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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대학 본부 건물.
 헬싱키 대학 본부 건물.
ⓒ 이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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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유럽 국가는? 정답은 의외로 핀란드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올 6월 개통되는 핀란드-한국 직항 소요시간이 불과 9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구체적인 예를 들면 그제야 많은 사람은 놀랍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일본만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니라 핀란드도 지금까지 우리에겐 가깝지만 먼 나라였다. 일본과의 거리가 감정적인 면에서 생성된 것이라면, 핀란드와는 상호 정보 부족에서 비롯한 거리감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이야 핀란드가 여러 면에서 한국에서 이전보다 주목을 받고 있지만 내가 핀란드로 떠났던 10년 전, 주위 분들에게 핀란드에 간다고 하면 필리핀에 가느냐고 잘못 알아듣는 분들도 있었다.

가깝지만 먼 나라 핀란드, 20대 때 알았더라면

나 또한 별다른 사전 지식 없이 핀란드에 살게 된 지라 살면서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많았다. 말로만 듣던 백야현상도 직접 겪으니 놀라웠고 어둡고 침침한 겨울도 놀라웠지만 모든 교육이 무상이라는 것, 그리고 자국 국민 뿐만 아니라 외국 유학생까지 모두 무상으로 교육시켜준다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고 놀라웠다.

이 사실을 알고 처음 든 생각은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하는 아쉬움이었다.

20대 중반, 젊음과 꿈을 자산으로 청운의 꿈을 품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적이 있다. 하지만 예상했듯(?)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할 때가 많았다.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나는 일 하나는 '저당잡히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 'hock'을 찾아서 외운 다음, 결국은 그 단어를 실전에 써먹었던 일이다.

요즘은 유학생활만 돈이 많이 드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려고 해도 등록금만 천만 원에 육박하는 시대가 왔다고 한다. 이런 시대에 학비 없는 핀란드 유학은 실력 있는 한국 학생들에게 대안적 교육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고 싶어 핀란드에서 유학 중인 한국 학생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봤다.

대학 합창단에서 활동했던 전환길씨가 성탄절 콘서트를 마치고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
 대학 합창단에서 활동했던 전환길씨가 성탄절 콘서트를 마치고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
ⓒ 전환길씨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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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계기로 '산타의 나라' 찾은 한국 청년

전환길씨(30)는 현재 투르크 대학 경제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며 올 6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국내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전씨는 특이하게도 군 제대 후 맞이한 가치관의 혼란기에 읽게 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때문에 결국 핀란드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 도입부에 주인공인 윌리엄 수도사가 사건의 중심이 되는 수도원으로 가는 길에서 석양이 지는 계곡을 보면서 동료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이란 수많은 다른 다양한 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라고 아름다움을 정의하던 바로 그 대사가 한 청년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전씨는 이후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해 큰 관심을 두게 되었고, 사회학자가 쓴 여러 관련 서적을 읽으며 사회적 다양성을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다루고 소외받는 자를 아우르는 비영리단체들이 많이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장래 목표도 '비영리단체 경영'으로 세우게 되었는데 그 당시 믿게 된 종교(가톨릭)도 그의 결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전씨는 '비영리 단체 경영'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어 미국 유학의 가능성을 먼저 알아봤다. 그렇지만 원하던 대학의 학과에 진학할 경우 어마어마한 비용(2년 공부를 마치는 데 드는 비용이 모두 2억 원)이 들어 미국 유학의 꿈을 접을 즈음, 우연히 대학교의 홈페이지에 뜬 핀란드 관련 정보를 클릭하게 되었고 그 곳을 통해서 핀란드 유학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룸메이트와 함께 찰칵!
 룸메이트와 함께 찰칵!
ⓒ 전환길씨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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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이 전하는 핀란드 생활의 좋은 점과 나쁜 점

다음은 전씨가 전하는 핀란드 유학의 장점과 단점이다.

▲ 장점

1. 공기 좋고 물 맑다
공기가 아주 맑아서 별도 참 밝게 빛난다. 수돗물, 그냥 마셔도 상관없다. 세계에서 가장 수질이 깨끗한 나라가 바로 핀란드이다.

2. 안전하고 도둑도 없다
지진·태풍 등의 천재지변이 거의 없으며 테러가 발생하는 경우도 지금까지 없었다. 저녁 늦게, 자정이 넘어선 시간에 혼자 돌아다녀도 위험하지 않다. 특히나 여자들에게 발생하는 혐오스런 범죄도 거의 없다. 단지 취객만 조심하면 된다.

3. 학비가 없다
몇년 전 외국 학생들에게 학비를 징수하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 즉 외국 학생들에게도 학비는 전혀 없다. 단지 매년 학기 초 100유로 정도의 학생회비가 청구될 뿐이다.

4. 학생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시설좋은 학생 아파트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월 200~300유로 이내면 사용 가능하다.  방은 개인 혼자 사용하고 부엌·거실 등은 공동 시설이다. 기차·시외버스·유스호스텔을 이용할 때 절반 가격으로 할인된다. 학생 식당에서도 절반 가격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다. 시내버스도 학생 버스카드를 쓸 경우 절반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학생의 경우 콘서트 관람을 비롯해 문화생활을 누릴 때도 할인을 받을 수 있다.

6. 생활비 이외에는 돈이 별로 들지 않는다
도서구입비나 기타 문서 출력비 같은 것, 전혀 들지 않는다. 의지만 있으면 공부할 수 있다.

핀란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각국 유학생들 모습.
 핀란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각국 유학생들 모습.
ⓒ www.utu.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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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생각 외로 외국 학생이 많다
유럽에서도 가장 구석에 박혀 있어서 국제교류가 부족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핀란드에는 유럽 각국에서 많은 학생이 유학생이나 교환학생으로 와 있다. 아시아·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단 자신이 먼저 다가서는 자신감과 용기, 즐거운 맘과 미소를 잃지 않는다면 말이다. 진심어린 태도는 기본이다.

8. 사람들이 착하다
핀란드 사람들, 남 속일 줄 모른다. 간혹 나쁜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길거리에 떨어진 지갑도 잘 집어가지 않는 사람들이다. 볼펜·안경, 이런 거 그냥 도서관에 잊어버리고 놔두고 가도 그 다음날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정직과 신용이 이들에게 뿌리깊이 박혀 있는 것 같다.

9. 여름 날씨는 환상적이다
죽여준다. 평균기온 20℃ 정도로 온화한 날씨이다. 햇살도 아주 맑다.

10. 음식 솜씨가 저절로 좋아진다
음식점도 별로 없고 한국 음식도 구하기 어려워 먹고살려면 자기가 해먹어야 한다. 살림 솜씨가 저절로 나아진다. 나중에 마누라한테 사랑 받을 것 같다.

11. 고요하다
참 조용하다. 가끔 '이 나라 사람들 어디에 박혀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12. 인종 차별이 거의 없다
가끔 취객들이 기분나쁜 행동을 하는데, 그건 여기 일반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그렇게 하는 것이니 인종 차별로 보기는 어렵다.

13. 교수님 눈치 볼 일 없다
학문적으로만 관계를 맺으면 된다. 가끔 인간적인 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한국과 같은 상하 수직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14. 졸업생들이 국내에서 (현재까지) 취직이 잘 된다.
아직 많은 유학생을 배출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유학생 취업 현황을 살펴보면 비교적 국내 대기업 핵심부서에 취업하고 있는 편이다.

헬싱키 예술 디자인 대학 내부 모습.
 헬싱키 예술 디자인 대학 내부 모습.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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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점

1. 겨울이 길고 추우며 어둡다

2. 많이 심심하다
심심할 때가 잦다. 그렇다고 딱히 막상 할 것도 없다. 공부를 열심히 할 수밖에.

3. 우울증 걸리기 딱 좋다
그렇기에 우울증 걸리기 딱 좋다. 유학과정 중 우울증 한 번씩 다 겪는 것 같다. 또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문화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한다.

4. 핀란드 친구 사귀기 꽤 어렵다
맘 잘 열어주질 않는다. 이 사람들의 사람 사귀는 방식이므로 그냥 이해해야 할 듯 하다. 아무튼 시간 오래 걸리고 사귀어도 허물없이 지내기에는 어렵다.

6. 도서관 이용이 불편하다
미국과 비교하면 일반 장서량에서 밀린다. 논문 준비 중 도서 검색하면 없는 게 많았다. 타 대학교에서 빌려보는 것도 가능하므로 이를 활용할 수는 있다. 또한 일찍 문 닫는 것도 문제다.

헬싱키 공과 대학 수업 광경.
 헬싱키 공과 대학 수업 광경.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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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영어 실력 향상에 한계가 있다
외국 학생들이 많긴 하지만 영어 네이티브 스피커를 찾아보는 것은 꽤 어렵다. 미국에서 영어 공부하는 것보다 많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물론 일단은 살아남기 위해서 영어를 사용해야 하므로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향상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8. 핀란드어 습득에 대한 매력이 없으나, 영어만 하고 살기에는 2% 부족하다
전 세계에서 600만 명 정도만 핀란드어를 사용한다. 따라서 핀란드 지역전문가나 장기거주 이외의 체류라면 핀란드어에 대한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학교 수업 역시 영어로 대부분 이루어진다. 단 기초 과목이 핀란드어로 운영될 수 있지만 교수와 상의 후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핀란드어를 모르면 불편한 일이 자주 생긴다. 슈퍼마켓이나 상점에서 영어가 완벽히 통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핀란드 문화를 제대로 경험해 보고 싶거나 핀란드인 단체에 가입하고 싶으면 어느 정도의 핀란드어 지식은 필수적이다.

9. 물가가 비싸다
북유럽 물가, 널리 알려진 대로 비싸긴 하다. 하지만 각종 학생 할인 혜택으로 방 월세 포함해서 500유로(한화 70만~80만원)면 그럭저럭 한 달 생활이 가능하다.

헬싱키 공과 대학 전경.
 헬싱키 공과 대학 전경.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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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한국 식품 조달이 쉽지 않다
헬싱키 최초 한국 식당이 2005년 여름에 개업했다. 하지만 가난한 학생이 매일 식당에서 사먹기는 어렵다. 식재료의 경우 라면·고추장· 된장처럼 간단한 것은 헬싱키 아시아 음식 상점에서 구입 가능하지만 보통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게 많다. 요즘은 독일 등의 한국 음식재료 도매상에서 인터넷으로 구입할 수가 있어서 사정이 훨씬 좋아지기는 했다.

11. 학위 취득 기간이 자칫 늘어나기 십상이다
자율성이 많이 주어져서 자신이 잘 조절하지 못하면 공부 기간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전환길씨는 이와 비슷한 내용을 핀란드 한국 유학생 홈페이지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이때 이 내용에 공감하는 다른 유학생들의 댓글이 많이 달렸다. 그 때 달린 재미있는 댓글을 몇 가지를 소개한다.

"A : 좋은 글이네요^^.
B : 중앙일간지에 내도 되겄다. 장점에 바퀴벌레나 쥐 없다고 하나 추가해도 되겠다.  
C : [원츄] 이런 글은 한국의 각 대학들을 돌며 게시판에 좀 뿌려주도록.  
D : 죽인당!! 잘 썼어. 공감 가는 내용 많은데, 저두. 장점에 집은 특히 천장이 높아서 넘 좋다 추가해주셔요. 또 전철에 사람이 깔려, 하이힐에 발등 찍혀 피 질질 흘리지 않아도 된다도."

대학교육 경쟁력 평가에서 수위를 다투는 핀란드

유럽 3대 음악원 중 하나인 시벨리우스 음악원.
 유럽 3대 음악원 중 하나인 시벨리우스 음악원.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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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마지막으로 기자가 생각하는 장점 한 가지를 덧붙이고자 한다. 핀란드 대학은 세계경제포럼(WEF) 세계경쟁력 보고서와 스위스경영대학원(IMD)의 국가경쟁력 평가 중 대학교육 경쟁력 부분에서 몇 년째 계속 1~2위를 다툴 정도로 수준이 높아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참고로 (앞으로는 전공 분야가 훨씬 다양해지겠지만) 현재까지 한국 유학생이 주로 유학 오는 분야는 경영경제학, 공대, 제지학, 그리고 디자인 계통이었다.

경영경제학과와 공대는 핀란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분야로 영어로 개설된 강좌가 상대적으로 많아 유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디자인의 경우는 '헬싱키 예술디자인 대학'이 세계에서 앞서가는 디자인 전문대학이어서 디자인을 전공한 한국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고, 제지학의 경우는 핀란드가 세계 제1의 제지기술을 자랑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선진기술 습득을 위해 다른 어느 나라보다 핀란드로 유학을 오는 것이 정석인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 < 핀란드 유학 관련 사이트 소개>

http://www.suomikorea.com/new/kosafi/index.shtml
(핀란드 한국 유학생회 홈페이지)
http://www.studyinfinland.fi/
(핀란드 유학 관련 전반적인 정보)
http://finland.cimo.fi/studying/international_study_programmes.html
(핀란드 대학, 대학원에 영어로 개설된 전공이나 강좌 검색 가능)
https://www.admissions.fi/
(핀란드 내 모든 폴리테크닉 대학을 온라인으로 지원할 수 있는 곳. 현재 2008년 가을학기 지원을 온라인에서 받고 있다. 마감은 2월 15일이다.)



태그:#유학, #무상교육, #등록금천만원, #핀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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