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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두리사구앞 해안에서 뿔논병아리가 기름을 뒤집어 써 움직이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
 신두리사구앞 해안에서 뿔논병아리가 기름을 뒤집어 써 움직이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
ⓒ 복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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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기름을 뒤집어 쓴 뿔논병아리의 절규. 지난 9일 보도된 <오마이뉴스> 동영상 기사를 보면서 참담했다. 뿔논병아리는 목이 마른 듯 연신 끈적한 입을 쩍쩍 벌렸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구원의 손길을 애타게 찾는 듯했다. 동영상 편집 과정에서 그의 울음까지 편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꺼억 꺼억 울고 있었다. 살아남고 싶다는 뜻이다.

'기름폭탄'으로 만신창이 된 태안군

그런데 11일 아침자 신문에는 뿔논병아리의 주검이 실렸다. 기름 폭탄으로 만신창이가 된 태안군. 뿔논병아리는 주검으로 인간 재앙의 메시지를 날린 것이다. 그리고 시시각각 전해지는 대규모 선박 사고 속보. 이를 접하면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내건 경부운하 공약이 떠오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경부운하에서 선박 사고가 날 확률은 비행기가 63빌딩에 부딪칠 확률과 같다."

경부운하를 둘러싼 지난 1년여간의 토론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찬성측 '황당 발언' 중의 하나다. 경부운하 공약의 전도사로 나선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가 한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자신의 전문 분야를 연구해 온 학자의 말이라기보다는 정치인의 입에서 나온 말과 흡사하다. 이 '명언'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경부운하를 반대하는 측은 끊임없이 경부운하 구간에서의 사고 가능성을 경고해왔다. 이명박 후보 등은 선박사고 가능성 자체를 막무가내로 부정하고 있지만, 안병옥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한 토론회에서 독일 주운협회가 발표한 자료를 인용했다.

안 총장이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독일의 주요 내륙수로인 라인, 다뉴브, 마인강에서는 해마다 많게는 수백 건의 사고가 선박사고가 발생했다. 라인강의 독일 영토내 구간의 경우 지난 91년 한해동안 무려 460건의 사고가 발생했고, 지난 99년에는 276건으로 줄었다. '운하의 나라'라고 불리는 독일에서도 선박사고가 여전히 빈발하고 있는 것이다. 99년 다뉴브 강에서는 98건, 마인강에서는 145건의 선박사고가 발생했다.

'운하 선진국'서도 해마다 수백 건씩 선박사고

좀 더 구체적인 예가 필요한가. 1993년 9월 미국 아칸사스강을 운항하던 바지선이 교각과 충돌 후 대륙간횡단열차가 강물로 추락해 47명이 사망했다. 2001년 11월 21일에는 독일 라인강의 크레펠트-웨딩엔 바이엘 하역장 앞에서 네덜란드 국적의 탱커선 쉬톨트 로테르담호의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800톤의 농축질산염이 유출됐다.

지난 3월에는 독일 라인강 퀼른 부그에서 독일 국적 컨테이너선 엑셀시어호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수로 이탈로 전복돼 31개의 컨테이너가 유실되고 인양작업을 하는 바람에 5일동안 선박운행이 차단됐다. 피해액은 약 30억원이라고 한다.

지난 2월 27일에는 미국 일리노이스 주와 켄터키 주 사이를 흐르는 오하이오 강에서 바지선이 갑문 외벽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해 약 8000갤런의 기름이 유출됐다. 불과 며칠 전인 11월 7일에는 한진해운이 그리스 용선사로부터 빌려 사용하고 있는 컨테이너선이 샌프란시스코 베이브리지 교각 밑부분과 충돌하면서 선체가 크게 부서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외신은 "배에서 흘러나온 약 140갤런의 기름은 순식간에 샌프란시스코 선착장 인근의 제1항구까지 퍼져나가 악취를 풍김에 따라 항구 측은 약 250명의 직원들을 낮 12시께 귀가토록 조치했으며 이들 기름을 제거하는데 약 한 달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더 이상의 근거가 필요한가. 이 정도로는 경부운하에서의 선박사고가 기우라는 이명박 후보측의 주장을 뒤엎기 부족한가. '운하 선진국'의 상황도 이러할진대, 63빌딩에 비행기 부딪칠 확률이라고 공개석상에서 자신있게 주장하는 그 잘못된 확신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9일 만리포 해변을 찾아 기름을 제거하는 모습.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9일 만리포 해변을 찾아 기름을 제거하는 모습.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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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오염과 식수원 오염의 차이

더 큰 문제는 경부운하가 건설될 한강과 낙동강은 국민 2/3의 식수원이라는 점이다. 이번 사건의 피해 상황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선박사고로 인해 양식업 등에 종사하는 어민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지만, 우리의 젖줄인 한강과 낙동강에서 선박사고가 난다면 식수대란에 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안 총장은 "경부운하에서의 선박 사고는 상수원 폐쇄를 의미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야될지로 모르는 일이다.

지난 9일 이명박 후보는 충남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사고 현장인 만리포해수욕장을 방문해 방제작업을 했다고 한다. 한 손에 검은 기름이 범벅된 삽을 들고 있는 이 후보의 사진이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이 후보는 그 곳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이 후보가 그 참혹한 현장을 목도한 뒤에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에게 '선박사고 가능성'에 대해 다시 한번 면밀하게 검토해보라고 지시했기를 바랄 뿐이다. 

'제1공약'이었다가 여론에 밀려 지금은 공약집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경부운하. 이쯤되면 이 후보의 얼굴이었던 경부운하 공약은 사실상 무력화된 셈이다. 하지만 유력 대권후보인 이명박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당선된다면 언제 살아날지도 모를 일이다. 경부운하 공약은 모든 국민을 4만불 시대로 인도하는 장밋빛 청사진이 아니라 토건업자, 부동산 업자 등 '토건 세력'의 첨예한 이해가 걸린 사안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둔 뿔논병아리의 사무친 절규. 만약 경부운하에서 선박사고가 난다면 뿔논병아리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나타날 수도 있다는 엄중한 경고를 이명박 후보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공약집 구석에 슬쩍 걸쳐놓은 비겁한 경부운하 공약을 지금 당장 꺼내 태워버려라.


태그:#경부운하, #선박사고,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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