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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1일 오전 10시, 서강대학교 체육관에서 2008년도 입학식이 열렸다. 법대생으로서, 입학식에서 법대 후배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에 버스를 타고 신촌으로 향했다.
 
입학식이 시작할 즈음에 학교 정문 입구에 도착했다. 정문 앞에서 꽃다발을 진열해놓고 파는 아주머니들이 보였다. 체육관으로 향하는 길에는 동물 옷을 입은 학생들이 새내기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들이 "신입생이세요?"라고 물으면서 건네주는 종이에는 동아리 이름이 적혀있었다. 
 
정문에서 시작되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가 체육관으로 가는 길에서 방향을 돌렸다. 체육관과 약 100m 쯤 떨어진 곳에서부터 신입생들과 학부모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행렬의 중간 즈음에는 학교 홍보 대사인 학생들의 천막이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신입생과 학부모에게 차와 커피를 나눠주었다.
 
천막에서부터 체육관에 이르는 곳까지는 형형색색의 크고 작은 깃발이 죽 늘어서 있었다. 깃발에는 단대나 학과를 나타내는 재밌는 그림이나 글씨가 알록달록하게 쓰여 있었다. 무지갯빛 화려한 깃발이 맑은 하늘 아래에서 펄럭이는 모습은 실로 매혹적이었다.
 
 
깃발의 색깔과 크기,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는...
 
하지만 깃발의 색깔과 크기가 다양한 이유는 절대 미를 추구해서가 아니다. 깃발의 색깔과 크기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깃발의 색깔은 학교 내 각 단대를 상징한다. 가령, 경영대는 파란색, 문과대는 빨간색이다. 깃발의 크기는 소속의 크기를 의미한다. 크기가 약 3m되는 깃발은 단대를 나타내는 깃발이고, 1m되는 깃발은 학과나 학과 내의 조를 나타내는 깃발이다.
 
그리고 깃발은 단대와 학과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입학식 며칠 전, 후배들이 법대 깃발을 만드는데 참여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1년 전, 서강대에서는 사회과학대 소속이었던 법학과를 법대로 승격시켰다. 그래서 법대에서는 사회과학부 소속의 노란 깃발을 버리고 올 해 새로운 깃발을 만들기로 했다.
 
여러 논의 끝에, 법대 학생들은 깃발 색깔을 검정색으로 결정했다. 깃발을 만들기로 한 날 학교에 도착하니, 이미 후배들이 검정색 테두리가 쳐진 커다란 천과 작은 천을 준비해 두었다. 그래서 곧바로 시너와 페인트를 섞어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글씨를 쓰는 시간은 꽤 오래 걸렸다. 두 깃발을 다 썼을 때는 4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리고 단대 깃발은 너무 커서 바깥에서 써야 했다. 어둡고 쌀쌀한 곳에서 학생들은 핸드폰 불빛으로 글씨를 비추었고, 붓을 잡은 손은 추위에 부르르 떨렸다. 다른 학생들은 깃발이 완성될 때까지 율동을 하면서 추위를 이겨냈다.
 
결국 다음 날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새 깃발은 학생들이 이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을 정도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입학식 날, 다른 단대 깃발들과 함께 펄럭이고 있는 법대 깃발을 보니 매우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힘들어도 새내기를 위해서라면! 열정적인 학생들의 모습
 
깃발 아래에서는 학생들이 신입생 명단이 적힌 전지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학생들은 체육관에서의 입학식이 끝난 후 신입생들을 인솔해야 했다. 그래서 새내기들이 어느 깃발 아래 모여야 하는지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법학과 학생들도 단대, 학과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쳤다. 한 명이 선창하면, 나머지가 제창했다. 과 대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청년! 서강! 열정! 법대! 자주! 법학! 신입생! 신입생! 여러분! 여러분!
 이름 확인하고 가세요!” 
 
“우리는 자~랑스런 서강 법돌이~ 법순이!”
자주법학 깃발아래 여~기 모였다!
너와 내가 함께 올린 우리 모~두의 깃발,
이제는~ 우리가~ 당당한 주인이다!“
 
그런데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의 표정이 조금 지쳐보였다. 이유를 물으니 아침 8시에 학교에 모였는데 아침을 못 먹었단다. 다른 학생들도 구호를 외치고 나면 배고프다고 중얼거렸다. 구호를 외치다 목이 쉰 학생도 있었다. 한 학생은 입학식에 관한 기사를 쓴다고 했더니 “입학식 기사? 그거 여기 학생들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얘기 쓰면 되겠네”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새내기들이 체육관에 들어갔는데도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들은 쉬는 시간이 되자 어디서 스피커를 들고 오더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쉬고 있던 다른 학과 학생들도 율동을 했다. 소속을 불문하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율동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11시쯤 되자 신입생들이 체육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재빨리 깃발을 들고 대열에 섰다. 새내기들은 자신의 소속 깃발을 찾아 그 뒤에 섰다. 학생들은 전지에 적힌 새내기 이름에 체크를 했다. 신입생들이 거의 다 모이자 학생들은 신입생들을 인솔해서 다른 장소로 데리고 갔다. 새내기들은 깃발을 따라 두 줄로 서서 이동했다.
 
 
선배인 학생들은 신입생들의 수강신청 시간인 8시까지 분주히 움직였다. 신입생들은 행사에 따라 장소를 옮기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학생들은 인솔 도중에 신입생들이 실수로 이탈하는 일이 없도록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였다. 행사가 완전히 끝났을 때는 이미 깜깜한 밤이었지만, 학생들은 마지막까지 새내기들을 챙겼다. 그리고 같은 달 24일 오리엔테이션 날 그들과 다시 볼 것을 기약하며 인사를 했다.
 
마지막 학번, 이에 대한 법대 학생들의 생각
 
2008년도 입학식은 끝났다. 이로써 법대가 참여하는 입학식도 완전히 끝났다. 로스쿨로 선정된 대학의 경우 2009년부터 법대 신입생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신입생들에게는 입학식 행사보다 후배들을 돕는 선배들의 모습이 더 많은 인상을 심어줬나 보다. 신입생인 허민강(18) 학생은 입학식 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수강신청을 도와주던 선배들을 꼽는다. 그는 “PPT와 유인물 등으로 수강 신청 방법을 설명해 준 것, 그리고 피곤할 텐데 컴맹이고 수강신청에 미숙한 후배들을 챙겨주던 모습이 정말 존경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법대 마지막 학생으로서의 기분은 어떠할까. 그는 “많이 안타깝다. 하지만 마지막 학번이니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마지막 학번이라는 점이 그만큼 더 서로 뭉치는데 동기부여도 될 것”이라고 했다.
 
기존 법대 학생들의 경우 마지막 후배를 맞이하기 위해 그간 많은 준비를 해왔다. 법대 새내기맞이사업단(줄여서 ‘새맞단’)에서는 12월 초부터 신입생 환영회, 입학식, 오리엔테이션 행사 등을 위한 회의를 했다. 회의에서는 행사에서 새내기들을 어떻게 인솔할 것인지, 그들과 무슨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인지 꾸준하게 의논했다.
 
새맞단 일원인 박진현(20) 학생은 “새맞단을 통해 법대 선후배와 동기들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있어 즐겁다”고 했다. 마지막 후배에 대해서는 “후배들이 우리처럼 선배로서의 기분을 못 느낀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일원인 홍성우(19) 학생은 "작년에는 신입생이었지만, 이번에는 선배로서 신입생들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매우 뿌듯하다. 새맞단 활동을 통해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과 후배들에 대한 열정이 더욱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도 이번에 맞이하는 후배가 법대 마지막 학번인 점을 아쉬워했다. 그는 “법대에서 과 활동을 주도할 신입생들이 올 해로 마지막이라는 점이 아쉽고 쓸쓸하다”며 “앞으로 남은 새맞단 활동도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끝마치고 싶다. 후배들이 선배들을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법대는 사라지지만, 선후배간의 사랑은 사라지지 않아
 
학생들의 활동은 입학식으로 모두 끝난 것이 아니다. 깃발 아래 구호를 외치고 새내기들을 인솔하던 학생들은, 2박 3일간 진행되는 학교 오리엔테이션에서도 신입생들을 도와야 한다. 오히려 학생들의 입장에서 입학식보다 더 힘든 것이 오리엔테이션이다. 법대 학생들은 이번에도 신입생들의 마지막 오리엔테이션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입학식은 2008년도 첫 학교 행사로서, 법대 학생들의 후배 사랑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자리였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법대가 사라진다고 해도 선후배를 서로 아끼는 법대 학생들의 마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태그:#입학식, #서강대, #서강대학교,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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