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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학자이자 문신이었던 초간 권문해가 마음을 닦던 곳이랍니다. 자연과 어우러져 경치가 매우 빼어난 정자이지요.
▲ 초간정(경북문화재자료 143호) 조선 중기 학자이자 문신이었던 초간 권문해가 마음을 닦던 곳이랍니다. 자연과 어우러져 경치가 매우 빼어난 정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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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 물소리에 저절로 마음을 닦다

조선 중기 때부터 백과사전이 있었다면 여러분은 믿어지세요? 인물, 문학, 역사, 지리, 나라 이름, 성씨, 하다못해 동물 이름까지 자세하게 기록된 백과사전 말이에요.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에 있는 '초간정'은 길가에 있어 자칫하면 못 보고 지나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천천히 길가를 살피며 오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른쪽에 옛집 지붕이 손톱만큼 보이는 게 저기구나! 싶었답니다.

커다란 바위에 높다랗게 쌓은 돌담 위로 매우 멋스런 정자가 있어요. 정자 둘레로 맑은 개울이 빙 둘러 흐르고 있어 그 풍경이 꽤 멋스럽고 남달랐어요.

개울을 따라 돌아가니,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으로 백과사전을 쓴 초간 권문해가 공부를 하며 마음을 닦던 곳인 '초간정'(경북문화재자료 143호)이었어요. 둘레 자연과 어우러져 빼어난 경치를 이루는 초간정을 보면서, 나 또한 이곳에서 바람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책이라도 읽는다면 저절로 마음이 깨끗해지고 편안해질 듯했어요. 또 그 옛날 권문해도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었답니다.

커다란 바위에 돌담을 쌓고 그 위에 정자를 세웠어요.
▲ 초간정 커다란 바위에 돌담을 쌓고 그 위에 정자를 세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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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닫힌 문 때문에 이번에도 안을 보려면 담장 너머로 봐야 했어요.
▲ 대문 굳게 닫힌 문 때문에 이번에도 안을 보려면 담장 너머로 봐야 했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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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닫힌 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담장 너머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어요. 문화재를 보호하는 것도 좋지만, 늘 굳게 닫혀있어 제대로 살펴볼 수 없는 건 늘 안타깝답니다.
▲ 초간정(경북문화재자료 143호) 굳게 닫힌 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담장 너머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어요. 문화재를 보호하는 것도 좋지만, 늘 굳게 닫혀있어 제대로 살펴볼 수 없는 건 늘 안타깝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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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

초간 권문해가 쓴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책판(부)고본>이에요.
▲ <대동운부군옥책판(부)고본> 초간 권문해가 쓴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책판(부)고본>이에요.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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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이었던 초간 권문해(1534~1591)가 쓴 <대동운부군옥>은 중국 송나라 음시부의 <운부군옥>을 본떠서 '운자(韻字)'에 따라 차례대로 쓴,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으로 만들어진 '백과사전'이랍니다.

목판본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모두 20권이나 되는데요. 본디 처음에는 권문해가 선조 임금한테 바쳐 나라에서 펴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1798년(정조 22년)에 권문해의 7대손인 '진락'이 초판을 펴냈지요.

그 뒤로도 1913년에 최남선이 이끄는 광문회에서 9권을 간행하고 마지막으로 1957년에 '정양사'(강원도 금강산에 있는 절)에서 그 나머지를 펴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처럼 훌륭한 백과사전이 있었다니, 그것도 이 책이 임진왜란 이전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아주 뜻 깊은 문헌이라고 하니 무척 놀라웠어요. 또 개인이 쓴 것이니 더욱 남달랐고요.

초간 권문해가 쓴 목판본<대동운부군옥> 책판이에요.
▲ <대동운부군옥책판> 초간 권문해가 쓴 목판본<대동운부군옥> 책판이에요.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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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핥기만 한 '예천권씨종택'

초간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예천권씨종택'(중요민속자료 201호)이 있답니다. 처음엔 그저 예천에 권씨가 많은가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가서 보니 바로 초간 권문해의 할아버지가 지은 집이고, 권문해가 여기에서 자란 곳이기도 했어요. 또 이곳에는 보물 878호인 <대동운부군옥책판(부)고본>을 보관하고 있다고 하네요.

집 앞에 들어서자마자 불독처럼 생긴 커다란 개가 어찌나 무섭게 짖어대는지 안마당에는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 안을 들여다봐도 사람이 사는 것 같지는 않고, CC카메라가 멋스런 옛집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게 마치 우리를 노려보는 듯해서 조금은 씁쓸했답니다. 더구나 방문마다 꼭꼭 잠겨 있었고요.

그도 그럴 것이 소중한 문화재를 보관하고 있다고 하니, 낯선 이를 경계하는 카메라를 달아둔 것도, 문을 꼭 닫아둔 것도 탓할 일은 아니지요. 이 집안 후손들뿐 아니라 우리한테도 매우 소중한 문화재이니까요.

초간 권문해가 살던 집이에요. 이 집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책판(부)고본>을 보관하고 있답니다.
▲ 예천권씨종택(중요민속자료 201호) 초간 권문해가 살던 집이에요. 이 집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책판(부)고본>을 보관하고 있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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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우 좋아하는 옛집을 만났는데도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하게 볼 수 없어 퍽 안타까웠지만 어쩌겠어요. 멀찌감치 서서 아쉬운 대로 사진기에 담으며 보는데, 집 크기도 꽤 크고 그 모양새도 매우 멋졌어요. 400년이나 되는 세월이 흘렀어도 이처럼 멋진 모습으로 남아 있다는 게 고맙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답니다.

집 뒤로는 나지막한 산이 둘러싼 듯 보이고, 둘레 마을에도 여러 집들이 있었지만 이 종택만큼은 꽤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어요. 왠지 낯설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답니다. 지난날 조선시대 양반가의 권세를 이 집에 모두 담은 듯 보였으니까요.

아무튼 큰 개에 쫓겼거나, 노려보는 듯한 CC카메라에 쫓겼거나 왠지 선뜻 다가설 수 없는 안타까움만 가득 안고 돌아 나왔답니다. 마음 같아서는 구석구석 둘러보면서 사진도 많이 찍고 싶었는데 매우 섭섭했어요.

옛집 들머리에 큰 개가 무섭게 짖어대더니, 집 안에는 CC카메라가 달려 있었어요. 이 멋진 집을 두고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 멀찌감치 서서 구경만 했어요.
▲ 예천권씨종택(중요민속자료 201호) 옛집 들머리에 큰 개가 무섭게 짖어대더니, 집 안에는 CC카메라가 달려 있었어요. 이 멋진 집을 두고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 멀찌감치 서서 구경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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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와 안채를 따로 나가지 않아도 갈 수 있게 쪽마루가 이어져 있어요. 집 뒷칸도 쪽마루로 나갈 수 있지요.
▲ 예천권씨종택(중요민속자료 201호) 사랑채와 안채를 따로 나가지 않아도 갈 수 있게 쪽마루가 이어져 있어요. 집 뒷칸도 쪽마루로 나갈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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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사랑채에는 누마루가 있어 매우 멋스러워요.
▲ 예천권씨종택(중요민속자료 201호) 바깥 사랑채에는 누마루가 있어 매우 멋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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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에서 자전거를 타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보니, 참으로 소중하고 뜻 깊은 얘깃거리가 많은 곳이구나 싶었어요. 게다가 소중한 문화재들도 많았고요. 구미를 떠나오기에 앞서 예천이 고향이라는 일터 식구한테 들었던 말이 생각났어요.

"예천에 볼거리가 많은 것 같던데, 어디 하나 추천해줄래?"
"에이! 예천에 뭐가 볼 게 있다고 그래요? 그다지 볼 거 없어요."


우리 둘레에는 생각밖에 매우 소중하고 뜻 깊은 볼거리가 무척 많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답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그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또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잘 모르고 살지요.

덧붙이는 글 | 지난해 12월 23~24일까지 예천 나들이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http://www.eyepoem.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초간 권문해, #초간정, #예천권씨종택, #대동운부군옥,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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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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