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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에 새로 복원된 자격루, 자동시보장치가 있다.
▲ 복원된 자격루 국립고궁박물관에 새로 복원된 자격루, 자동시보장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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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면 누구나 세종임금을 먼저 이야기할 것이다. 그만큼 세종임금은 훈민정음 창제를 비롯하여 음악, 천문과학, 농업 등 백성을 위한 온갖 일을 했다. 그런데 세종임금의 치적에는 장영실을 빼놓을 수 없고, 그는 대단한 과학기구를 많이 발명했다. 특히 자격루는 가장 뛰어난 발명품이 틀림없을 것이다.

자격루(自擊漏)는 물의 흐름을 이용하여 만든 물시계와 자동 시보장치(時報裝置)를 갖춘 표준시계로서 세종임금의 천문의기(天文儀器)와 시계 창제사업인 간의대사업(簡儀臺事業)의 중요 품목으로, 세종 16년(1434)에 장영실 등이 주관하여 만든 것이다.

동아시아 농업국가에서 천체현상을 관찰하여 백성에게 때를 알려주는 일 곧, ‘관상수시(觀象授時)’는 임금의 가장 중요한 의무와 권리의 하나였다. 따라서 임금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중재자로서, 하늘의 시간을 땅으로 가져와 백성에게 알려주고자 천문을 관측하고, 해시계와 물시계, 역서(曆書)를 만들어 반포하였다. 그러나 해시계는 낮에만 쓸 수 있고 밤에는 사용할 수 없어 물시계가 표준이 되었다.

조선 때에는 한양의 운종가 종루에 큰 종을 걸고 통행금지를 알리고 도성문을 닫는 인경(人定)과 통금을 해제하고 도성문을 여는 파루(罷漏)를 울렸다. 이 제도는 대한제국 말기까지 시행되었는데, 바로 오정(午正)과 인정․파루시각을 정확하게 알리려고 만든 표준시계가 자격루였다. 자격루를 만든 직접적인 목적이 <세종실록> “보루각기”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새로 복원된 자격루의 대파수호, 중파수호, 소파수호가 보인다.
▲ 자격루의 파수호들 새로 복원된 자격루의 대파수호, 중파수호, 소파수호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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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머리 모습으로 만들어진 파수호의 도수관, 물을 받는 데는 연잎 모양이다. 물이 넘쳐 흐르지 않게 별도의 배수관(오버플로어)이 설치되어 있다(오른쪽)
▲ 파수호의 도수관 용머리 모습으로 만들어진 파수호의 도수관, 물을 받는 데는 연잎 모양이다. 물이 넘쳐 흐르지 않게 별도의 배수관(오버플로어)이 설치되어 있다(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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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께서는 시각을 알리는 사람이 잘못 알리게 되면 중벌을 면치 못하는 것을 염려하여 장영실에게 명하여 시각을 알리는 일을 맡길 시보인형을 나무로 만들었으니, 이에 시각에 따라 스스로 알리므로 사람의 힘이 들지 않았다.” 따라서 자격루는 시각을 알리는 군사라 하더라도 억울하게 매를 맞지 않게 하려는 세종임금의 백성사랑이 배어 있는 자명종 시계이다.

그러나 원래의 자격루는 세종 16년(1434)에 제작되었지만 이것은 현재 남아 있지 않으며, 덕수궁에 있는 유물은 중종 31년(1536)에 만들어진 것으로 자동시보장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토대로 복제해 놓은 세종영릉 등의 모든 자격루들은 자동시보장치가 없는 빈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세종 때 만들어진 자동시보장치가 있는 자격루의 복원은 절실한 일이었다. 이에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소재구)은 1997년부터 자격루 복원사업에 들어가 연구용역과 복원 설계 작업을 추진했고, 2004년 12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1년간 본격적으로 복원이 진행되었다. 복원작업에는 문화재위원이며 자격루연구회 이사장인 건국대학교 남문현 교수가 총괄책임자로 참여하였다.

또 복원사업의 설계와 감리에 한영호, 주남철(朱南哲), 정봉룡(鄭奉龍)씨 등 9명이 참여하였고, 제작진에 중요무형문화재 주철장, 유기장, 단청장, 옻칠장과 불교조각가, 도편수 등 12명이 참여하였으며, 자문에 전통문화학교 정재훈 교수, 한국우주과학회 회장 나일성 교수 등 9명, 모두 30여 명의 전문가가 함께했다.

자격루 복원 사업은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종 31년(1536)에 제작된 덕수궁 소재 국보 제229호 자격루의 원형 실측작업, <세종장헌대왕실록(世宗莊獻大王實錄)> 65권 “보루각기” 등 국내외 관련 문헌들에 대한 철저한 사전조사와 고증작업, 3차에 걸친 자격루 복원 세미나 개최 결과 분석 등 관계자들의 피와 땀이 밴 결과이다.

정한 시각이 되면 여기에 대기 중인 쇠구슬이 굴러 시보인형들을 작동시킨다.
▲ 대기 중인 쇠구슬 정한 시각이 되면 여기에 대기 중인 쇠구슬이 굴러 시보인형들을 작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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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엔 시각을 알려주는 12지신 인형이 있고, 구슬이 굴러가는 장치가 보인다.
▲ 자격루 자동시보장치 내부 내부엔 시각을 알려주는 12지신 인형이 있고, 구슬이 굴러가는 장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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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자격루의 주요 딸림장치로는 물을 일정하게 흘려보내는 항아리인 수수호(受水壺), 흘러온 물을 받는 항아리인 파수호(播水壺), 12 지시마다 종을 울리는 장치인 시기(時機), 1경에서 5경까지 북과 징을 울리도록 하는 장치인 경점시보기구 따위로 이루어져 있다.

자격루 복원의 가장 큰 뜻은 물시계 원래 모습을 구현하고 특히 자동시보장치를 원형 그대로 복원 제작했다는 데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국보 제229호 자격루의 물시계 항아리 배열방식은 큰 파수호 1개와 파수호 2개를 같은 평면에 설치하는 2단 방식인데, 이는 일본인 학자들이 경복궁에서 창경궁으로 이전하면서 저지른 잘못으로 이번 복원에서는 파수호의 위치를 대파수호, 중파수호, 소파수호 순으로 1열 3단으로 배치하여 왜곡을 바로잡았다.

살펴본 자격루는 대파수호에서 중파수호 중파수호에서 소파수호로 물을 내려보내는 것을 용의 입을 통해 연잎으로 가도록 했으며, 물이 흘러넘쳐 일정한 흐름을 방해할 것을 방지하는 별도의 흐름장치를 두어 인상에 남았다.

자격루는 원래 24시간 동안 2시간마다 한 번씩 종을 치게 되어 있으며, 북과 징은 해가 지는 시각부터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를 기준으로 약 20여 분 간격으로 울리게 되어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하여 낮에도 종뿐만 아니라 북과 징이 울리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밤시간으로 자격루의 운행시간을 바꾸어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지난 11월 29일 자 13면에 “573년 만에 복원된 신자격루는 ‘타격루’”란 기사를 실어 복원된 자격루가 실패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원래 울려야 하는 시각인 매 2시간 간격보다 빨리 운행되어 8시간 동안에 26분의 차이가 있었고, 구슬이 종종 궤도에서 흐르다가 멈추어 구슬을 인위적으로 흘려보냈으며, 또 작은 구슬이 떨어지면서 홈통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으로 튕겨 나왔다”라고 지적했다.

시각이 되자 12지신 인형이 자시(子時)에서 축시(丑時)로 바뀌고 있다.(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 12지신 인형이 바뀐다 시각이 되자 12지신 인형이 자시(子時)에서 축시(丑時)로 바뀌고 있다.(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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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지시마다 종을 울리는 장치인 시기(時機), 1경에서 5경까지 북과 징을 울리도록 하는 장치인 경점시보기구
▲ 정한 시각을 알려주는 시보기구들 12 지시마다 종을 울리는 장치인 시기(時機), 1경에서 5경까지 북과 징을 울리도록 하는 장치인 경점시보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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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국립고궁박물관과 총괄책임자 남문현 교수는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8시간 동안 26분의 오차가 있었다는 점에 대해 해명합니다. 이것은 처음 8시 40분경에 물시계를 교정할 때 수수호에 물을 주입하는 시점을 잘못 맞추어서 생긴 오류입니다. 물을 붓고서 5분 정도 뒤인 8시 45분경에 9시 종이 울렸는데 담당자가 시점을 잘못 맞추어 오차가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처음 두 시간 뒤에는 15분 정도, 그 후에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매번 26분씩 빨라졌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측정한 것에 의하면 처음 11시엔 14분 50초 빨리 울렸지만 마지막 오후 5시엔 5초만 늦을 정도로 울려 이번에 복원된 자격루가 매우 정교하게 동작한다는 것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또 제작 이후 지속적인 실험과정을 거쳐 운행 상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럼에도, 때마침 제작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보이는 미세한 나무찌꺼기가 우연히 구슬이 구르는 홈통에 떨어져 그 운행을 방해하면서 발생하는 등 일부 미비한 점이 있었으나 이는 모두 보완되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앞으로 의혹을 없애는 것은 물론 관람객들이 직접 확인하고 종, 북, 징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시간표를 붙여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11월 28일 일반들에게 처음 공개하는 날, 우리도 자격루에 큰 관심을 두고 달려갔다. 우리는 3시간 동안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 서준 씨와 총괄책임자 남문현 교수의 설명을 충분히 들었고, 세세히 관찰했었다.

자격루 복원 총괄책임자인 남문현 자격루연구회 이사장(왼쪽)과 자문을 해준 나일성 한국우주과학회 회장
▲ 남문현 교수와 나일성 교수 자격루 복원 총괄책임자인 남문현 자격루연구회 이사장(왼쪽)과 자문을 해준 나일성 한국우주과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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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설명을 해준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관 서준 씨
▲ 국립고궁박물관 서준 자세한 설명을 해준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관 서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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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에 어려움은 있었어도 쉬운 설명은 물론 자격루 내부까지 열어 보여주며 사진을 찍게 하는 서준씨의 열의에 감동했다. 그는 구슬이 어떻게 작동되어 시보인형을 움직이고, 시기를 움직여 종이나 북을 치게 하는지 거듭 설명해주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조선일보> 기사를 본 서준씨는 “저는 큰 돈이 들어간 이 사업을 목을 내놓는다는 심정으로 해왔습니다. 만일 엉터리 복원이라면 그게 감춰질 수가 없을 것임은 물론 그에 따라 누구든 저를 혼냈을 것이고, 그러면 제가 이 자리에 머물 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조금 실수와 오차가 있더라도 우리의 위대한 문화유산 자격루를 복원하기 위한 저희의 뜻을 살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어느 것이든 처음엔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을 지적하여 고칠 수 있게 돕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은 삼가는 것이 좋을 일이다. 그들이 자신이 없었다면 그렇게 모든 것을 내놓고 보여줄 리가 없다. 복원사업이 얼마나 투명하게 정성을 쏟아 했는지를 살펴 그에 문제가 없다면 약간의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업의 뜻을 높이 기려야 할 일이 아닐까?

이제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과학발명품인 자격루가 원래대로 자동시보장치를 단 채 복원되었다. 우리 모두 국립고궁박물관에 가서 570년 전에 이미 자동으로 시각을 알리는 물시계를 개발했던 조상의 슬기로움을 느껴보자. 국립고궁박물관은 12월 31일까지는 전관 개관기념으로 무료로 관람할 수 있게 했다. 자격루뿐만이 아니라 극세밀화로 수염 한 올까지 세세하게 그린 조선시대 초상화와 순종임금이 탔던 어차도 함께 감상하자.

▲ 12지신 인형 12지신 인형이 정한 시각에 돌아가며 자리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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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을 울려라 매경마다 북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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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자격루, #복원, #자동시보장치, #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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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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