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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나고 곧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정치권은 연일 공천권에 대한 다툼이 일어나고 있으며, 국민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인들이 꼴불견이었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갈수록 해도 너무 한다. 도무지 정당의 정책적 지향도 알 수가 없고, 정치인들의 이해관계만 부각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정당정치와 책임정치

 

민주주의를 하는 사회에서 정당이란 본질적으로 정책지향이 유사한 사람들이 연대하여 정치를 하는 조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에는 필수적으로 정책지향이 담기게 마련이고, 그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참여한다. 현대사회는 매우 다양한 이해관계가 상충하며 그 모든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하나의 정당이 모두 대변할 수가 없다. 따라서 각 정당은 각기 대변하는 계층이나 부류가 달라진다.

 

정당의 최고 목표는 물론 좋은 정책을 제시하여 국민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담당하는 것이다. 정권이 아니라도 의회에 진출하거나 각급 지방선거에서 이겨 자신들의 정책을 시현하기도 한다. 결국 주권자인 공화국 시민의 선택을 받는 것이 정당의 최고의 덕목일 수 있다. 선택을 받지 못하면 존립할 근거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정당이 선거를 통하여 권력을 획득하고 정책을 실행하면 그 결과나 성패에 따라서 다시 유권자의 심판을 받게 된다. 잘하면 다시 권력을 맡겨줄 것이고, 잘못하면 권력을 빼앗기는 것이 당연하다. 이렇게 선거를 통해 책임을 묻거나 더 많은 권력을 위임받는 것이 바로 책임정치의 원리이다. 정치적으로 선진적인 나라들은 이러한 책임정치가 잘 정착돼 있다.

 

반면 책임정치를 무력화하는 여러가지 시도들이 난무하는 나라들도 있다. 정도가 아닌 술책으로 책임정치의 원리를 무력화하는 것이 바로 후진정치의 전형이다. 책임정치를 무력화하는 정치행위의 형태는 다양하다. 독재자의 힘에 의한 장기집권이 있고, 불가능하거나 부작용이 더 심각한 파퓰리즘으로 유권자를 현혹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후진적 형태가 정당자체를 허물고 전혀 다른 포장지를 붙여 다시 표를 구걸하는 일이다.

 

한국의 정당정치와 책임정치

 

우리의 경우는 정치적으로 매우 후진적인 처지에 놓여있다. 진정한 정당정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으며, 책임정치의 원리가 지속적으로 무력화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정당은 그 수명이 너무 짧아서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선거때마다 정당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소멸되기를 반복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책임정치를 구현할 방법이 없다.

 

과거 걸출한 인물을 중심으로 정당이 추종자들의 집단이었던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공화당, 김영삼과 김대중의 신민당, 전두환의 민정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노태우의 민자당, 김영삼의 신한국당, 김대중의 국민회의, 이회창의 한나라당, 김대중의 민주당이 모두 일인보스를 중심으로 추종자가 모여드는 형태의 정당이었다.

 

또 다른 면에서는 지역주의에 기대어 결성된 성격을 갖고 있었다. 영남의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이 그렇고, 호남의 평민당, 국민회의, 민주당이 그렇다. 충청의 신민주공화당과 자민련도 마찬가지이다. 지역의 지지성향을 따라서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이 정당을 결성하였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정당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존립기반이 정책이 아니라 지역감정이기 때문에 정당의 개념과는 동떨어진 것들이다.

 

이러한 정당들의 구조적 한계가 여전히 소멸되지 않고 있다. 일인의 정치보스에 기대어 득표를 하려는 시도가 여전하고, 특정지역의 몰표를 기대하고 계층이 아닌 지역을 대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특정지역에는 특정당이 막대기를 공천해도 당선될 것이라는 비아냥이 지금도 한국정치의 현주소를 대변하고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 선거때마다 반복되는 창당, 탈당, 합당, 분당 등은 책임정치를 근본적으로 무력화하는 정치꾼들의 권력욕이 낳은 결과이다. 이렇게 해서는 정당정치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책임정치는 공염불에 불과하게 된다. 국민은 선거에서 심판할 권리가 있는 데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서 그러한 국민의 권리를 앗아가는 일이다. 정당정치도 안되고, 책임정치도 안되는 데 민주주의가 발전할 리가 있겠는가?

 

일인추종세력의 정당에는 정책지향이 설자리가 없다. 지역당으로는 정책대결이 불가능하다. 정치인들의 명분없는 이합집산은 국민의 권한을 무력화하는 도전이다. 정당도 없고, 책임도 없는 인기투표를 해서 나라가 발전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우스운 일이다.

 

이번 대선도 그런 측면에서 대단히 많은 문제가 여전히 노출되고 말았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영남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수도권 기득권과 결부된 새로운 수도권과 지방간의 지역주의까지 새롭게 등장한 선거였다. 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자신이 참여정부의 주역이었던 과거를 털어내려고 노력하였다. 스스로 만든 당을 깨 버리고 새로운 당을 만들어서 현정부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노력하였다. 호남의 몰표를 받았다.

 

이미 흘러간 과거의 정치보스들이 나서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도 참으로 더티한 광경이었다. 김대중씨가 이른 바 여권이라는 거대한 범위를 묶으려고 노력한 것이나 너나없이 그를 찾아가 머리를 조아린 장면에서 한국정치의 절망을 보았다. 그가 지역에서의 몰표를 위한 상징으로 작용한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라를 파탄지경에 빠뜨린 김영삼씨가 나서서 이명박 후보를 열렬히 지지한 것도 꼴불견이다. 이미 국민의 외면을 받은 김종필씨도 역시 한발을 담그긴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이회창씨는 직접 출마까지 하면서 한국정치의 시계를 뒤로 돌리려 하였다.

 

이제 곧 총선이 다가온다. 한나라당은 당헌당규에 분명히 당권과 대권의 분리를 명시했다. 그것을 당개혁의 일환으로 열심히 선전까지 했다. 그런데 막상 정권을 잡고나니 다른 소리가 나온다. 이미 당개혁에 대하여 국민이 상당한 지지를 보였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져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원칙은 엿바꿔 먹었는지 공천권에 대한 신경전에 여념이 없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열린우리당의 후신이다. 열린우리당에 가해지는 국민의 심판을 피하기 위한 편법으로 형성된 정당이며, 이미 국민은 그런 책임회피를 심판한 셈이다. 대선에서 엄청난 차이로 참패한 것이 차라리 책임을 당당히 지는 것과 무엇이 달랐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온통 정체성이 맞지도 않는 잡탕들이 모여서 공천권을 두고 다투기 시작하였다. 호남외에 거의 당선될 가능성이 없어서 더욱 치열한 것인지 모른다. 엄청난 정치적 퇴행이다.

 

이회창씨도 신당을 결성할 모양이다. 아마도 스스로는 부정할지 모르지만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 될 듯하다. 영남과 수도권이 한나라당, 호남의 대통합민주신당, 충청의 이회창당이 지역을 할거하는 신3김정치를 다시 보게될 것 같다. 오히려 3김시대보다 못한 것도 많다. 정당의 수명이 그 때보다 더욱 짧아진 점이다. 한국의 정치가 여전히 한치도 발전하지 못하고 퇴행하고 있는 것이다.

 

총선에서 정당정치와 책임정치에 대한 심판도 해야한다

 

결국 또 다시 정치인들에게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유권자의 힘으로 압박하는 방법만 남아있다. 누가 정당정치에 부합하는가를 판단하여 선택해야 한다. 누가 책임정치를 무력화하였으며, 누가 책임을 당당히 졌는가도 역시 유권자가 심판할 중요한 항목이다.

 

다시 원칙으로 돌아가서 정당정치는 정책이 중심이어야 한다. 일인보스도 아니고, 지역주의도 아니다. 또 책임정치를 구현하려면 정당은 일정한 정체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또 정책을 하나하나 선명하게 제시하여 심판받는 진실이 있어야 한다. 거짓과 허위와 위선으로 국민을 잠시 속여서 권력을 획득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주권에 대한 도전이다.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

 

정책중심, 민주적 리더십, 탈지역주의, 선명한 정체성, 정당의 역사와 지속성, 정책의 진실성 등을 기준으로 판단할 때 역시 한국의 기존 정당은 모두가 함량미달이다. 새로 정당을 결성하여 진입할 세력들도 역시 형편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역시 우리국민은 정치적으로 매우 불행하다. 어느 정당도 흔쾌히 지지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권을 포기할 수도 없다. 정치인들의 기득권 싸움을 그냥 방치할 수도 없다. 그나마 좀 나은 대안을 찾아서 지지해야 할 것이다. 각 정당을 하나씩 위의 항목에 대비해서 체크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다. 우선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우 정책중심, 민주적 리더십, 탈지역주의, 선명한 정체성, 지속성, 정책의 진실성 등에서 모두 낙제점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지속성에서만 약간의 점수를 받을 수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낙제점이다. 이회창 신당이나 문국현의 신당도 점수를 줄 항목이 전혀 없다. 민주당도 지속성 외에는 단 하나도 없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대부분 점수가 높게 나올 것이다. 정책정당이다. 당의 리더십이 민주적 투표로 정해진다. 지역주의에서 자유롭다. 정체성이 선명한 편이다. 지속성도 높은 편이며, 정책의 진실성은 검증이 약간 부족한 정도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국민에게 철저히 외면을 받고 있다. 이제 내분까지 겹쳐서 총선을 어떻게 치를 수 있을지 우려될 정도이다. 민주정치의 근본원리를 우선 정착시키는 것이 한국정치의 가장 시급한 문제라면 그래도 역시 민주노동당 밖에는 선택할 대안이 없어 보인다. 원칙의 문제에서는 민주노동당이 1위, 한나라당이 2위쯤으로 평가된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무너뜨린 정치세력은 당연히 퇴출시키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제 총선에서 국민의 손에 달렸다.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태그:#정당정치, #책임정치, #이합집산, #지역주의, #정책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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