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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의 만남을 위해 버스를 타고 약속장소로 향하던 중이었다. 버스가 멈춰서고 백발이 성한 할머니께서 버스에 올라타셨다. 버스 안에 앉아있던 젊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머리 위를 살핀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가 '노약자석'이 아님을 확인하고 안심하며 그냥 앉아 있다.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자리를 양보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침 '노약자석'에 앉아 있었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께 자리를 양보했다. 하지만 만약 내 자리가 '노약자석'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한순간 고민했을 것이다.

 

다시 출발하는 버스 안에서 버스손잡이를 잡고 있던 나의 머릿속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노약자석이라는 것이 없었더라면?' 버스나 지하철에 노약자나 임산부, 장애인 등 신체적 약자가 탑승할 경우 자리를 내어주는 것은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 대중교통을 타면 노약자석이 아닌 경우 약자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에 매우 인색함을 알 수 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국가에 의한 사회 복지가 높아질수록 개인에 의한 사회봉사와 길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의 수입은 줄어든다는 한 사회학자의 연구가 문득 떠오른다. 자신이 낸 세금으로 '최저생계 유지비 지급'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마련하여 국가에서 복지를 보장해주고 있는데 굳이 그 사람들에게 동정을 베풀 이유가 없다는 사람들의 심리가 생성되어 책임을 국가에 전가하는 것이다.


나 또한 어렸을 때 적선이 자랑스러웠지만 지금은 적선을 하는 것은 자립심을 키우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며 사회봉사에 대한 책임을 국가에 전가한다. 노약자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노약자들을 위해 노약자석이라는 사회적 제도가 따로 마련되어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굳이 자신이 자리를 내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전철에 노약자가 탔을 때 자리를 비켜주기보다는 노약자석이 비어있는가를 먼저 확인한다. 그리고 노약자석이 비어있지 않더라도 자신이 앉아있는 곳은 노약자석이 아니므로 자리를 내어주지 않아도 정당하다고 자기합리화 한다.

 

노약자석이라는 것이 없었던 시절, 아마도 사람들은 노약자 탑승 시 서로 눈치를 보지 않고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인 생각만으로 노약자에 대한 배려의식이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져 '노약자석'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따로 마련해야만 하는 이 부끄러운 시대에, 대중교통의 노약자석을 없애버리면 그나마 비켜주던 사람들마저 완전히 없어져 버릴까봐 두려워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노인인구는 해를 거듭할 수록 늘어나고 있고 얼마 있지 않아 초고령사회로 들어선다고 한다. 그때에는 노약자전용 교통수단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이제는 경제뿐만이 아니라 국민의식도 선진화되어야 할 시기다. 우리 역시 언제 불의의 사고를 당해 장애를 가질지 모를 일이고 결국에는 누구나 노인이 된다.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 '노약자석'이라는 사회적제도가 없더라도 자발적으로 노약자를 배려해주는 선진시민이 되었으면 한다.


노약자도 결국은 다 우리의 이웃이며 친구다. 내 이웃과 친구를 위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하자. 비록 내 한 몸 챙기기에도 힘든 하루일 수도 있지만 당장 출·퇴근길에 실천해보자. 여러분의 하루가 바뀔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계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노약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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