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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0도. 바람이 불었다. 살을 에이는 듯했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고 한다. 개성쪽의 얕으막한 산들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북녘 땅이다. 안개가 약간 낀 탓인지 송악산은 보이지 않았다.

 

바로 아랫쪽에는 강이 흘렀다. 예성강과 한강, 임진강이 만나는 조강. 어머니의 강이라고 불렀다. 한강 하구인 이곳의 강물은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 잔잔했다.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강이지만 그나마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곳이다.

 

지금은 분단의 강, 내년에는 개발광풍?

 

하지만 내년 2월에는 어떤 몰골로 변해있을 지 모른다. 바로 이곳이 '이명박 운하'의 첫 관문인 용강갑문 예정지이기 때문이다. 운하 찬성론자들은 그럴 듯한 그림판에 용강갑문을 그려 넣었지만 만약 갑문을 세우려면 북쪽과 협의가 불가피해 보였다. 그래도 기어코 운하가 만들어진다면 어머니의 강 바닥은 포크레인 삽날에 찢기고, 곳곳에 쇠못이 박힐 것이다. 그리고 콘크리트 흉물들이 양쪽에서 강을 옥죌 것이다.     

 

"자비의 종자가 말라가고, 뭇생명이 죽음으로 내몰릴 현장으로 이 길을 떠납니다. (중략) 이 땅의 산과 강은 생명의 요람이요, 성당이요, 교회요, 법당입니다."

 

100일 기도 순례를 떠나며 수경 스님(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이 한 말이다. 12일 오후 1시,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에 위치한 민통선, 애기봉 전망대에서의 출발은 이렇게 시작됐다. 목사, 신부, 교목, 스님 등으로 구성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단장 : 이필완 목사)의 첫 발걸음. 

 

날은 추웠지만, 전망대 강당에는 20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양재성 목사 등 개신교 목사만도 20여명은 족히 참석했다. 기자들만도 50여명이 넘었다. 주최측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인파다.

 

낯익은 얼굴들도 많았다. 도법, 수경, 법륜 스님을 비롯해, 얼마전에 은퇴식을 가진 문정현 신부도 지팡이를 들고 나왔다. 문규현 신부도 보였다. 김지하 시인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와서 한참 숨을 고른 뒤 마이크를 잡았다.  

 

사회자인 이주향 교수(수원대)는 뒤늦게 도착한 김지하 시인에게 마이크를 넘기며 김 시인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소개했다.

 

"(이명박 운하는) 한반도의 창자를 꺼내는 짓이다."

 

 

기자, 눈시울을 붉히다

 

취재한답시고 볼펜을 꺼내든 기자가 이런 얘기를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이영자 환경정의 공동대표가 연대사를 할 때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운하사업을 구세주라고 내세우며 허세를 부리는 그 무지가 끔찍하기만 합니다. 그 무지가 지금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을 분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그 분노는 이러한 무지가 판을 치는 세상이 바로 우리 자신이 만들어왔고 또한 열심히 살아온 세상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기분노이기도 합니다."

 

문정현 신부도 한말씀 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데 저희는 팍팍한 10년을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 장애를 놓은 사람들이 바로 지난 10년동안 권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팍팍한 10년을 청산하고 진짜 친환경을 보여줄 때가 왔습니다."

 

윤인중 목사의 '여는 말씀'은 새로 태어나기 위한 돌팔매였다.

 

"앞으로 여러분이 걷고자 하는 길은 어려운 길입니다. 돌팔매를 맞을 수 있고, 모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욕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돌을 맞고 욕을 먹고 모욕이 가해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웃을 수 있는 우리가 되고, 생명의 목소리를 펼칠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속에서 생명평화의 물길이 이어지고, 이 당선인의 눈과 귀가 열릴 것입니다."

 

이필완 목사가 낭독한 출정기원문은 절규에 가까웠다.

 

"새정부가 적극 추진하려는 '이명박표 대운하 구상' 앞에서는 눈 앞이 캄캄할 뿐입니다. 유사 이래 한반도의 가장 큰 지형 변화를 가져올 역천(逆天)의 유령과 그에 따른 국론 대분열의 '마구니' 앞에서 소름끼치고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금수강산은 생체실험용 쥐가 아닙니다.(중략) 위기에 처한 유정무정의 생명체들에게 안부를 묻고 또 물으며 우리 모두 더불어가는 이 참회의 길, 성찰의 길 위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순례단은 생명평화를 위한 첫 걸음을 뗐다. 애기봉 전망대 진입로 입구까지 순례 행렬은 200여m에 걸쳐 길게 이어졌다. 그곳까지 배웅을 나온 신도들과 헤어진 뒤 50여명의 종교인들과 마주친 인상적인 행렬은 작전 중인 탱크부대. 아스팔트를 진동하는 궤도 옆쪽으로 비켜선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과는 묘한 대조를 이뤘다. 작전 중인 병사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위협적으로 돌출한 긴 포신을 보면서 '불도저 운하'를 떠올렸다.  

 

노숙하는 순례단의 천막 위에 뜬 초생달

 

 

3시간여에 걸친 첫째날 9km의 도보 순례는 김포 하석면 석탄 4리 마을회관에서 마쳤다. 그 곳에는 이미 불교환경연대 등에 소속한 지원단이 텅빈 비닐하우스에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반찬은 멸치와 김치, 그리고 고추장.

 

"난 국 좀 많이 줘."

 

수경 스님의 말이다. 찬 기운이 도는 모양이다. 도법스님은 두 개의 그릇에 국과 밥, 반찬을 조금씩 담아들고 비닐하우스 바깥 노천에 철퍼덕 주저 앉아 말없이 식사를 했다.  

 

순례단은 한 야산 밑에 위치한 조그마한 텃밭에 두 개의 천막을 치고 침낭 속에 몸을 반쯤 묻은 채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설날, 모처럼 고향에 내려간 어르신들이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주제도 정하지 않고, 중구난방식으로….

 

"그래도 오늘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시작이 반인데, 오늘 성공했으니 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양재성 목사의 말이다. 깔끔한 마무리. 

 

이들은 앞으로 100일동안 생명평화에 대한 끝없는 얘기를 나눌 것이다. 천막 밖으로 나오니 찬바람을 맞으며 초승달이 빛나고 있다.    

 

찬바람을 천막으로 간신히 막고 노천에서 잠을 청하는 어르신들을 뒤로하고 <오마이뉴스> 기자 일행은 기사를 쓴다는 '핑계'로 석탄 3리 마을회관에 작업장을 차렸다. 밤이 늦도록 자판 두드리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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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들과 함께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고 싶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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