처결하자는 것이 정조의 생각이었다. 공제란 왕이나 왕비가 죽은 후에 26일 동안 공무를 중지하고 조의를 표하는 것을 가리킨다.

실록에 나타난 정조의 발언들을 근거로 할 때에, 그가 이 문제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위하자마자 정치적 복수극을 벌이면 백성들이 보기에 볼썽사나울 것이고 또 화완옹주의 양자로서 한때 영조의 총애를 받은 거물급을 섣불리 처리했다가는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랫사람들이 가만두지 않았다. 임금은 “좀 더 기다려보자”고 했지만, 대신들과 삼사가 임금을 압박했다. 어서 그를 처벌하라고.

할 수 없이 정조는 그에게 유배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변방인 경원부(慶源府)로 귀양을 보낸 것이다. 화완옹주에 대해서는 “그가 이미 사저로 돌아갔으므로 따로 논할 것이 없다”며 ‘열외’로 놔두었다. 이때가 즉위식 15일 뒤인 1776년 5월 12일이었다.

 도주하는 정후겸과 화완옹주. <이산> 제46회 예고편.
 도주하는 정후겸과 화완옹주. <이산> 제46회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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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좌제가 금지되지 않던 시대에, 대역죄를 지은 정후겸의 가족이 무사할 수는 없었다. “그의 생부와 형제들이 도성에 버젓이 살아 있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는 의견이 올라오자, 정조는 “정석달(정후겸의 생부) 부자를 향리로 돌려보내라”고 명령한다.

정후겸이 유배를 당하고 그의 가족이 도성에서 쫓겨났지만, 새로운 권력은 결코 그 정도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에 대한 형벌이 너무 가볍다는 의견이 계속 빗발쳤다. 사실상 “죽이라”는 요구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래도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정조는, 유배 중인 정후겸에게 천극을 추가하는 것으로써 상황을 일단 무마하려고 한다(6월 20일). 천극이란 유배된 죄인이 거주하고 있는 가옥의 둘레에 가시 울타리를 쳐서 외출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다.

고작 천극? 그런 변방에서 외출할 일이 뭐 있다고 외출을 금해? 정후겸을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너무나 관대한 처분’이었다. 그런 여론을 대신해서 대사헌 홍억이 정후겸에 대한 중벌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린다(7월 8일). 하지만 정조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홍억이 매우 솔직한 어조로 다시 한 번 요구한다(7월 10일).

“죽이십시오!”
“어찌 차마!”

어찌 차마라니? 행공조판서 박종덕 등이 나서서 “정후겸을 주살하십시오!”라며 정조를 압박한다. 하지만, 정조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1776년 8월부터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겨났다. 성균관 유생들까지 나서서 정후겸을 사형시키라고 요구한 것이다. 유교적 사대부 사회에서 선비들의 여론은 오늘날의 민심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위력적인 것이었다. 또 이것은 정조의 도덕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될 수도 있었다. 선비들의 여론을 등에 업고 정후겸을 죽인다면, 고모의 아들을 죽였다는 도덕적 지탄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죽여도 될 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정조는 곧바로 행동에 착수하지 않았다. 보다 더 강한 명분을 만들어 둘 필요를 느낀 모양이다. 그는 8월 16일 전국 방방곡곡에 ‘담화문’을 반포한다. 정후겸을 포함한 역당들의 죄목을 소상히 밝힌 것이다.

가르치지 않고 형벌을 가하는 것은 유교적 도리에 어긋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담화문 반포는 내가 왜 정후겸을 죽일 수밖에 없는지를 사전에 널리 인식시키려는 의도를 담은 것이었다. 물론 이 ‘담화문’에서 정후겸을 죽이겠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정조는 그럴 의도를 담고 그 같은 담화문을 발표한 것이다.

 구속된 정후겸. <이산> 제46회 예고편.
 구속된 정후겸. <이산> 제46회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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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문이 반포된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8월 18일 아침에 대신들이 정조를 찾아왔다. 아마 그들도 정조의 심기 변화를 대충 파악했을 것이다. ‘기대’대로, 그들은 이번에도 정후겸을 죽이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정조는 대신들의 요구를 또다시 물리친다. 여전히 죽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싶었던지, 그 날 저녁에 대신들이 정조를 재차 알현한다. “꼭 죽여야 합니다!”

그제야 정조는 오케이 사인을 내린다. 아무래도 정후겸을 죽여야 할 것 같다고. 내 어머니께서도 그게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마지막으로 그는 한마디의 단언을 내린다.

“국법을 어길 수 없고 여론을 막을 수도 없다. 정후겸을 사사하라!”

정후겸을 죽이라는 명령은 반가웠지만, 아니 사사라니? 참형을 가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약사발’을 먹이겠다니?

대신들이 또 나섰다. “사사는 너무 가볍습니다.” “그만 해라.”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렇게 해서 정후겸에게 사사를 내리기로 결정되었다.

조선사회에서 사사라는 것은 일본사회에서 할복과 마찬가지였다. 무사의 명예를 존중해서 스스로 배에 칼을 긋도록 한 것처럼, 정후겸의 명예를 존중해서 스스로 ‘약사발’을 들이키도록 한 것이었다.

그래서 정조가 내린 사사는 정후겸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였다. 고모의 아들로서 할아버지의 총애를 받은 사람이고 또 머리가 좋고 능력 많은 정후겸에게 정조가 내릴 수 있는 최대한의 ‘인정’이었다. 또 그것은 반대파의 수괴를 너무 가혹하게 처벌하면 자신의 치세에 흠집이 생길지 모른다는 우려에 기인한 것이기도 했다.

항상 자신을 음해하고 막판까지 등극을 방해한 정후겸에게 정조는 마지막 ‘인정’을 베풀었다. 마음 같으면 능지처참을 해도 속이 풀리지 않았겠지만, 정조는 사적인 분노를 억제하고 공적인 분노에 입각하여 ‘덜 가혹한’ 형벌을 그에게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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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101.9 (목)11시25분경. (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노비들,왕의 여자,철의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