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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강산 두 번이나 지났어도 / 부모는 억장을 안고 살았으되 / 어찌 살았다 하겠는가 / 살아남은 이는 가슴을 앓고 기일이면 / 멧밥을 뜨고 향을 피우지만 아직 / 그대를 기념할 공간을 갖추지 못한 / 무능, 부디 용서하시게"(박정애의 시 "영원하여라! 민주여 민주주의여" 일부).

민주열사 박종철 21주기 추모제가 13일 오후 부산 민주공원 소극장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제에는 박종철 열사의 부친인 박정기(80)씨를 비롯해, 부산과 전국의 시민사회단체 인사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박종철 열사의 모교인 혜광고 정을수 교장 등이 조화를 보내기도 했다.

이날 추모제는 노래패 '노래야 나오너라'의 여는노래 공연으로 시작되었다. 고인에 대한 묵념에 이어 경과보고와 추모사, 추모영상 상영, 추모시 낭송, 하연화(춤패 배김새 대표)씨의 진혼무 공연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박종철 추모제가 부산 민주공원에서 열리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49재가 당시 당국의 방해로 서울 조계사에서 열리지 못하고 1987년 3월 3일 부산 사리암에서 열렸으며, 이후 20년째 도승 스님은 한결같이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1996년 3월 '부산 6월항쟁기념 조형물과 기념비 건립을 위한 서화작품전'이 열리기도 했으며, 2003년 '박종철 인권상'이 제정되었고, 2005년에는 모교인 혜광고 교정에 추모비가 건립되었다.

박종철 민주열사의 부친인 박정기씨가 21주기 추모제에서 아들의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박종철 민주열사의 부친인 박정기씨가 21주기 추모제에서 아들의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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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그대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

이날 추모제에서 불교인권위원장인 진관 스님은 추모사를 통해 "21년 전 처음으로 감옥을 가게 되었는데 박종철이 때문이었다, 당시 원로들 앞에 끼지도 못했다, 당시 조계사에서 49재를 지내기 위해 들어갔는데 막고 있어 들어가지 못했다, 1994년 불교 개혁하고 난 뒤 한이 남아 종을 치자고 해서 조계사 대종을 쳤다"고 말했다.

진관 스님은 "당시 4천만이 종철이 이름을 외쳤다, 종철이의 정신으로, 힘으로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하자, 그것을 할 때 위대한 종철이의 정신을 이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혜광고 동기회(28기) 정진욱 회장은 "박종철을 항상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열사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거나 슬픔에 젖어 애도만 할 게 아니다"면서 "21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겐 아직도 양극화 심화, 남북화해와 통일 등이 커다란 과제로 남아 있다, 21년전 그때 함께했던 우리들은 건강한 생활인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대 앞에 부끄럽지 않고 역사 앞에 당당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고 말했다.

민주열사 박종철 21주기 추모제가 13일 오후 민주공원 소극장에서 열렸다.
 민주열사 박종철 21주기 추모제가 13일 오후 민주공원 소극장에서 열렸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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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영상을 통해 김형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은 "많은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아직 사회양극화와 장애인, 비정규직 문제 등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은 것 같다"고, 김여정 희망세상 사무국장은 "지역이나 현장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게 우리의 과제"라고 말했다.

박정기씨는 유족 인사를 통해 "어영부영하다가 21년이 되었다, 특히 혜광고 교장과 동문들이 함께해주어서 고맙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어오면서 부산의 얼굴들이 많이 떠나셨다, 우리는 현실에 안주해 있을 것이 아니라 더 큰 희망을 생각하면서 살자"고 말했다.

박씨는 "세상도 많이 바뀌었고 세계에서 민주화라 하면 첫째 꼽을 수 있는 게 한국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등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면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되었다, 더 이상 죽지 말아야 하겠지만 우리의 희망대로 잘 안 된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좀 더 발전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들은 비켜주었으면 한다, 역사를 올바르게 진행시켜야 한다, 만약 후퇴할 일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올 스톱해서 정비해야 할 것이다"고 다짐했다.

박종철 열사는 1965년 4월 1일 부산 서구 아미동에서 태어나 혜광고를 나와 1984년 서울대 언어학과에 입학했다. 고인은 1986년 '청계피복노조 합법성 쟁취대회'에 참가했다가 구속되었고, 그해 7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출소했다.

박종철 열사는 1987년 1월 13일 치안본부 대공분실요원에 의해 연행되었고, 다음날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 폭행으로 사망했다. 고인은 현재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묻혀 있다.

이날 추모영상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자막이 소개되었다. "추모식에서만 존재하는 박종철이 아닙니다. 함께 어깨 걸고 나아갑시다."

민주열사 박종철 21주기 추모제가 13일 오후 부산 민주공원 소극장에서 열렸다.
 민주열사 박종철 21주기 추모제가 13일 오후 부산 민주공원 소극장에서 열렸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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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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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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