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드라마 <이산>
 드라마 <이산>
ⓒ MBC

관련사진보기


드라마 <이산>에서 정조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언제나 세이브 1건씩 올리는 도화서 다모 성송연. 특별히 힘도 세지 않은 그는 항상 불타는 사랑의 힘으로 정조 이산을 위기에서 구출해내곤 한다.

그를 보면 마치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는 홍 반장’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럼, 성송연에 관한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일까?

<이산>에서는 성송연이란 이름으로 나오지만, <정조실록> 등의 역사기록에서는 ‘소용 성씨’(?~1786년) 혹은 ‘의빈 성씨’로만 나오고 있다. 역사기록에는 그가 소용에서 빈으로 승격한 후궁이었다는 점과 그의 성씨가 성(成)이라는 점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확인할 길이 없다. 

참고로, 조선시대 후궁의 서열은 빈(정1품)-귀인(종1품)-소의(정2품)-숙의(종2품)-소용(정3품)-숙용(종3품)-소원(정4품)-숙원(종4품)의 순이었다.

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본래 궁녀였던 성씨는 문효세자를 낳은 '공로' 때문에 1782년에 영의정 서명선의 건의를 받아 정3품 소용이 되었고 1783년에는 정1품 빈으로 승격되었으나, 1786년에 옹주를 출산한 뒤에 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직업이 도화서 다모였다는 이야기는 사실상 허구에 속한다. 왜냐하면, 실록 등에 따르면 그는 어릴 때부터 궁녀로 살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산>의 작가는 정조 이산이 그림을 좋아하는 군주였다는 점에 착안하여 도화서 다모와의 사랑을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산 역의 이서진이 예전에 MBC 드라마 <다모>의 주인공이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런 장치를 설정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성씨가 미천한 집안 출신의 궁녀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다른 왕비나 후궁들과 달리 그만큼은 정략결혼의 주인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정조가 더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여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기록에 미천한 집안 출신으로 나온다고 해서, 그가 아주 가난하거나 천한 집안의 자녀였으리라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군주나 지배층의 입장에서 기록되는 것이기 때문에, 미천한 집안이냐 아니냐 하는 판단도 그 관점을 기준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아주 부유하고 괜찮은 집안일지라도, 역사에서는 ‘미천한 집안’이라고 기록될 수도 있다.

그럼, 그는 과연 ‘홍 반장’처럼 정조 이산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 이산을 구해주는, 슈퍼맨 같은 사람이었을까? 정조와의 관계에서 그는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었을까?

드라마 <이산>에서 어린 이산이 모반을 목적으로 한 무기은닉 혐의를 받자, 그는 우연히 목격한 장면을 기초로 그 무기의 진짜 주인을 밝혀냄으로써 이산을 위기로부터 구해낸 적이 있다. 또 최근 방영분에서는 김귀주가 세손을 암살할 목적으로 준비하던 나례회 행사의 의궤를 미리 입수하여 암살 음모에 대한 정황 증거를 찾아내기도 하였다. 그럼, 실제의 성씨도 과연 그러했을까?

드라마 <이산>에서는 성씨가 어려서부터 이산의 동무였다고 나오지만, 그가 역사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시점은 정조가 즉위한 지 6년이 지난 1782년 무렵이다. 그러므로 위기 때마다 나타나서 정조를 구하는 성송연의 활약상은 드라마 작가의 상상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왕비나 후궁들과 달리 별다른 후광 없이 그것도 궁녀 신분에서 일약 후궁으로 뛰어올랐기 때문에, 그와 정조의 사랑은 궁궐 내외에서 신데렐라 같은 이야기의 소재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오랫동안 궁녀로 살다가 이산의 눈에 들어 세자까지 잉태하게 되었으니, 조선판 신데렐라의 소재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정비인 효의왕후나 후궁인 원빈 홍씨(홍국영의 누이)는 자녀를 한 명도 못 낳은 데 반해, 후궁으로 지낸 4년 동안 2명의 자녀(1남 1녀)를 낳은 것으로 보아 그와 정조 사이가 매우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 재위 24년 동안 정조가 낳은 4명의 자녀 가운데에서 절반이 성씨의 뱃속에서 나온 점을 볼 때에, 4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두 사람이 아주 각별하게 지낸 것 같다.

또 <정조실록> 10년(1786) 9월 14일자 기사에서 정조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이제부터 국사를 의탁할 데가 더욱 없게 되었다”라고 탄식한 것으로 보아, 그와 정조는 심리적으로도 매우 가까웠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의 동무는 아니었다고 해도, 정조가 동무로 생각할 만한 후궁이었던 모양이다. 

이러한 점들을 본다면, 실제의 성씨는 드라마 <이산>에서 묘사되는 홍 반장 같은 이미지의 소유자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데렐라 같은 존재인 동시에, 정조 이산에게는 동무 같은 존재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국왕의 동무 같은 신데렐라’가 그녀의 실제 이미지였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성씨는 정조의 정치적 라이벌인 정순왕후와는 어떤 사이였을까? 남편 이산이 싫어하는 정순왕후를, 그도 싫어했을까? 그래서 정순왕후도 그를 싫어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을 도출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가 하나 정도 있다.

그가 문효세자를 낳은 일을 계기로 궁중 어른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점이다. 만약 왕실의 최고 어른인 정순왕후의 미움을 샀다면, 궁중 어른들의 사랑을 두루 받는 후궁이라는 평판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점을 본다면, 궁녀의 신분에서 출발한 사람치고는 궁궐 내 인간관계가 꽤 괜찮았던 모양이다. 영의정의 건의를 받아 후궁에 오른 것을 보아도 그렇고, 정순왕후가 주도하는 내명부에서 좋은 평판을 유지한 것을 보아도 그러하다.

이러한 정황을 보면, 성씨는 정조의 연인임에도 불구하고 정순왕후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만큼 그의 인간관계가 원만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드라마 <이산>에서 정조 이산과 은은한 눈빛을 나누는 도화서 다모 성송연은 실제로는 성씨라고만 알려진 궁녀 출신 후궁으로서, 홍 반장의 이미지라기보다는 신데렐라의 이미지를 가진 동무 같은 여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정순왕후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홍국영 측과는 이해가 대립하는 입장에 있었음도 알 수 있다.

항상 신변의 위협 속에서 긴장감을 느끼며 살아야 했던 정조는 궁녀 출신 후궁인 성씨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았지만, 성씨는 출산 후유증을 이기지 못해 이산의 곁을 일찍 떠나고 말았다. 그처럼 소중한 여인을 잃었기에, “이제부터 국사를 의탁할 데가 더욱 없게 되었구나!”라며 정조는 그와의 이별을 슬퍼했던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