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새 정부 출범을 준비 중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활동과 관련하여 요즘 부쩍 자주 접하게 되는 알파벳 약어가 하나 늘었다. 이른바 'TFT'다. 국민연금을 개혁하기 위해, 한반도 대운하를 건설하기 위해, 투자유치를 위해서도 각종 'TFT'가 꾸려지는 모양이다.

 

그런데 의아한 부분이 하나 있다. 어떤 기사에서는 'TF'라고 표기하는데 또 어떤 기사에서는 'TFT'라고 표기한다. 친절하게 'TFT(TF팀)'이라고 번역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급기야 오늘자 신문과 방송에서 'TFT 팀'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그것도 경향신문, YTN과 같은 유력언론들로부터. 이쯤 되면 일대 혼란이라 여길 만도 하다.

 

몇 년 전부터 기업체에서 주로 쓰면서 사회 전체로 퍼진 것으로 보이는 이 변화무쌍한 단어를 보다 익숙한 것으로 바꾸면 '특위' 정도가 될 것이다. 다만 특위라는 말이 상당히 정치적이고 딱딱하게 들리는 탓에 다른 단어로 바꿔 쓸 필요를 느꼈던 모양인데, 기업명에서 사람 이름까지 모조리 알파벳 약어로 바꿔대는 풍조에 편승하려다 보니 이런 영어 단어를 가져온 듯하다.

 

'TF'는 잘 알려진 대로 'task force'의 약자다. 중요하고도 한시적인 업무를 추진하기 위해 기존 부서에 있는 사람들을 임시로 모아놓은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여기에서 'force'가 '힘' 따위가 아닌 '부대'를 의미한다는 데 있다. 원래 군대용어로 생긴 말이기 때문인데, 미군에서는 특수임무를 띤 기동부대를, 영국군에서는 특별수사대를 의미한다고 영한사전들은 밝힌다.

 

따라서 TF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집단을 의미하므로 'team'이라는 단어가 덧붙을 이유는 전혀 없다. 영어권 어디에서도 그렇게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니 'task force team'이란 한 마디로 세계화 시대의 '역전앞'이요 '족발'인 셈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시 가지를 친 'TFT 팀', 'TFT 팀장'에까지 이르면 영어단어 하나가 겪는 풍상에 애도를 표해야 할지 증식력에 감탄해야 할지 알기 어려워진다.

 

따지고 보면 이런 겹말은 옛부터 무척 많았다. 서해바다의 모래사장에서부터 고목나무의 매화꽃까지, 광통교 다리 옆 약수물에서 8월달 농번기철까지 끝도 없이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이 단어들의 공통분모는 한자와 순우리말이 겹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시대상의 변화에 따라 영어와 한글의 겹침, 나아가 영어약어와 영어단어의 겹침으로까지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초 일본어의 영어식 표기를 억지모방하여 외래어표기법을 개정한 탓에 국민은행이 'KB'가 되고 조흥은행이 'CHB'가 된 것만도 자랑할 일은 아니다. 만시지탄으로 재개정이 이루어져 이제 부산은 'Busan'이 되었지만 재개정 이전에 유명해져 버린 부산국제영화제의 약칭은 아직도 'PIFF(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다.

 

이런 저간의 애로사항을 이해하고 외국인에게 설명하기도 숨 가쁜 마당에 'TFT 팀'까지 등장했으니, 이른바 세계화 시대에 우리의 언어생활을 접하는 세계인들의 반응이 어떨지 참으로 궁금하다. 알파벳과 영어가 많이 쓰여서 친숙해할지, 우리도 모르는 약어들을 우리에게 물어봐 댈지, 알지도 못하면서 써대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할지.

 

한 사회에서 언어의 양상은 그 구성원들 머릿속의 오롯한 반영이다. 세계화, 미국화, 영어화를 앞장서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당선된 세력이 그에 딱 걸맞은 용어를 취사선택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적어도 유력언론들은 제대로 된 표기를 해주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TFT, #언어생활, #국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