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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12일 오전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인수위 간사단 회의에서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에 대해 발언을 하고 있다.

 

애초부터 협상이나 합의는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대불공단 전봇대 제거, 민주노총 방문의 일방적 취소, 영어 공교육 개편 추진 등 모든 일이 그랬다. 원칙과 과정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실적과 결과가 앞선다. 70년대 건설회사 CEO로 다져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불도저 리더십'이다.

 

건국 이후 최대 규모라는 정부조직개편을 단 한달만에 '뚝딱' 해치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당초부터 무리였다. 정치는 기업경영과 다르기 때문이다. 국민적 공감대는 물론 공직사회로부터 최소한의 동의를 끌어내는 절차도 없었다. 그나마 '예비야당'과의 협상과정을 보면 가관이다.

 

야당에 의사타진도 해보기 전에 협상채널부터 공개하고,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대국민담화'로 야당을 압박한다. 그리고 단 12분 전화로 대화를 갖고는 '최후통첩'을 날린다.

 

아예 협상할 생각이 없었거나, 최소한 협상이 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정부조직개편'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의 추진을 통해 야당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총선전략' 차원에서 지금 국면이 전개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야당 대표는 대통령 당선인의 대기인인가?"

 

12일 국회가 있는 여의도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가 위치한 삼청동 사이에는 하루종일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를 두고 여야 간에 진행된 네 번째 협상이 전날(11일) 결렬됐기 때문이다. 통일부 존치·국가인권위원회 독립 등의 문제에 대해선 성과를 낸 반면, 해양수산부·여성부·농촌진흥청 존폐 문제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포문은 대통합민주신당(이하 통합신당)에서 열었지만, 원인은 인수위가 제공했다. 오전 9시 20분경 국회 브리핑룸을 찾은 우상호 통합신당 대변인은 "이명박 당선인 인수위에 항의할 일이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오늘 아침 언론인들로부터 수십 통의 전화를 받았다…. 확인해본 결과 이명박 당선인과 손학규 대표 사이의 면담이 오늘 이 시간까지 추진된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수위 측에서 현재 추진 중이라고 언론에 발표하는 바람에 계속 연락이 오고 있다."

 

그러면서 우상호 대변인은 "야당 대표에게 사전에 연락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면담을 추진 중이라고 발표한 것은 야당을 경시하는 집권세력의 오만하고 불손한 태도"라며 "야당 대표는 대통령 당선인이 연락하면 언제든지 만나줄 수 있는 대기인이 아니다"고 성토했다.

 

 12일 오전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자실에서 이동관이 대변인 정부조직 개편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마이크는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에게로 넘어왔다. 오전 9시부터 이명박 당선인 주재로 열린 '정부조직개편안 협상 결렬 관련 관계자 회의'가 끝난 직후였다. 이 대변인은 "당 대표, 원내대표를 비롯한 전 의원들이 신당 의원들과 개별 접촉해 전방위로 마지막 설득 노력을 하기로 했다"며 "이경숙 위원장을 포함한 인수위원들도 조속 처리를 위한 모든 채널을 이용해 접촉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특히 이 대변인은 "당선인이 손학규 신당 대표와 접촉을 갖고 최종적으로 다시 설득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접촉 방식에 대해선 "물밑 접촉은 아니고 손 대표와 연락해서 가능하면 직접 만나 호소를 하고, 아니면 전화로라도 통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동관 대변인의 브리핑은 "언론플레이"(우상호 대변인)라는 비판을 받았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이날 오전 10시 40분경 손학규 대표 측에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는 성사되지 못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날 낮 김효석 신당 원내대표를 만났다고 밝혔지만, 따로 약속을 잡고 만난 것이 아니라 길을 가던 김효석 원내대표를 붙잡아 10분 정도 얘기를 나눈 게 전부다.

 

이경숙 위원장이 정부조직법 개정안 조속 처리를 위해 이용한 채널은 다름 아닌, '대국민담화'. 협상 대상은 제쳐놓은 채 국민을 상대로 공개적인 '전방위 압박'에 나섬으로써 오히려 협상 대상을 자극해 상황을 악화시켰다.

 

 우상호 대통합민주신당 대변인이 17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의 최고위원에 강금실 전 법무장관과 박홍수 전 농림부장관, 유인태 의원, 정균환, 김상희 현 최고위원, 홍재형 의원, 박명광 의원 선임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당선인 측에서도 이날 오후 3시경까지 손학규 대표 측에 면담 등을 위한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우상호 대변인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오전에 이어 두 번째 '항의성' 브리핑인 셈이다.

 

우 대변인은 "사전 조율된 내용도 없이 일방적으로 만나겠다, 만날 계획이다, 만남을 추진 중이라는 식의 언론플레이를 중단해 달라"고 촉구했다.

 

우 대변인은 이어 "야당 대표와 대통령 당선인이 만날 정도로 중요한 면담 내용을 인수위 대변인이 기자브리핑을 하면서 그렇게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것이 야당 대표에 대한 예우로 맞느냐"며 "이러한 내용을 인수위 대변인이 왜 발표하느냐"고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대국민담화에 대해서는 신당의 최재성 원내 대변인이 반박했다.

 

"이경숙 위원장의 대국민담화는 사실상 야당에 대한, 국민에 대한 협박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어제, 오늘 상황을 보면 각료 15명만 청문회를 요청해 파행적으로 내각을 구성해 출범할 수 있다는 협박을 서슴지 않고 있다. 나라를 이끌어갈 국정운영의 주체세력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 정상적으로 차기정부를 출범시키겠다고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이다."

 

최재성 대변인은 "이번 협상이 결렬되기 전부터 이명박 당선인과 인수위, 한나라당은 '만약에 인수위 안을 받지 않으면 절름발이 출범을 할 수 있다'고 협박을 해왔다"며 "그래서 우리는 짜여진 정치적 각본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의혹을 제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최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이명박 당선자는 신이고 손학규 대표는 노예냐", "토끼몰이를 당하는 기분이다" 등의 거친 표현을 써가며 이명박 당선인 측을 맹성토했다.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은 뒤 받아들이기 어려운 안을 내놓고 1센티미터도 못 움직인다고 하고, 총선 때 보자는 것 아닌가. 지금 인수위 안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로서는 사약을 들이키는 것과 같다."

 

드디어 이뤄진 전화통화 12분... '최후통첩'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통합신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손학규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후 4시 20분경 이명박 당선인과 손학규 대표의 전화통화가 이뤄졌다. 이 당선인 측이 먼저 전화를 걸었지만 손 대표가 받지 못했다가 나중에 이 당선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12분 정도 진행된 통화에서 이 당선인은 "대화가 잘 안 되면 (통일부까지 폐지하는) 우리의 원안을 그대로 가지고 갈 수밖에 없다"고 압박했다. 사실상 최후통첩인 셈이다.

 

이에 손 대표도 목청을 높이며 "이것은 정부 골간의 사안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끌고 갈 문제가 아니다, 우리 야당과 잘 협조해서 융통성을 발휘해달라"고 맞섰지만, 이미 상황은 '협상 종료'로 치달은 뒤였다.

 

우상호 대변인은 "이 당선인이 야당을 대하는 자세가 진지함이 좀 떨어지는 것 같다"며 "전체적으로 보면 (이 당선인 측은) 나름대로 할 만큼 했다는 명분 쌓기용 정치공세가 아니냐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당장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13일까지가 마지노선"이라며 "협상이 결렬되면 확정된 부처에 대한 조각만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명박 당선인 측으로서는 아쉬울 게 없는 상황이다. 일단 '부분 조각'으로 정권을 출범시킨 뒤, 4월 총선에서 이를 문제삼아 신당의 '발목잡기'를 부각시키겠다는 계산이 깔렸다. 이명박 정부의 조직 개편은 총선 이후에 안정적인 의석을 확보한 뒤에 재추진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이명박 당선인이 내걸었던 '원안 처리'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처음부터 신당과의 합의는 염두에 없었던 셈이다. 결국 정부조직개편안은 이명박 당선인의 총선 전략을 위한 '방패막'으로 전락했다.  

 

"기업가형 리더십은 강한 추진력, 효율과 실적을 강조하는 게 장점이지만 국민의 다양한 이익을 조정해야 할 화합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우려가 '기우'가 아닌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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