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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인숙 카타리나 수녀
 오인숙 카타리나 수녀
ⓒ 이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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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숙 카타리나 수녀는 지난 4월 사제 서품을 받아 한국 최초로 수녀사제가 된 인물이다. 종교계에도 여성 성직자에 대한 차별이 있음을 감안한다면 오카타리나 수녀사제의 등장은 신선하고도 반가운 소식. 물론 한국의 성공회에서는 그간 9명의 여성 사제가 나왔지만 수녀로서 사제서품을 받은 이는 오카타리나 수녀가 처음이다. 세계적으로도 수녀사제는 10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연말연시를 맞아 정동에 있는 성가수녀회에서 오카타리나 수녀사제를 만났다.

"약속이 10시 아니었던가요?"
"전 10시 반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무튼 잘 됐어요. 할 일이 많았는데 덕분에 하던 일을 마칠 수 있었어요."
"한 번 더 전화 드릴 걸…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덕분에 여유가 생겨 다행이었어요."

수녀사제님은 달랐다. 내 기억이 옳다, 네가 틀렸다가 아니고 '덕분에 좋았다'는 풀이를 달아주신다. 아침을 거르고 온 게 아니냐며 주방을 뒤져 떡과 과자를 내어주시는데 "사제님 과자를 저희가 다 먹어버리는 것은 아니냐"고 했더니 "다 먹어야 또 생기지요"라고 하신다. 서먹할 수 있는 첫만남이 '덕분이다, 또 생긴다' 두 마디로 편안한 자리가 된다. 이건 누가 뭐래도 정말 카타리나 수녀사제님 덕분이다.

여성의 신성함을 허하라

"여자가 아무리 많아도 신부님이 없으면 감사성찬례(예배, 미사)를 드릴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지난 92년 영국 성공회에서 여성 사제를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되자 당시 제게 먼저 테이프를 끊으라는 권유가 있었죠. 하지만 여러 문화적 이유로, 또 수도회에 속한 몸이라 제가 재직했던 학교(성공회대)의 제자들이 먼저 사제가 됐어요. 다만 이번엔 수도회에 사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서품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선은 수도회 중심으로 일하고 있어요."

성공회의 성직자는 결혼을 할 수 있다. 여성 사제를 일컬어 임신한 몸으로 어떻게 집전을 하겠느냐는 여론이 나왔을 때 오카타리나 수녀(당시로선 수녀였다)는 "아이는 혼자만 가지느냐? 아름답게 보고 오히려 여성을 보호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반박을 했다고 한다.

참고로 오카타리나 수녀는 출가와 동시에 독신을 결심한 몸. 성직자 생활 수십 년만에 직접 감사성찬례를 집전한 소감은 어떤지 물었다. '기쁘다, 의미가 깊다'라는 사회적 해석 대신 알맹이를 놓치지 않는 답을 주신다.

"집전할 때나 안 할 때나 형식은 다 같죠. 미사의 형식보다 그걸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고 주님과 함께 살아가려는 신앙적 다짐이 중요하거든요. 이 복음말씀이 무슨 뜻인지 핵심을 전하고 마음에 담아 실천할 수 있어야죠. 성경을 읽는 게 아니라 (성경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하니까요."

힘들고 피하고 싶은 현장이 하나님이 계신 곳

 오인숙 카타리나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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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타리나 수녀사제는 11월 초 미국에서 그리스 월드 성공회 수석주교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수행과 통역을 맡았다. 이 일로 인터뷰 있기 바로 전날 저녁까지 바빠 잠을 몇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힘들고 피하고 싶은 그 현장이 바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현장"이라는 버나드 성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당면한 문제를 피하지 말고 받아들였을 때 그걸 통해 서로 보완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진리"라고 전했다. 이는 그가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더욱 의미 깊은 말이 된다. 여성성직자들의 출가 사연을 모은 솝리 출판사의 '출가'라는 책에서 오카타리나 수녀사제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6·25 동란을 당하면서 내 생애에 상상할 수 없는 뜻밖의 도전의 삶을 맞게 된다. 우리 부모는 돌연 총살을 당하여 우리 두 자매는 뜻밖의 사고를 받아들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일은 동화에나 있을까 도시 믿을 수가 없었다. 눈이 짓무르도록 새벽부터 밤까지 종일 울어대어도 부모님을 결코 집에 돌아오시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는지 몰라도 갑자기 동생의 애절한 울음소리를 감지한 순간 동생을 달래며 나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 엄마가 되어 있었다!'

영국 수녀님들이 세운 수원의 성베드로 보육원이 소녀 오인숙의 새보금자리가 됐다. 어느 부모가 그렇게 사랑으로 돌볼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수녀님들의 사랑 속에 살았다고 그는 회상한다. 학교에서는 그가 보육원에서 자란다는 것을 모른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일부러 감추어서가 아니고 오인숙이라는 학생이 너무도 밝았기 때문이라고.

수녀님들로부터 교리 공부를 하면서 어린 오인숙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봤다.

'언제부터인가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무덤을 향해 서 있게 된다는 것,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부모의 죽음을 슬퍼한다고 다시 살아나 우리를 보살필 수 없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삶을 보람 있고 아름답게 만들고 성숙시키는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는 것도 인식하게 되었다. 날마다 순간마다 감사하며 새 날을 맞곤 했다. 그래서 촌음을 아껴 기도하고 일하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 <출가> 중에서

대학(서강대 영문학과)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맞은 4월 봄날, 그는 수녀로 살 것을 서약했다. 친구들은 말렸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결심한 길이었다. 6년 후 그는 종신서약을 가졌다.

부모님에게 총구를 겨눈 그 군인까지도 용서했다기에 '원죄'에 대해 물었다. 불가에서는 윤회를 담당하는 업(業)이라 하고 개신교에서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죄를 말한다.

"원죄란 우리 조상들의 조상들에게서부터 유전자처럼 내려오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요. 사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언뜻 체감되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럼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세요. 인간은 강하기도 하지만 한없이 약한 존재잖아요? 신과 같이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범죄를 지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 않겠어요? 뜻하지 않는 유혹이 왔을 때 이겨내면 다행이지만 굴복하면 죄가 되죠. 세상에는 내가 모르고 지은 죄가 있고 의도적으로 지은 죄가 있어요. 의도적으로 지은 죄는 본죄이고 나도 모르게 지은 죄는 원죄라고 보면 되죠. 죄를 지을 가능성, 그게 바로 원죄가 아닐까 생각해요."

영성, 쉽고 작게나마 가능하죠

 오인숙 카타리나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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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회에서 영혼을 저당 잡히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영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어온 지 오래 됐다. 오카타리나 수녀사제는 그런 지적에 대해 '전체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은 무리고 Person to Person(사람 개개인 나름)으로 보고 있다'고 답한다.

"사실 너무 바쁘다보니 일에 쫓겨 영성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고 '영성'만을 최고로 쳐 사회를 떠나 혼자 신비 속에서 일은 무시하고 기도하는 것도 전 아니라고 봐요. 영성을 어렵거나 크게 보지 말고 쉽고 작게 볼 수도 있어요. 예로 화장실에 있는 1분간, 아님 잠들기 바로 직전 ‘오늘 내가 상사와 이야기 할 때 좀 껄끄러웠어. 더 좋은 방법은 없었을까?’라고 생각해보고, 또 요즘 유머집도 많이 나오는데 그거 하나 챙겨서는 동료들과 얘기할 때 써먹어서 웃게 해준다던지, 부하 직원이 한 일에 대해 '네가 하니까 다르구나. 멋져!’라고 말해주며 남이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것, 이런 모든 것이 모두 영성훈련입니다."

오카타리나 수녀사제는 성경 중 "빛의 천사, 가면을 쓰고 있다"라는 구절을 들려주며  천사처럼 빛이 다가오는데 그게 천사인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속은 안 그런데 겉만 천사인 경우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명예심,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에 가려 사회에 기여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자신의 생애를 마치면 결국 '참나'를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성찰할 시간이 없으니 '지금, 이때, 이곳에서' 할 것을 권한다.

다른 종교와의 이해와 화합, 삼소회

오카타리나 수녀사제는 여성성직자들의 모임인 삼소회의 회원이기도 하다. 종교간 화합을 위해 여성종교인이 앞장서자는 취지로 88년 탄생한 이 삼소회는 현재 불교의 승려, 원불교의 교무, 카톨릭의 수녀, 성공회의 수녀 등 모두 17여 명.

오카타리나 수녀사제는 99년 원불교 김지정 교무의 권유로 같이 활동하게 됐다. 삼소회 회원들은 매달 한 번씩 모임을 갖고 세계평화와 종교간 화해라는 제목으로 기도를 올린다. 법당에서 혹은 교당에서 혹은 피정의 집에서 만나 각 종교의 방식대로 기도를 드린다고. 모임을 마치고 식당엘 가면 사람들이 삼소회 회원들이 서로 어울려 있는 것을 보고 ‘어머, 평화 그 자체다’라며 감탄한단다.

작년 삼소회 회원들은 세계성지순례를 떠나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영국의 켄터베리 등을 거쳐 티벳 임시정부가 있는 다람살라로 가 달라이라마를 친견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특히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사이 장벽에 손을 짚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고 평화를 기도했다고 한다.

"다른 종교를 볼 때 왜 저럴까 이상하게 보지 말고, '아 저런 기도방법도 있구나'하며 다름을 존중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절에 가면 스님들이 목탁치고 하는데 해보니까 좋더라고요. 사람들이 신을 존경하는 데 있어서 표현하는 방법이 다른 것이지 어디 나쁜 것을 빌고 그러겠어요?"

멀티사회와 어울리는 성공회 정신

성공회의 본토는 영국으로, 헨리 8세가 캐서린 왕비와의 결혼무효 소송을 내며 로마교회와 갈라선 것이 출발이 됐다. 이후 구교와 신교 사이의 극단적인 것을 지양하고 서로의 장점을 포용하려는 전통을 세워와 오늘날 세계교회 일치운동을 펴기도 한다. 현재 영국 성공회보다 자본과 신자 수에서 앞선다는 미국 성공회가 동성 결혼은 물론 동성애자 주교를 허용하고 있어 화제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 성공회가 들어온 것은 1889년 코프(C. Corfe) 신부가 초대 한국 주교로 영국에서 서품되면서였다. 한국에서 역시 성공회는 상당히 유연하고 사회참여적인 종교로 인식되는데 일제 식민통치시절 항거는 물론 70~80년대 한국 민주화투쟁의 산파역할을 했다.

서울 주교좌성당은 1987년 6월민주항쟁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오카타리나 수녀는 "앞으로 아프리카에서도 대주교가 나올 전망이"이라며 "성공회는 인종과 성별, 국가를 넘어 멀티 사회를 수렴할 수 있는 종교"라고 설명한다.

1년간 입지 않았다면 이미 당신의 옷이 아니다

 오인숙 카타리나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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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 '예수의 사랑'이라는 말이 넘쳐날 것이다. 왜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하는지, 다소 철없는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가난한 자들을 볼 때 일을 안해서 그렇지, 왜 저렇게 살까, 라고 볼 게 아니고 연민을 가져야 해요. 연민은 동정과 다릅니다. 연민은 자비나 사랑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내게 1년간 입지 않은 옷이 있다면 그냥 나눠 주세요. 언젠간 입겠지하며 오랫동안 장롱에 넣어두는데 1년 넘게 입지 않았다면 그건 이미 나눠 입을 옷이라는 말이에요. 그거 내놓는다고 우리가 궁핍하게 사는 건 아니거든요. 쇼핑한 것 반씩 나누면 좋겠지만, 우선 광 속에 안 먹고 오래두는 것이 있다면 썩기 전에 나누고, 어디서 모금활동하면 기쁘게 나누세요. 내가 가지고 있다고 다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속한 공동체의 것이기도 해요. 저 사람이 저렇게 된 게 저 사람만의 죄가 아니고 나도 거기에 공동책임이 있어요. 그래서 나눠야 하는 겁니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오카타리나 수녀사제가 내 온 장미향 홍차는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도 식지 않았다. 손수 만든 주전자 보온 덮개가 기능 만점인지 사제님만의 비법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사진 촬영을 위해 성가수녀회 안뜰을 같이 산책했다. 동그랗게 가지치기를 한 나무가 보이자 "어머, 똑같이 잘라버려 나무가 속상했을 거야"하시더니, 감을 따는 사람들에게는 "까치 먹을 것 남겨 두세요"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신다.

10대 소녀같은 감성의 언어가 예순 일곱 사제에게서 나오는데, 순수와 영성의 깊이가 결코 둘이 아니구나 싶다. 하하호호 소녀처럼 웃는 오카타리나 수녀사제, 그날 그 고운 뜰에서 '수녀님, 한번 안아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끝까지 하질 못했다. 1년 아니 10년 넘게 입지 않는 옷이 아직 장롱에 남아 있는 탓이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우먼라이프>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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