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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에서 괴짜라는 이름으로 특별히 기억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길고 긴 조선의 역사에서 괴짜로 기억되게 된 사람들의 사연은 단순히 엽기적 행동이나 특이한 짓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살았다는 것이 그들을 괴짜로 만들어냈다. 말은 보기좋게 괴짜, 아웃사이더였지만 사실상 그들은 제도 밖 이방인이었다.

 

조선의 유교 체제와 뿌리깊은 남녀차별은 사회를 경직시켰다. 또 계급사회는 능력있던 사람들의 날개를 부러뜨렸다. 그렇기에 선택받은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꿈을 이룰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절망감에 스러져간 이들도 참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그런 고통을 꿋꿋히 견뎌내며 현실에 맞서 싸웠다. 그리고 그들의 소신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증명해 보였다. 노대환이 지은 <소신에 목숨건 조선의 아웃사이더>는 바로 그 사람들의 이야기다. 괴짜라는 이름 속 '깊은 열정'을 지닌 사람들의 삶이 책 속에 담겨있다.

 

책 속에 나온 12명 괴짜들의 면면을 보면 정말 입이 딱 벌어질만큼 놀라운 열정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스승, 친구의 죽음에 은둔을 선택한 양산보, 박지원을 비롯해 감히 왕의 결정에 반기를 든 이옥이라는 사람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유교 중심사회에서 죽은 아내에게 수십편의 글을 남긴 심노승이라는 사람은 감동이었다. 또 손자의 육아일기를 남긴 이문건은 그 정성이 대단해보였다. 또 의리를 지키며 한평생을 산 정인홍은 멋스러웠고 자신의 그이 최고라고 믿은 이언진의 자신감은 한 없이 부러웠다.

 

아름다움과 명예는 원래 그런 것이니 그에 연연하지 말자는 독백이다. 그의 고독은 그가 자처한 측면도 없지 않다. 만약 최선을 다해 정조의 기대에 부응하는 글을 썼다면 적어도 다시 충군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정조의 지적을 받은 문사들이 대개 순정한 글을 지어 바쳤지만 이옥은 자신의 문체를 버리지 않았고, 그 때문에 그의 삶은 궁색해졌다. - P34 <주상. 당신이 틀렸소_이옥>

 

나는 책속 괴짜들 속, 특히 이옥의 삶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의 삶은 파란만장이란 표현, 그 자체였다. 과거 시험을 통해 벼슬의 문턱까지 갈 만큼 출중한 실력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절대 권력자였던 왕(정조)에게 "문체가 바르지 않다"고 찍힌 후 인생이 절망이 된 불운한 사내였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같으면 "문체를 바르게 고치라"는 왕의 말에 벌벌 떨며 얼른 바꾸기 급급했을 텐데 그는 두번이나 징계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문체를 지켜냈다. 나는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바꾸라고 가용하는 왕과 사회의 명령에도, 옳다고 믿은 자신의 문체를 지킨 이옥은 정말 당대 최고의 괴짜이자 소신을 지켰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옥과 함께 불우한 시대에 소신으로 맞선 남자가 한명 더 있다. 바로 자신의 글이 최고라고 믿은 '이언진'이라는 사람이었다.

 

이언진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문장에 정통한 연안만큼은 자신의 작품을 인정해줄 것으로 가기대했다. 하지만 연암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시를 가져갔던 사람에게 연암이 "이건 오농의 자디잔 침이야. 자질 구레하여 별로 귀하다고 할 수 없구먼"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언진은 "창부가 사람 기를 올리네"라고 욕을 해대고는 두 줄기 눈물을 흘리며 "내 어찌 이 세상에서 오래 지탱할 수 있겠는가"라고 탄식했다. 얼마 후 이언진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P68 <그 누구도 내 글을 비난할 수 없소_이언진>

 

자신의 글을 올바로 평가할 사람이 없다고 탄식하며 죽어간 이언진, 비록 그의 죽음은 절망으로 끝이 났어도, 나는 이언진이 생전 간직했던 그런 자신감이 부러웠다. 그는 그런 자신감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끊임없이 연습했고 실력을 갖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최고라고 말 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른 이언진의 열정을 누가 감히 욕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이언진은 자신이 믿은 실력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끊임없이 옥죈 중인이라는 계급때문에 날개조차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하늘에서 지상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안타까웠다. 이언진에게 조선사회는, 아니 실력있던 모든 이들에게 조선사회는 얼마나 합리적이지 못한 사회였을까.

 

세상에서 우상의 작품을 알만한 사람이 없었다고 위안하기는 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글을 써야 하는 문학가의 삶은 얼마나 비참한 것이었겠는가. 왜 사람들은 우상의 작품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일까? 김조순이 "언진은 재명이 있었지만 신분이 미천하여 끝내 뜻을 펴지 못해 울적하게 지내다 세상을 떠났다"고 술회했듯, 그가 인정받지 못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중인이라는 신분이었다. 양반중심의 조산 사회에서 중인은 잘해야 늘 2인자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 P76. <그 누구도 내 글을 비난할 수 없소_이언진>

 

계급때문에 사회의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은 이언진, 그의 마지막 소원하나는 당대의 최고 문인으로 알려진 박지원의 평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조차 뜻밖의 냉대를 받은 이언진의 상실감은 절망으로 치달았다. 이언진은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일까? 박지원의 냉대는 사실 이언진의 오해에 가까웠다. 그것은 이언진을 아꼈던 박지원의 '애정어린' 쓴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언진의 죽음은 안타까움을 더한다.

 

<소신에 목숨건 조선의 아웃사이더>는 이옥, 이언진같은 당대의 특별함 재능을 지녔으면서도 현실로 인해 좌절해야만 한, 하지만 그런 상황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견뎌낸 괴짜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들의 포기할 줄 모르는 '열정' 은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아름 '용기'를 전해준다.

덧붙이는 글 | <소신에 목숨을 건 조선의 아웃사이더>/노대환 지음/역사의 아침.


소신에 목숨을 건 조선의 아웃사이더

노대환 지음,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2007)


태그:#조선의아웃사이더, #노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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