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학교 기숙사에서 3개월째 함께 생활하고 있는 중국인 룸메이트 영애(한국이름) 언니가 얼마 전 비행기표를 들고 왔다. 방학 시작과 함께 중국으로 돌아간단다. 함께 지낸 시간에 비해 많은 추억을 나누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항상 의례적으로만 다음에 여기 가보자, 저기 가보자 이야기했지 제대로 점심 한 끼 대접하지도 못해 미안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많이 지쳐 있는 언니가 이대로 중국으로 돌아가 버린 뒤 닥칠 상실감에 괜히 미안해졌다.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다. 친구에게 언뜻 들었던 '전주 한옥마을'이 생각났다. 평소 한국 전통문화와 음식에 관심이 많은 언니에게 제격이다 싶어 말을 건넸다. 

언니, 우리 비빔밥 먹으러 갈래요?

 
▲ 태조로 입구 
ⓒ 홍미혜

관련사진보기


막상 일일 가이드를 자처했지만, 2년 전 '전주국제영화제' 말고는 발길이 없었던 나 역시 전주에서는 ‘이방인’임이 분명했다. 나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옥마을의 중심지 ‘태조로’의 거북이가 여행의 시작을 알린다. 타임머신을 타고 간 듯, 시간이 멈춰있는 전주 한옥마을은 입구부터 ‘문화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낯설지 않다.

처음 찾은 곳은 전주 한옥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오목대’(지방 기념물 제16호). 태조 이성계가 남원 황산에서 왜적을 무찌르고 돌아가던 중 종친들을 모아 선조 목조가 살았던 이곳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한다.

고종황제의 친필 비석이 봉안된 이곳은 가을 끝 무렵임에도 아직 붉은빛을 발하고 있는 단풍나무 한 그루가 한껏 어우러져 있었다. 이성계가 머물렀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오목대’에서는 바라보는 한옥마을 전경 속 곧게 뻗은 처마의 모습이 옛 선조들의 고고함을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

늦가을 단풍나무와 어울어진 모습이 아름다운 오목대(왼쪽)와 오목대에서 바라본 한옥마을 전경.
 늦가을 단풍나무와 어울어진 모습이 아름다운 오목대(왼쪽)와 오목대에서 바라본 한옥마을 전경.
ⓒ 홍미혜

관련사진보기


‘오목대’를 벗어나 조금 떨어진 곳에 ‘전주 전통문화센터’가 있다. 제기·굴렁쇠·투호 등 요즘은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봐봐, 이렇게 하는 거야.”

동생에게 어설픈 굴렁쇠 시범을 보이고 있는 언니의 모습이 정겹다. 그곳에서 파란 눈 소녀를 향해 “Where are you from?(어디에서 왔어요?)”이라고 자신 있게 물어봤다. “미국에서 왔어요.” 제법 자연스런 한국말 구사에 크게 당황했다.

나의 놀란 기색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작년 7월에 왔다는 이 이방인과 영애 언니는 난생 처음 널뛰기를 했다. 두 사람은 한참을 뛰더니 보는 것만큼 쉽지 않다며 머리를 긁적인다.

다정히 굴렁쇠 놀이를 하는 자매(왼쪽) 처음 해보는 널뛰기에 즐거워하는 외국인의 모습.
▲ 전통문화센터 다정히 굴렁쇠 놀이를 하는 자매(왼쪽) 처음 해보는 널뛰기에 즐거워하는 외국인의 모습.
ⓒ 홍미혜

관련사진보기


한옥마을의 중심인 ‘태조로’로 향해 가는 길에 보물 제308호로 지정된 ‘풍남문’이 보였다. 전주부성 사대문 가운데 하나로 유일하게 철거되지 않은 문화재이다. 지금까지 전주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풍남문. 서울에서 남대문과 동대문을 본 적 있다는 언니는 풍남문을 보더니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나 저런 거 서울에서 본 적 있어.”

 수백년동안 전주의 방패가 되어주고 있다.
▲ 풍남문 수백년동안 전주의 방패가 되어주고 있다.
ⓒ 홍미혜

관련사진보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두어 시간을 쉬지 않고 돌아다닌 탓에 허기졌다. 길거리 호떡 아저씨께 추천받은 식당으로 향했다. 영애 언니가 그토록 노래를 불러오던 ‘전주비빔밥’을 맛볼 시간.

사실 나도 전주비빔밥 그 명성만 익히 들었을 뿐, 먹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반찬들과 비빔밥.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깔끔하기로 소문난 전라도 입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맛있다, 맛있어!”

두 이방인은 감탄을 연발하며, 한 그릇씩 깨끗하게 비웠다. 배를 든든히 하고 식당에서 멀지 않은 ‘경기전’(사적 제339호)을 찾았다. 조선건국 후, 왕기를 공고히 하고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태종 14년(1414년)에 건립됐다.

태조부터 고종황제까지 조선 역대 왕들의 어진을 모셔 놓은 본전에 다다르자, 경건해졌다. 왕들의 어진과 함께 곁들여진 설명을 읽던 언니의 모습 또한 꽤나 진지했다.

경기전 본전으로 향하는 길(왼쪽)과 태조 어전의 모습.
 경기전 본전으로 향하는 길(왼쪽)과 태조 어전의 모습.
ⓒ 홍미혜

관련사진보기


본전을 벗어나면 곳곳마다 어느 명산의 단풍놀이도 부럽지 않다. 수려한 주변경관으로 인해 사극 촬영지로도 활용되고 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가을놀이터’다. 손에 낙엽을 한 움큼 쥐고 낙엽싸움을 하는 어린이들, 마지막 단풍놀이를 즐기기 위한 가족과 연인들로 붐볐다.

뿐만 아니라, 갑작스럽게 나타난 10여 미터의 울창한 대나무 숲은 단체사진 단골 촬영지. 언니도 나도 눈을 뗄 수 없는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낙엽놀이하는 아이들의 모습(왼쪽)과 단체사진 단골 촬영지인 대나무숲.
 낙엽놀이하는 아이들의 모습(왼쪽)과 단체사진 단골 촬영지인 대나무숲.
ⓒ 홍미혜

관련사진보기


아이러니하게도 경기전 바로 맞은편에는 영화 <편지>의 촬영장소로도 유명한 ‘전동성당’이 있다. 사적 제288호로 호남지방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됐다. 내가 찾았을 때는 보수공사 중이라 그 외관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그 내관만으로도 역사의 흔적을 찾기에 충분했다. 한옥마을 내에 있는 서양식 건물이라, 이 어울리지 않을 듯 어울리는 부조화 속의 조화를 느끼는 이가 나뿐만은 아니리라.

보수공사 중인 전동성당의 모습(왼쪽)과 전동성당의 내부모습.
 보수공사 중인 전동성당의 모습(왼쪽)과 전동성당의 내부모습.
ⓒ 홍미혜

관련사진보기


마지막으로 ‘전통한옥생활 체험관’ 일대를 구경했다. 직접 아궁이에 불을 때고, 따뜻한 온돌방에서 담소를 나누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얼마 전 오락 프로그램에 소개돼 인기가 더욱 많아졌단다. 한옥마을 내에는 조선왕조 26대 고종황제의 황손 이석씨가 실제 머물고 있는 ‘승광재’가 있다. 황손과 아침식사를 함께 할 수 있다는 이곳에서, 당일치기 여행이 그저 아쉽기만 했다.

가이드에 의하면, 총 면적 7만 6320평 900여 채의 전통 한옥으로 구성된 이곳의 대부분은 1920~30년대에 만들어졌단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성곽을 헐고 도로를 뚫은 뒤 일본 상인들이 성 안으로 들어오자 이에 대한 반발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니, 당당하고 고귀한 기품이 흐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또 기차를 타고 이곳을 지나던 이승만 대통령이 한옥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하여 개발제한 구역으로 지정했다는 재밌는 일화도 있다.

이곳에서 실제 한옥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 전통 한옥생활 체험관 이곳에서 실제 한옥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 홍미혜

관련사진보기


이 밖에도 전주향교, 최명희 문학관, 전통 술 박물관 등 볼거리 많은 이곳에서의 하루 일정은 바빴다.

“오늘 너무 재밌었어. 다음에 한국 오면 또 와야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언니가 말했다. 여운이 가시질 않았던지, 나도 언니도 했던 얘기를 반복하기 일쑤다. 특히 언니는 한옥의 섬세함과 닥종이 인형과 같은 민속공예품 예찬이 끊이질 않았다.

나는 여행 초기의 걱정이 기우였음에 안심했고, 언니에게 추억을 만들어 줬단 생각에 기뻤다. 무엇보다도 나 역시 이방인이었던 이번 여행에서 발견한 뜻밖의 즐거움에 마음이 부풀었다.

 
▲ 그 날 전주 저녁 하늘에는 보름달이 환하게 떴다. 
ⓒ 홍미혜

관련사진보기


어느새 한옥마을 거리등에 불이 들어왔다. 어스름한 저녁 빛에 저 멀리 보름달도 환히 떴다. 시간이 멈춰있는 곳에서의 즐거운 동행,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도 거기 전주에 멈춰져 있겠지? 두 이방인의 낯선 도시 전주에 여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덧붙이는 글 |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응모글



태그:#전주한옥마을, #경기전, #풍남문, #전동성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