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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탁! 탁탁탁~” 드러머의 스틱소리가 반주의 시작을 알린다.

 

“딩딩~ 디리링~”, “띵~띵~ 띠리링~”, “쿵쿵 쾅~! 지이잉~! 지이잉~!” 베이스와 전자 오르간의 연주가 시작되고, 드러머의 화려한 손놀림이 이어진다. 여느 그룹사운드와 다르지 않은 반주. 하지만 악기를 손에 쥔 이들의 모습이 조금 독특하다.

 

울긋불긋 염색머리 대신 희끗한 흰 머리가 보이고, 찢어진 청바지 대신 점잖은 양복을 입고 있다. 샤우팅 창법의 고음 대신 넉넉하고 구수한 음이 흘러나오고, 무엇보다 세월의 깊이만큼 자리 잡은 주름살이 눈에 띈다. 여느 그룹사운드와 달리 10여명의 보컬이 돌아가면서 노래 부르는 모습도 조금은 색다르다. 평균 연령 60세가 넘는 어르신들로 구성된 ‘금암실버밴드'의 연주현장이다.

 

“우리는 음악을 해서 늙지 않어~”라고 힘차게 말하는 어르신들은 음악이란 열정으로 제2의 인생을 즐겁게 수놓고 있었다.  

 

‘금암실버밴드’는 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있는 밴드이다. 2002년 당시 전북 전주시 금암노인복지회관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무료교육 프로그램의 하나로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요즘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복지회관에 모여 함께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악기를 배우고 싶어 하는 어르신들과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어르신들로 구성된 순수 아마추어 밴드이지만, 염규철(69) 단장 할아버지의 지도아래 하루하루 실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자~ 이번엔 ‘홍도야 울지마라' 한번 해봅시다~”

 

염규철 할아버지가 곡을 선택하자 곧바로 연주가 시작됐다. 구슬픈 가락이 이어졌고, 마이크를 손에 쥔 할머니, 할아버지는 음정과 박자에 맞춰 멋지게 노래를 뽑아냈다.

 

“홍~도야~ 우~지마아~라~♬ 오오빠~아~가~ 이이이있다아~♪”

 

빠른 템포, 느린 템포, 연주는 다양하게 이어졌다. 어르신들은 음악에 맞춰 합창을 했고, 서로가 서로를 추천하며 한 분 한 분 무대에 올라 독창을 하기도 했다. 대여섯 곳의 노래를 마치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할아버지들은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셨고, 할머니들은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우셨다. 어르신들에게 밴드 활동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며, 웃음을 함께하는 ‘삶' 그 자체인 모양이다.

 

염규철 할아버지는 다 같이 모여 노래 부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란다.

 

“뭐든지 같이 하면 혼자 하는 것보다 재밌잖아. 음악도 마찬가지야. 여기 오시는 분들 다들 화요일과 금요일을 기다리면서 일주일을 보내고 있어. 이날만 오기 기다리는 거지. 오늘은 위암수술을 받은 한 할아버지가 오랜만에 나왔는데, 너무 반갑다며 한 할머니가 쌍화차를 돌리기도 했어.”

 

염규철 할아버지는 밴드 내에서 악기를 가르치는 중책을 맡고 있다.

 

“나야 뭐, 젊었을 때부터 계속 음악을 했지. 미8군에서 기타 친 것을 시작으로 1968년에는 현대음악학원도 개설했고, 방송국에서 악단장을 맡기도 했으니까. 음악을 하면 늙지 않어. 악기를 연주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다 풀리니까. 한 3~4년 전부터 인연이 돼, 여기서 악기를 배우고 싶어 하는 분들을 가르치며 함께 연주를 하고 있지.”

 

요즘도 하루에 한두 시간씩은 꼭 악기를 잡는다는 염규철 할아버지는 음악을 하면 사람이 선해진다고 한다. 많이 웃어 마음이 밝아지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는 모든 어르신들의 인상이 좋았던 모양이다.

 

칠십이 넘는 분들이 많아서일까. 드럼을 연주하는 김천종(58)씨는 자신을 ‘미성년자'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이분 역시 과거(?)가 심상찮다.

 

“난 17살 때부터 스틱을 잡았어. 그때 당시 지역에 록그룹이 있었지. 이름하여 <삭발's>라고. 까까머리 고등학생들로 구성됐다는 뜻이야. 하하~”

 

드럼 치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했더니, 드럼 연주만 벌써 40년째란다.

 

“계속 드럼만 친 것은 아니야. 그래도 꾸준히 해왔지. 방송국에서 악단도 했었고,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나이를 먹으면 사람이 갈 곳이 없어져. 근데 여기 오시는 분들은 같이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나누고 좋잖아. 나 역시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연주할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몰라.”

 

김천종씨 역시 음악을 하면 늙지 않는단 얘기를 빼놓지 않는다.

 

“여기 계신 분들 한번 봐봐~. 70, 80이 넘은 어르신들이 많은데, 나이에 비해 다들 젊어 보이잖아. 그렇지?”

 

악기 파트 가운데 유일한 여성 멤버인 서정숙(59)씨. 전자오르간을 담당하는 정숙씨는 집안 식구들의 지지를 받으며 악기를 배우고 있다.

 

“딸이 드럼을 치고 아들이 기타를 쳤어. 처음 전자 오르간을 배울 때는 아들한테 배웠어. 사실 이 나이엔 마땅한 취미생활을 찾기가 어렵거든. 그런데 여기서 많은 어르신들과 어울리며 함께 연주하다 보니 너무 재미있는 거야. 가족들도 이런 즐거운 취미활동에 대해서 좋아하고 있어.”

 

이곳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금암실버밴드'는 연습한 것을 바탕으로 초청공연과 위문공연을 다니고 있다. 지역방송국에도 초청돼 마음껏 갈고 닦은 솜씨를 뽐내기도 했으며, 멤버들 간의 합의하에 노래 봉사도 다니신단다.

 

10여명의 보컬 중에서 가장 연장자인 이종열(81) 할아버지는 “부르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가서 공연을 한다”고 한다.

 

“우리가 재미있게 연습한 것을 남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지. 우리가 노래하는 것을 보고 즐거움을 얻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갈거야. 난 악기를 다뤄본 적이 없어서 노래만 부르지만 그래도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

 

여성 보컬인 강복남 할머니(76) 역시 같은 생각이다. “생음악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면 엔돌핀이 분비되고 젊어지는 것 같아. 우리는 모두 노래봉사를 다니기로 약속하고 그렇게 하고 있어. ‘늘 푸른집'과 삼천동 요양원을 찾아가 힘든 분들을 위해 공연을 하곤 하지.”

 

휴식 시간이 끝나자 어르신들은 다시 무대에 올랐다. “탁!탁! 탁탁탁~” 드러머의 스틱 소리가 반주의 시작을 알리고, 다시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맡은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나머지~ 인생~ 잘 해봐야지~♬”

 

“나에겐 당신이 최고야~♪~♩”

 

어르신들의 노랫소리를 뒤로하고 연습현장을 빠져나왔다. 그러고 보니 ‘금암실버밴드'가 연습하는 강당의 이름이 ‘열정실'이었다. 스스로 주인공이 돼 제2의 인생을 열정적으로 만들어가는 어르신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에서 노래가사가 새어나왔다.

 

“오~ 즐거운 인생~♪ 오~ 행복한 마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선샤인 뉴스(sun4in.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연주, #락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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