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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 소설 '추사'의 표지 한승원 소설 '추사'는 예술과 정치의 깊은 맛이 살아있다

한승원의 장편소설 <추사>를 읽었다. 감수성이 예민해선지 부분 부분에서 눈물이 났다. 다행히 그런 부분은 다들 퇴근한 사무실에서 읽었기에 무방했다.

 

2권을 읽고 나니, 마음이 허했다. 요즘 너무 자주 듣는 작금의 정치판과 인물이 생각났기 때문인 것 같다. 아울러 도(道)에 들어서 ‘불이선란’(不二禪蘭)을 치고, ‘판전’(板展)을 쓰던 추사처럼, 이미 소설의 경지에 다다른 것 같은 작가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됐다.

 

추사의 두 작품은 제주도와 북청 유배를 마치고 돌아와 모든 껍데기를 벗고, 불교에 귀의할 무렵에 나온 것으로 이미 지극한 경지에 이른 것들이다.

 

사실 너무나 고귀한 소설을 읽고, 정치가들이 추사를 닮기를 바란다는 글을 쓰는 것은 많이 속된다는 느낌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대선 후보들에게 꼭 이 글을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사실 지금 이 나라 정치는 김조순, 김좌근으로 이어지는 안동김씨 세도가와 풍양조씨가 지배하던 조선 후기 세도정치시대와 별로 다르지 않다. 서구에서는 산업혁명 이후 엄청난 생산력을 바탕으로 산업제국주의를 지향하고, 일본도 메이지 유신을 통해 자국의 힘을 만들어갈 때, 어렵게 형성된 정약용, 박제가, 김정희 등 북학파들은 숙청 당했다. 결국 끝없는 정쟁으로 우리는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전장이 되고, 결국 일제의 식민지로 변하는 치욕을 겪는다.  

 

작금은 어떤가. 정치를 지배하는 것은 집권이라는 정당의 맹목적인 목표만 있을 뿐 국가를 어떻게 경영할지에 대한 아무런 비전이 제시되고 있지 않다. 작금은 조선 후기에 버금가는 복잡한 정치적 격변기다. 갈수록 힘이 커가는 중국, 불리하다 싶으면 무슨 일이라도 벌일 수 있는 초강대국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 러시아 등이 주도하는 세계 주도권 싸움에 우리는 끼어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삼성 같은 대기업이 한 내부 고발자에 의해 실체를 드러내고 있지만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리고 있지 못하다.

 

소설 <추사>에서 김정희는 진정한 지성으로 나온다. 먼저 철저한 독서를 통해 지식의 체계를 쌓고,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서예를 한다. 다섯 수레의 책을 읽고, 수많은 붓이 닳아진 후에 비로소 그는 중국까지 알려지는 서예가가 된다. 물론 이 지식에 대한 갈구는 결국 청나라 수도인 연경(燕京 지금의 베이징)을 방문할 기회를 만들고, 그는 옹방강 등 당대 중국 최고의 서예가들이나 지식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또 북학파들이 접한 다양한 지식을 받아 들인 후 우리 지식을 근거로 올곧은 지식체계를 형성한다. 이를 바탕으로 백파스님이나 초의 등 선승들과 돈오, 점수의 선후나 경중을 논하고 그 나름대로의 답안을 찾아간다.

 

물론 추사는 세도가인 안동김씨 세력에 적수가 될 수 없다. 때문에 계란에 바위치기 같은 불안한 시간이다. 결국 정치적 격랑에 맞아 제주도로 유배되어 9년을 보내고, 해제된 후 다시 북청 유배를 겪는 등 수난을 겪는다.

 

얼핏 보면 그의 정치적 개혁은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정치의 성공과 실패를 집권과 실권으로 나눌 수는 없다. 집권했다고 이승만이 성공한 정치가가 아니고, 실패했다고 김구가 실패한 정치가가 아닌 것과 같다.

 

물론 개인의 예술적 가치에서 그는 자신의 경지에 도달한 성공자로 그려진다. 글씨의 문외한이라 그의 작가적 완성도를 가늠할 수 없지만 한승원을 통해 간접적으로 만난 김정희의 예술가적 성취는 우리가 가장 선망하는 경지로 느껴진다.

 

모름지기 지식이나 교분은 경계가 없어야 한다. 사실 수많은 관계로 형성되어 있는 인간관계에는 수많은 경계가 존재한다. 사실 추사도 상무, 상우에 다양한 심사에서 일반적인 고통이나 고뇌를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중국에서 사람을 사귈 때나 이광사 등 다양한 사상 논쟁에서 그런 경계를 초탈하는 지식을 보여준다.

 

사실 일반 사람이 추사와 경계에는 이루기에 쉽지 않다. 하지만 모름지기 수많은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라면 그런 경계를 넘어서는 이들이어야 한다. 특히 대통령을 꿈꾸는 수준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지금 정치가들은 그 경계가 일반 사람들보다 더 강한 것 같다. 종교에 대한 관점이 그렇고, 계층을 보는 시선이 그렇다. 거기에 자기 당이나 같은 이념을 믿는 같은 정당 내부를 보는 시선 조차 벽들고 꽉 차 있다. 한승원을 통해 만나는 추사 역시 불교 깨달음의 방식인 돈오와 점수를 만날 때, 이광사나 이삼만의 글씨를 평할 때, 조희룡의 난을 볼 때 상대에 대한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공격은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발전하기 위한 상승 효과가 있는 진정한 논쟁이다. 하지만 지금 정치권의 논쟁이나 공격이 상대의 발전과 상승을 만들어내기 위한 바람직한 방향의 논쟁이라고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정치의 기본 속성과 예술의 기본 속성이 같을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쉬운 것은 지금의 정치계는 오롯하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온 인물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인물에 소설적 픽션을 가미해 만든 팩션은 이제 우리 작가들의 유행처럼 되어 버렸다. 그 가운데 대통령이 되고 싶은 이가 꼭 읽어야만 할 두 편이 있다. 바로 김훈의 <남한산성>과 한승원의 <추사>다. 전자는 국난 앞에서 무너지는 백성들과 선택을 해야하는 수뇌부의 고통이 담긴 글이고, 후자는 바른 정치의 도가 무엇인지를 말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내가 대선 토론회에 패널이라면 혹시 <남한산성>이나<추사>를 읽은 소회가 무엇인지를 묻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chogaci)에도 올립니다


추사 1

한승원 지음, 열림원(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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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시도를 개발하는 서남해안기업도시개발 투자유치 담당 상무로 일함. '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4권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