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7년 6월 19일 오전, 산씨(山西)성의 따퉁(大同) 기차 역 앞에서 버스를 탔다. 바로 네이멍구(内蒙古) 후허하오터(呼和浩特)로 가는 버스. 가끔은 버스터미널이 아니더라도 기차역에서 바로 출발하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중국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이 약간 거리가 먼 경우이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인터넷으로 알아둔 몽골족 가이드 빠털(巴特儿)에게 전화를 했다. 후허하오터에 도착하니 바로 마중을 나왔다. 아담한 키, 대머리에 귀엽게 생긴 그는 부인과 함께 가이드 사업을 하면서 예쁜 딸 하나를 키우며 산다.

마침, 한국에서 온 관광객 한 명과 점심을 먹고 있다. 한국에서 휴가를 내고 온 직장인 김도지(닉네임)와 바로 친해졌다. 베이징을 거쳐 아침에 도착한 그는 중국어를 한마디로 못하니 오전 내내 답답했을까. 그러다가 말이 통하는 나를 만났으니 신났던 것이다. 혼자 늘 다니던 나 역시 좋은 일행이 생겨 좋았고. 도지는 빠털과 잘 소통이 안 되기도 했고, 빠털 입장에서는 한 명을 데리고 초원을 갈 수 없으니 시내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닐 셈이었다.

초원은 다음날 가기로 하고 점심을 먹은 후 후허하오터(呼和浩特)에서 남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짜오쥔무(昭君墓)로 갔다. '푸른 무덤'이란 뜻의 '청총(青冢)'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옛날 산천초목이 다 가물어도 이 무덤만은 언제나 목초가 자랐다 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왕소군 동상과 화친동상
▲ 왕소군 무덤 왕소군 동상과 화친동상
ⓒ 최종명

관련사진보기



중국 4대 미인 중 한 명인 왕쨔오쥔(王昭君․왕소군)을 만나러 가는 동안 도지는 계속 그 동안의 궁금한 점들을 묻기 시작했다. 정말 혼자 중국어 한마디 못하면서 이곳까지 올 생각을 다 하다니. 오히려 내가 더 궁금한 게 많아진다. 직장생활의 권태를 벗고 마음을 되잡기 위해 오래 전부터 꼭 가보리라 꿈을 꿨던 초원과 사막을 보러온 아마추어 사진작가 도지. 우리는 쉽게 의기투합했다.

왕소군은 '기러기가 내려온 듯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해 '낙안(落雁)'이라 불린다. 중국 역사 상, 양옥환(杨玉环․양귀비), 서시(西施), 초선(貂婵)과 같은 반열에 든다. 그녀는 황제의 후궁이던 19살의 나이에 서한(西汉) 시대인 기원전 33년에 동흉노의 찬위(单于, 흉노의 임금을 낮춰 부른 말)이던 후한야(呼韩邪)에게 화친의 선물이 되어 이곳 '변방'으로 왔다.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화친동상(和亲铜像)이라 명명된 동상이 보인다. 찬위와 왕소군이 사이좋게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이다. 결혼 후 찬위는 2년 후 사망하지만 왕소군은 찬위의 본처 아들과 다시 결혼하고 살았다 하는데, 후궁으로서 '변방'으로 가게 된 과정을 포함해 그녀의 이런 드라마틱한 삶은 역사적 고증으로서가 아니라 대부분 민간의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왕소군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아름다운 공연

중국4대미인 왕소군을 주제로 한 공연
▲ 왕소군 공연 중국4대미인 왕소군을 주제로 한 공연
ⓒ 최종명

관련사진보기


그녀의 삶은 이백(李白), 두보(杜甫), 백거이(白居易), 채옹(蔡邕), 왕안석(王安石), 야율초재(耶律楚材) 등 문인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그녀를 노래한 문인만도 500여 명이고 700여 수의 시, 40여 종의 이야기로 전해온다고 한다. 게다가 근현대에 이르러서도 궈모뤄(郭沫若), 차오위(曹禺), 톈한(田汉), 젠보짠(翦伯赞), 라오서(老舍) 등도 그녀를 시와 소설, 연극에 등장시킬 정도로 훌륭한 문학 소재이다.

무덤의 봉토 높이가 33m에 이른다. 민간에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왕소군 무덤은 하루에 세 번 신비한 색채를 띠면서 변모한다고 한다. '새벽에는 봉우리처럼 둥글고(晨如峰), 낮에는 종처럼 높게 보이고(午如钟), 해질녘에는 평행선처럼 길어 보인다(西如纵)'하는데 무덤 자체보다는 왕소군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도 든다.

중국인들은 중원에 살다가 '변방'으로 갔다고 해서 '추싸이(出塞)'라 하지만, 넓고 푸른 초원에서 한평생 살다 죽은 왕소군은 바로 이곳이야말로 고향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사람들도 이렇듯 웅장한 무덤으로 그녀를 포장해둔 것인지도 모른다.

짜오쥔무에서 뜻밖에 아름다운 공연을 보게 됐다. 오전 오후 각각 한 번씩 왕소군을 주제로 한 공연인데 입장료에 포함돼 공짜다. 말로만 듣던 몽골족 전통악기 마터우친(马头琴)을 처음 보기도 했고 웅장한 군무도 있으며 왕과 왕비의 듀엣 무용도 볼만하다.

왕소군을 떠올리는 듯, 남녀의 사랑을 묘사한 내용이 많다. 병사들의 진군, 왕과 왕비에게 바치는 선물 증정에 이어 향연도 벌어지는 등 다채로운 장면들이 많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왕소군이 몽고전통 복장을 하고 추는 춤. 눈 부시게 아름답다. 나름대로 연출에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 중 몇 명을 골라 찡져우(敬酒)를 한 잔씩 바친다. 도지가 한잔 마셨다. 그리고 공연 소감 앙케이드 하느라, 나는 통역해 주느라 혼났다.

▲ 왕소군 무덤에서의 공연 네이멍구 후허하오터 시에 있는 왕소군 무덤과 공연 모습
ⓒ 최종명

관련영상보기


씨라무런 초원에서의 평화로운 하루

그렇게 후허하오터에서 오후를 보내고 빠털이랑 저녁 먹고 술 한 잔 하고 잤다. 그리고 다음날인 6월 20일 오전 10시. 초원과 사막 여행을 온 일행 8명이 1박 2일의 여행을 떠났다. 공교롭게 모두 한국인. 나머지 중 4명은 톈진 유학생, 2명은 베이징 유학생이다.

후허하오터에서 북쪽으로 약 90km, 2시간 정도면 도착한다. 왕소군도 2000년 전 감탄했을 넓고 푸른 초원. 높은 산을 넘고 허허초원을 달려 도착한 곳은 씨라무런(希拉穆仁) 초원이다. 씨라무런은 '황색 강'이라는 뜻이다. 후허하오터가 '청색 도시'이니 서로 잘 어울린다.

초원을 배경으로 몽골족 등 유목민족의 전통적 가옥 형태인 멍구빠오(蒙古包)가 곧 민박촌이 된 곳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찡져우(敬酒)를 준다. 손님은 몽골족 풍습으로 손가락으로 술을 묻혀 튕기며 두 손을 모으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해야 한다. 다오여우(导游)가 그렇게 사전 교육을 시킨다.

몽골족의 전통가옥
▲ 멍구빠오 몽골족의 전통가옥
ⓒ 최종명

관련사진보기



방 배정을 받아 도지와 함께 멍구빠오에 들어가니 칭기스칸(成吉思汗, Chinggis Khaan)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칭기스칸은 몽골족의 왕명. 성은 '뽀얼지진'(孛儿只斤, bo er ji jin)이며 이름은 테무진(铁木真, tie mu jin)이다. 우리나라 정조가 성이 이(李)이고 이름이 산(祘)인 것과 비슷하다.

멍구빠오에 걸려 있는 칭기스칸의 초상화
▲ 칭기스칸 멍구빠오에 걸려 있는 칭기스칸의 초상화
ⓒ 최종명

관련사진보기



짐을 풀고 마터우친 연주를 들으며 양고기에 점심을 푸짐하게 먹었다. 마터우친은 중국 중원의 한족 전통악기인 얼후(二胡)처럼 두 줄 현악기인데 얼후보다 오히려 바이올린 소리에 더 가까운 맑은 소리를 내는 듯하다. 말 머리 모양의 문양이 계속 눈길을 끈다.

말 머리모양의 몽골족 두줄 현악기
▲ 마터우친 말 머리모양의 몽골족 두줄 현악기
ⓒ 최종명

관련사진보기



6월의 초원. 풀이 아직 덜 자라 '땅 반 풀 반'이다. 점심을 먹고 나니 몽골족 전통문화를 보여준다고 한다. 우선, 경마가 벌어졌다. 손님 중 남녀 한 쌍이 전통 복장으로 갈아입고 큰 깃발을 휘날렸다. 그것을 신호로 경주가 시작이다. 초원 위에 10여 마리의 말들이 다그닥다그닥 달리니 정말 800여년 전 테무진 부대가 달려가는 듯 착각에 빠진다. 가장 먼저 골인한 1등에게 손님은 100위안을 하사했다.

몽골 씨름도 보여준다. 씨름을 시작할 때 독특한 구호와 함께 몸을 좌우로 흔드는 동작이 특이하다. 예선을 거쳐 최종 결승까지 이어진다. 우리 씨름과 약간 다른데 그 기술 구사는 비슷해 보인다. 샅바는 없다.

씨라무런 초원에서 본 몽골족 씨름
▲ 몽골씨름 씨라무런 초원에서 본 몽골족 씨름
ⓒ 최종명

관련사진보기



말을 타려니 1시간에 80위안이라고 한다. 우리 일행 중 한 남학생이 너무 비싸다며 계속 협상을 했지만 막무가내로 안 된다고 한다. 우리는 승마를 포기하는 대신, 쓰룬위에예모퉈처(四轮越野摩托车) 즉, ATV(All Terrain Vehicle)를 탔다. '사륜 오토바이'라고 해야 하나 '산악 오토바이'라고 해야 하나 헷갈리지만 초원이나 사막을 달리는 이 터프한 오토바이는 바퀴가 4개라 아주 안전하다. 30여분 달리는 동안 길 위로도 달리고 길 아닌 곳도 달렸다.

온 사방이 확 트인 벌판, 초원을 달리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하다. 일행이 탄 오토바이 중 한 대가 고장 나서 약간 지루하긴 했지만 속력을 줄이라는 요청을 무시하고 신나게 달려도 좋았다. 초원의 양과 소의 모습은 평화롭다.

씨라무런 초원에서 노니는 양떼
▲ 초원의 양들 씨라무런 초원에서 노니는 양떼
ⓒ 최종명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몽골족의 신령스런 곳, 샤머니즘의 구현인 '오보(敖包)'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오보'는 몽골어로 '나무와 돌, 흙으로 쌓은 무더기'라는 뜻으로 '오보(鄂博)'라고도 한다. '敖包'는 중국어로 '아오빠오(ao bao)라 발음하는데, 몽골어에서는 '오보(obo)'이니 이 말과 가까운 발음으로 '鄂博(e bo)'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보'는 우리나라의 서낭당과 비슷한 듯하다. 샤머니즘적인 기원의 뜻도 있지만, 동시에 마을과 마을을 구분하거나 씨족 마을의 경계를 나타내기도 하는 것이다. 몽골족에게는 일종의 군현(郡县)제도와 비슷한 멍치(盟旗)가 있다. 지금도 그 흔적이 지도 상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멍'은 '치'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각각 '군'과 '현'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 '치(旗)'와 '멍(盟)'에 따라 크기와 제례 내용도 차이가 난다고 한다.

몽골족의 서낭당
▲ 오보 몽골족의 서낭당
ⓒ 최종명

관련사진보기



ATV 한 대가 결국 고장 나는 바람에 2시간 넘게 초원에서 신나게 놀았다. 결국 못 고쳤다. 두발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를 보호하려고 따라온 직원은 고장 난 ATV를 끌고 오고 대신에 오토바이는 도지가 탔다. 정말 신나게 잘도 탄다. 너무 신났던지 우리가 말을 타는 동안 다시 돈을 주고 오토바이를 빌려 초원을 신나게 타기도 했다.

다시 멍구빠오에 돌아온 우리는 말을 타기로 했다. 날이 저물어가니 50위엔으로 협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초원에서 말을 타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더라. 엉덩이가 제법 아프다. 마구 달리면 오히려 아프지 않다는데, 말은 주인 말만 듣고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뒷등을 때려봐도 요지부동이다.

터벅터벅 말을 타고 초원을 거닐다가 돌아왔다. 멍구빠오로 돌아가려는데 활쏘기를 하는 몽골족들이 있다. 말 타고 활 쏘고 하라는 것일 터인데 사람들이 별로 관심이 없다.

씨라무런 초원에서 말타기
▲ 말타기 씨라무런 초원에서 말타기
ⓒ 최종명

관련사진보기



저녁 만찬이다. 여행객들이 모두 어울렸다. 주문한 양고기 바베큐도 맛 있고 공연도 흥미롭다. 마터우친과 전자오르간 반주에 맞춰 민가와 유행가가 이어진다. 낯선 사람들이 다 함께 하나가 된 듯하다.

여행의 맛이랄까. 스스럼 없이 술을 권하고 받고 하는 사이가 된다. 만찬석상에서 양고기 한 마리를 통채로 주문한 팀의 남녀 한쌍이 나와서 몽골 전통풍습에 따라 고기를 칼로 베어 주는 행사를 한다. 남녀에게 각각 좋은 부위만 떼어내어 먹여주는 모습인데 독특하다.

씨라무런 초원 멍구빠오의 저녁만찬
▲ 초원의 만찬 씨라무런 초원 멍구빠오의 저녁만찬
ⓒ 최종명

관련사진보기



저녁만찬이 끝나고 바깥에서 노래와 춤, 마터우친 연주 등 민속 공연이 한 시간 동안 이어진다. 감미롭고 유쾌한 소리를 들으며 초원의 밤이 깊어간다. 모든 관광객들이 함께 모여 횃불 앞에 모여 맥주를 마시며 춤을 추고 놀았다. 캠프파이어가 따로 없다. 우리 일행은 모두 다시 모여 2차로 맥주를 마셨다. 얼마나 마셨는지도 모를만큼 많은 맥주를 마셨건만 취하지도 않는다. 또 언제 이처럼 즐거운 밤을 보낼 수 있으랴.

▲ 초원에서의 하루 씨라무런 초원에서 즐긴 멋진 하루, 멍구빠오에서 하룻밤
ⓒ 최종명

관련영상보기

덧붙이는 글 | http://blog.daum.net/youyue/13803192 게재



태그:#몽골족, #왕소군, #초원, #후허하오터, #말타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중국발품취재를 통해 중국전문기자및 작가로 활동하며 중국 역사문화, 한류 및 중국대중문화 등 취재. 블로그 <13억과의 대화> 운영, 중국문화 입문서 『13억 인과의 대화』 (2014.7), 중국민중의 항쟁기록 『민,란』 (2015.11) 출간!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