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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8일 기준, B형을 제외한 O, A, AB형 혈액은 적혈구 농축액이 1일 분도 남지 않았다.
▲ 혈액 재고 현황 2008년 1월 8일 기준, B형을 제외한 O, A, AB형 혈액은 적혈구 농축액이 1일 분도 남지 않았다.
ⓒ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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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가 헌혈 부족으로 혈액 재고량이 2일분 이하로 떨어져 혈액 수급에 문제를 겪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기사에 따르면 혈액형별 보유량 편차도 심해 B형을 제외한 O, A, AB형 혈액은 적혈구 농축액이 1일분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심한 경우 수혈용 혈액이 부족해서 수술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꽁꽁 얼어붙어 버린 것일까. 혈액이 부족하다는 보도가 있은지 며칠이 지났다. 사람들의 헌혈을 요청하는 기사는 모습을 감추었지만, 여전히 혈액 수급 문제는 시급한 상황이다. 현재 혈액 부족이 얼마나 심각한지, 헌혈 봉사자들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직접 알아보기 위해 현장 취재에 나섰다.

"헌혈하고 가세요!"라고 외치지만... 외면하는 사람들

신촌 헌혈의집 앞에서 헌혈 캠페인을 담당하는 문옥자 씨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헌혈을 촉구하고 있다.
▲ "헌혈하고 가세요!" 신촌 헌혈의집 앞에서 헌혈 캠페인을 담당하는 문옥자 씨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헌혈을 촉구하고 있다.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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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로 가득한 서울 신촌 거리, 그 곳에 있는 헌혈의집 앞에서 문옥자(43)씨를 만났다.

문옥자씨는 '영화예매권'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헌혈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었다.

신촌 헌혈의집 캠페인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문옥자씨는 2003년부터 이 활동을 시작했다.

문옥자씨는 "사람들이 헌혈을 잘 안 해서 헌혈한 사람들에게 영화 티켓을 주기로 한 것"이라며 "요새는 방학이고 또 오늘이 주말이다 보니, 학생들이 영화티켓 때문에 헌혈의 집에 많이 방문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씨는 "영화예매권을 준다고 홍보를 해도 사람들이 쉽게 헌혈에 동참하지 않아 힘들다"면서 "건강해 보여서 붙잡으면 뿌리치고 가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인터뷰를 마친 뒤 "헌혈하고 가세요"를 외치는 문옥자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많지 않았다.

혈액이 부족하다는 기사가 보도됐지만, 여전히 헌혈자들의 도움이 시급하다.
▲ 헌혈의집 앞을 지나치는 사람들 혈액이 부족하다는 기사가 보도됐지만, 여전히 헌혈자들의 도움이 시급하다.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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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헌혈의집에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김의용(60)씨였다. 김의용씨는 헌혈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안내를 담당하고 있었다. 매우 건강해 보였던 김의용씨는 이미 헌혈횟수가 205회나 되는 '중앙헌혈적십자봉사회'의 고문이었다.

중앙헌혈적십자봉사회는 16년 전, 헌혈 봉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구성한 자원봉사단체로, 전국에 협의회를 만들어 활동 중이다.

김의용씨는 "다른 사람들에게 깨끗한 피를 주기 위해 하루에 1시간씩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며 "헌혈하지 못하는 만 65세가 될 때까지 꾸준히 헌혈할 것"이라고 말했다. 혈액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기사가 나온다고 하루 이틀 만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지속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복되는 혈액 재고 부족, 그 원인과 해결 방안은?

많은 헌혈자들이 헌혈하기 위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순서를 기다리는 헌혈자들 많은 헌혈자들이 헌혈하기 위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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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림 헌혈의집에 들어서니 헌혈자들이 헌혈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던 이서인(20, A형)씨는 "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 못하다가 이번에 처음 헌혈하게 됐다"며 "건강한 사람들이 헌혈에 참여하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대기자 중 2달에 1번씩 꾸준히 헌혈한다고 답한 김경원(31, A형)씨는 "헌혈하는 일은 어렵지 않은데 사람들이 헌혈을 잘 하지 않는다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신도림 헌혈의집에서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이러한 혈액 부족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변해주었다. 그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원인들이 혈액 부족 문제를 매년 반복적으로 발생시킨다고 답했다.

그 구조적인 원인 중 하나는 '연령별 헌혈자수의 심각한 편차'이다.

현재 대부분의 헌혈은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10대와 20대의 젊은 층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30대 이상은 80년대에 나타났던 매혈의 부정적인 경험과, 신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 사상을 몸속 깊이 간직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헌혈에 쉽게 참여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하절기나 동절기가 되면 방학과 휴가철을 맞이하여 젊은 사람들이 단체로 헌혈하는 횟수가 큰 폭으로 줄어든다. 이외에도 같은 기간에 질병 발생에 따른 사람들의 약물 복용이 많아져 혈액 부족 문제가 어김없이 발생한다.
대부분의 헌혈이 10대와 20대의 젊은 층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출처: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2006년도 혈액사업통계>
▲ 헌혈자들의 연령 대부분의 헌혈이 10대와 20대의 젊은 층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출처: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2006년도 혈액사업통계>
ⓒ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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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절기나 동절기가 되면 방학과 휴가철을 맞이하여 젊은 사람들이 단체로 헌혈하는 횟수가 줄어든다.
<출처: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2006년도 혈액사업통계>
▲ 월별 헌혈자수 변화 하절기나 동절기가 되면 방학과 휴가철을 맞이하여 젊은 사람들이 단체로 헌혈하는 횟수가 줄어든다. <출처: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2006년도 혈액사업통계>
ⓒ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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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헌혈이 건강에 해를 끼친다는 오해가 혈액 부족 문제를 지속적으로 일으키는 요인이라고 답했다.

헌혈은 아주 위생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헌혈을 하면 전 헌혈자의 혈액이 자신의 몸 속에 들어가 에이즈 등의 병에 감염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혹은 헌혈을 하면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혈액이 빠져나가 건강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관계자는 혈액 부족 문제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10대·20대뿐만 아니라 30대 이상의 참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헌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혈의 의미는 "수혈이 필요한 환자를 위하여 무상으로 혈액을 뽑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헌혈에 사용되는 기구는 모두 일회용이다. 다른 헌혈자들의 혈액에 의해 병에 감염될 확률이 전혀 없다. 또한, 헌혈한 혈액에는 오래전에 형성된 혈액과 새로 만들어진 혈액이 골고루 섞여있기 때문에, 혈액을 좋고 나쁜 것으로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관계자는 최근 대한적십자사에서 헌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타파하고 사람들의 헌혈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헌혈 기관의 대형화’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강남 헌혈의집, 명동 헌혈의집, 구로디지털단지 헌혈의집 등의 경우에는 편의시설이 아주 잘되어있다.

또한 적십자사에서는 직장인들의 근무 시간을 고려해 헌혈의집의 운영시간을 점차 연장하고 있다. 현재 저녁 8시까지 연장 운영하는 헌혈의집은 100곳 중 23곳이며, 주말 중 토요일에도 운영하는 곳은 60여 군데, 일요일에도 운영하는 곳은 50여 군데라고 설명한다.

그 관계자는 "적십자사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헌혈에 관심을 갖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답변을 마쳤다.

신도림 헌혈의집에서 한 학생이 헌혈하고 있다.
▲ 헌혈하는 사람들 신도림 헌혈의집에서 한 학생이 헌혈하고 있다.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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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 주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더 많아..."

신도림 헌혈의집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찾아간 곳은 구로디지털단지 헌혈의집이었다. 2006년 7월 말에 확장 개소한 구로디지털단지 헌혈의집은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고, TV와 컴퓨터 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

우연하게도 그곳에서는 ‘밀돌봉사회’의 회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봉사회 회원들은 마침 봉사회 정기 활동 중 하나인 ‘가두 캠페인’을 마치고 헌혈의 집에 모여 있었다.

밀돌봉사회의 고문인 송궐호(53)씨는 '밀돌봉사회'에 대해 간단히 소개했다. 밀돌봉사회는 서울서부혈액원의 헌혈봉사단체로, 헌혈 봉사와 더불어 길거리에서 매달 둘째 주 토요일마다 헌혈 홍보 행사인 가두 캠페인 활동을 벌인다고 한다.

봉사회 회장인 박재경씨는 헌혈 봉사 중 겪는 어려움에 대해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하는가 하면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며 ”헌혈을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씨는 ”Rh(-)형인 사람들의 모임에서는 대부분이 헌혈에 참여하는데, 이들처럼 헌혈이 언젠가 자신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며 헌혈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나타냈다.  

봉사회의 회원이며 헌혈횟수로 326회를 돌파한 이승기(53)씨는 헌혈의 좋은 점으로 “내가 주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많다”고 했다. 헌혈에 참여하고 헌혈을 촉구하는 홍보물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와 따뜻한 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밀돌봉사회' 회장인 박재경씨, 이승기씨, 송궐호씨.
▲ 헌혈봉사단체 '밀돌봉사회'의 회원들 왼쪽부터 '밀돌봉사회' 회장인 박재경씨, 이승기씨, 송궐호씨.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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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마음도 따뜻한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 헌혈하세요!

인터뷰를 마치고 헌혈의집을 나왔다. 바깥은 안과 달리 매우 쌀쌀했다. 추운 겨울날, 옷을 따뜻하게 입지는 못할 지언정 마음만은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옷을 따뜻하게 입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3곳의 헌혈의집을 방문하면서 헌혈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자원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아직은 헌혈에 무관심한 사람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교육홍보팀 관계자는 "헌혈을 '권리'가 아닌 '의무'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적어도 우리나라 국민 3명 중 1명은 일생에서 수혈을 경험한다고 설명한다. 이를 3인 가족으로 바꾸면 가족 일원 중 1명은 수혈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 가족, 혹은 자기 자신이 헌혈할 때를 생각해서라도 헌혈을 한다면 자기 가족의 건강을 지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며 "더 나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의 건강을 지키는 의무로서 헌혈을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2006년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가 자급자족으로 건강한 혈액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만 16세~64세 중 360만명의 헌혈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즉, 4인 가족 중 1명이 2~3년에 1번씩만 헌혈해도 충분히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수혈을 받기 위해 헌혈자들의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최근에 발생했던 이천 냉동 창고 화재로 부상당한 사람들도 수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헌혈은 몇 분의 시간만 투자한다면 사람의 생명까지도 구할 수 있는 간편하고 의미 있는 봉사 활동이다. 오늘, 헌혈의집에 잠시 들러 다른 이에게 따뜻한 체온을 전해 주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인터뷰에 응해 주신 많은 헌혈자 분들과 헌혈의 집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태그:#헌혈, #혈액 부족,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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