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민주화의 열망을 품고 있는 버마(미얀마) 국민들은 지난 2007년 9월 약 10여 년 만에 또다시 대규모 민주화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시위는 소강상태입니다. 이에 '함께하는시민행동'은 버마 국내의 열악한 상황을 피해 국경지대로 나와 있는 많은 시민들이 민주화의 메시지가 담긴 라디오 채널들을 들을 수 있도록 '내 이름을 새긴 피스(PEACE) 라디오 보내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시민행동과 공동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글은 국제분쟁 전문기자인 이유경씨(penseur21@hotmail.com)가 버마에서 보내온 기사입니다. <편집자주>
 
 26일, 미얀마 양곤에서 무장한 경찰과 군인들이 반정부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곤봉과 최루가스등을 사용하고 있다.

"'언론플레이'는 우리의 중요한 전술이다. 우린 군 사병과 장성들을 언론플레이로 갈라 놓을 것이다."

"그 말은 군 사병들도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는??? … 우와 멋지다!"

 

10월 21일 늦은 오후 랑군 시내 한 가라오케 룸이었다. 나는 버마 군부를 '안주' 삼아, (맥주는 '폼'으로 시켜 놓고) '수배자' 세 명을 인터뷰하며 낮은 환호를 질렀다. '언론 플레이' 라는 말이 반가웠다기보다는 "군 사병들도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이 나를 더 흥분시켰다.

 

이들 중 한 명이 BBC 라디오 (버마어) 방송과 인터뷰하면서 군부를 힘껏 비판했던 녹음 기록을 손전화에서 재생해 보였다. 이런 메시지를 군 사병들이 듣는 것이라며.

 

그건 강제 징집으로 많은 수가 채워진 50만 버마 대군을 겨냥한 심리전이었다. 수배자들은 지하생활을 전전하고 있었지만, 군부독재를 향한 저항의 메시지만큼은 라디오를 통해 지상으로 생생하게 내보내고 있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버마 군부의 내분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별'들의 내분일 경우에는 권력투쟁 양상을 보였고, 사병들의 탈영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2004년 내가 무장투쟁 조직인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의 '파푼' 전선을 방문했을 때 사실상 버마 영토 안에 틀어박힌 그 반군전선을 지키고 있던 게 모두 정부군 탈영병이었다.

 

여전히 소년 티를 벗지 못한 10대 후반 탈영병부터 30대 중반 주방장 탈영병까지, 민주세력이 눈여겨 보는 대목은 '별들의 전쟁'보다는 군부 내 '혹시 있을지 모를' 양심 세력(장성이든 사병이든)과 일반 사병들의 이탈이다. 세계적인 버마 전문기자 버틸 린트너 역시 최근 발행한 그의 저서 <아웅산 수찌와 버마군부(아시아 네트워크)>에서 군 내분 가능성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버마군부의 붕괴 시나리오를 기술한 바 있다.

 

군부를 가르는 라디오의 힘

 

최근 두 번째 버마 내부 취재 길에서도 나는 '온 국민이 라디오를 통해 민주적 목소리를 듣는' 현실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옛 수도 랑군에서 버스로 19시간 걸리는 관광지로 유명한 샨주의 인레 호수가에서 다시 배를 타고 한 시간쯤 들어간 후, 또 다시 20분쯤 걸어 들어가는 깡촌마을 메인똑의 고아원 학교 여교사도 "BBC와 VOA(<미국의 소리>)를 통해 소식을 듣는다"고 말했다.


랑군에서 나의 가이드를 맡았던 치 마웅(가명, 30)은 전날 밤(혹은 새벽) BBC 라디오에서 무엇이 흘러나왔는지 이따금 나에게 말해주며 정보 입수에 도움을 주었다.

 

예를 들어 10월 31일 버마 중부 도시 포코쿠(9월 5일 승려 폭행 사건으로 전국 시위의 도화선이 된 지역)에서 승려들이 다시 시위를 재개했다는 소식은 버마 안에서는 바로 접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서둘러 포코쿠를 찾을 수 있었던 건 (물론 시위 장면이야 놓쳤지만) 치 마웅이 들은 BBC 뉴스 덕분이었다.

 

그렇게 찾은 포코쿠에서 시위를 주도한 승려들은 <이라와디(태국 소재 망명 언론)> 등 망명언론과 더불어 라디오 방송 기자들이 이따금 취재용 전화를 한다고 말했다.

 

민족민주동맹(NLD) 랑군 본부에서 만난 이 당의 여성위원 두 명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라디오 애청자였다. 그들은 "버마인들이 라디오를 듣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관영 언론은 어떠냐"고 물으니 이들은 '거짓말'이라는 단어가 웃음 속에 묻힐 만큼 배꼽잡고 웃었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버마국적의 이주노동자들이 버마 민중들의 민주화시위를 강경진압하고 있는 군사정권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일당보다 비싼 신문, 선 끊어진 인터넷

 

이들뿐이 아니다. '뉴라이트 오브 미얀마'처럼 '찌라시' 수준에 불과한 관영 신문이나 군부의 '주둥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미얀마 TV 방송들을 입에 올려 "어떤가"하고 떠보면 사람들 표정은 대체로 이그러지거나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침묵했다.

 

그건 대놓고 비판하기 어려운 상황을 반영한 것이었고, 동시에 '그걸 누가 믿는다고 그런 말 같지 않은 질문을 하느냐'는 암묵적 답이기도 했다.

 

형형색색 컬러 판 장식에 세계 최빈국 버마를 마치 '선진국' 어디쯤 갖다 놓은 듯한 <미얀마 타임즈>도 노동판 일당(1000쨧)보다 비싼 가격(1200쨧) 때문에 어차피 서민들의 주머니로는 감당할 수 없는 신문이다.

 

이 신문은 '버마에도 정부 통제를 받지 않는 신문이 있다(고로 언론자유가 있다?)'는 과시용으로 언론군부와 가까운 호주 사업가 로스 덩글리가 2000년 허가받아 발행하는 것인데, '장밋빛 찌라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난 8·9월 시위상황을 발빠르게 전했던 인터넷은 어떤가. 버마 국민들이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수단은 결코 아니다.

 

시간당 1달러 내외로 저렴하긴 하지만, 그건 라디오처럼 간직할 수 있는 매체도 아니고 지출하면 끝나는 돈이다. 극빈한 다수 서민들이 그런 인터넷에 의존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검열은 기본이고 군부는 심심하면 그 선을 끊어놓고 있으니.

 

이렇게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버마 국민들의 진정한 '국영언론'은 현재로선 라디오뿐이다.

 

아무리 장미빛이라도 '찌라시'는 필요 없다

 

 승려와 학생들의 평화시위를 유혈진압한 미얀마 군부를 규탄하는 집회가 27일 낮 서울 한남동 주한 미얀마 대사관 에서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와 국내 인권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엄마와 함께 나온 어린이가 군인들이 승려들을 탄압하는 그림을 들고 있다.

라디오는 버마내부는 물론 (버마‐타이) 국경지대 난민이나 이주노동자들, 혹은 제 3의 해외까지도 민주적 목소리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매체다.

 

BBC와 VOA 등이 대표적인데, 특히 BBC는 버마어·네팔어·우루두어(파키스탄 공용어)·아랍어, 그리고 스리랑카 내전의 두 앙숙들의 언어인 타밀어와 싱할라어는 물론 탈레반의 인종적 기반인 파슈툰족의 언어와 아프간과 이란에서 통용되는 페르시아어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34개의 현지 언어로 방송하는 세계적 라디오망을 구축하고 있다.

 

경제가 폭격 맞아 돈 들어가는 미디어를 이용하기 어려운 분쟁지역의 언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고 또 영어가 안 되는 골짜기 주민들도 어려움 없이 국제뉴스를 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현지어 방송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언어를 말할 수 있는 본토 출신 기자들(일부는 해외에 망명한)이 만들고 있어서 서구의 시각이 일방 통행할 우려 같은 것도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바로 이 점이 버마처럼 폐쇄된 국가의 내부 상황도 통역 등을 거치지 않고 그토록 신속하고 정확하게 사태를 보도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산 넘고, 물도 건너고, 인종과 지역과 직업도 차별하지 않는 이 라디오는 가격도 심하게 비싸지 않아 빈곤까지 뛰어 넘을 수 있다.


버마 제 2의 도시 만달레이 야시장에서 가격을 알아보니, 3000쨧에서 시작하여 6000쨧 정도면 무난한 걸 고를 수 있었는데 (물론 더 비싼 것들도 많지만) 이건 하루 1000쨧을 버는 노동자들도 "구입은 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다만 그것이 쉬운 지출이 아님은 분명하다. 거리음식으로 예닐곱 명이 배를 채울 수 있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만달레이에서 나의 기사 노릇을 해준 트라쇼(수동으로 운전하는 세 바퀴 탈 것) 운전자 모조아웅 (가명, 40)은 라디오가 고장났다며 "사긴 사야 하는데 쪼들려서…" 고민 중이라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라디오 안에 버마의 길이 있다

 

그러던 중 나는 한국의 단체들이 '피스 라디오' 보내기 캠페인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버마의 현실을 잘 읽어낸 현명한 기획이라 생각한다.

 

버마에서 라디오는 잠재적으로 보면 '칼보다 무서운 펜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재자들의 전문 분야인 분열 정책을 '이 쪽'이라고 왜 이용 못하겠는가. 앞서 수배 청년들이 강조한 대로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도 라디오의 힘에서 올 수 있을 것이다.

 

잔인한 군사 정권이 총칼을 휘둘러온 감옥 나라 버마 안에서도, 그 감옥나라를 목숨 걸고 탈출한 난민들이 바글거리는 국경 밀림에서도, 단속과 잔혹한 범죄에 노출된 채 노동 착취를 감내하고 있는 국경 타운의 버마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라디오는 민주주의로 향하는 길이요, 진리요, 그리고 희망이다.

덧붙이는 글 | 2007년 11월 현재, 블랙시장에서 미화 1달러의 환율은 약 1200~1300쨧 정도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예산감시운동, 정보인권운동, 좋은기업만들기 운동을 중심으로 개인과 공동체가 조화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함께하는 시민행동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