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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기사 '독립유공자 후손 비극'을 읽었습니다. 이천 화재 참사로 아들을 잃은 중국동포 김용진씨에 대한 비극적인 기사였습니다. 기사를 다 읽은 저는 먼저 안타까운 심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약간 이상하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독립군 장군 김규식의 후손이 중국에 남아 있었다는 점이 왠지 생소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기사에는 김용진씨의 증조부가 <북로군정서>의 김규식 장군이라고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김용진씨의 증조부는 <북로군정서>가 아닌 <서로군정서>의 독립군이었음이 나중에 밝혀졌습니다.

저는 독립운동사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제가 쓴 소설(미발표)에는 <북로군정서>의 김규식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분에 대해서는 어지간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청산리 전투 당시 대대장이었습니다. 한편 독립운동가 중에는 한자 이름이 거의 유사하고 생년(1880~1881)도 비슷한 세 분 김규식(圭植~奎植)이 있다는 것도 따로 알고는 있었습니다.

<북로군정서>와 <서로군정서>의 차이

먼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북로군정서>나 <서로군정서>나 똑같은 수준의 독립군 조직이었다는 점입니다. 다만 <북로군정서>에는 김좌진이나 이범석 같은 탁월한 명장이 있었고, 또한 그들이 주체가 되어 <청산리대첩>을 이루었기 때문에 <북로군정서>의 이름이 더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서로군정서>가 독립군으로서는 더 원조입니다. 원래 1910년 나라가 망했을 때 용감한 우리 선조들은 앞 다투어 간도로 건너갔습니다. 수많은 분들이 그곳에 가서 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가를 양성했습니다.

유명한 <신흥학교>는 그 대표 격입니다. <신흥학교>를 세운 단체는 이상용, 이시영 등의 <한족회>였습니다. 그리고 <한족회>에서는 간도의 독립운동단체를 일괄 통합하여 '군정부'를 만드는 위업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상해에 임시정부가 만들어지자 '군정부'라는 명칭이 '임시정부'와 겹쳐 혼동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군정부를 '군정서'로 개명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지역에 따라 북로군정서와 서로군정서가 양대 독립군 군대로 탄생한 것입니다.

동명 3인 독립운동가 '김규식'

김용진씨의 증조부 김규식은 합병 전 유인식, 김동삼 등이 설립한 <협동학교>의 교사로서 민족 교육에 투신하다가 나라가 완전히 망하자 분연히 간도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한족회에 가입하고 신흥학교를 지원하는 일을 하다가 <서로군정서>의 간부가 된 분입니다.

처음 보도된 북로군정서의 김규식이나 새로 정정된 서로군정서의 김규식이나 두 분 다 간도로 가기 전 일찍부터 의병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북로군정서의 김규식은 상해임시정부의 창업에도 기여한 무장투쟁가로서 명망이 더 높았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김용진씨의 증조부 김규식도 해방을 불과 며칠 남기고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 나라의 독립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하신 분입니다.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낸 독립운동가 김규식(자료사진).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낸 독립운동가 김규식(자료사진).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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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김규식 말고도 다른 한 분의 김규식은 너무도 유명하므로 따로 설명 드릴 필요가 없을 정도이지요. 이 분은 미국 유학파로서 일찍이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되기도 했고, 임시정부의 외무총장과 부주석을 지내기도 했으며, 해방 후에는 백범과 함께 월북하여 남북회담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정정보도문'을 대하며 먼저 걱정했던 것은 혹시 김용진씨가 실수나 거짓말을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용진씨에게는 전혀 잘못이 없었습니다.

잘못은 <오마이뉴스>에 있었습니다. 저는 <오마이뉴스>를 좋아하지만 그래도 김용진씨와 같은 약자가 잘못한 것보다는 <오마이뉴스>가 잘못한 것이 차라리 낫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오마이뉴스>가 신속하게 정정보도문을 크게 실은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여겼습니다.

<오마이뉴스>의 실수는 90년 2월 22일자 MBC 뉴스를 그대로 믿어 버린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독립운동가를 알아보기 위해 뉴스 검색을 했다는 점은 좀 의아합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들어 독립운동사가 상당히 정리되었습니다. 이는 역사 바로세우기 운동의 보이지 않는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해당 국가기관의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자료는 다른 것에 비해 월등히 충실해졌습니다. MBC나 <오마이뉴스>는 식민지 역사 청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매체입니다. 이런 매체들의 실수는 조중동에게 흉 보이는 일입니다. 기자들이 역사 공부를 새로 전면적으로 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최소한 정확한 자료를 검색하는 방법 정도는 알아 놓을 필요가 꼭 있다고 봅니다.      

덧붙이는 글 | 김갑수는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인 김갑수, 창조한국당 김갑수와 동명이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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