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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비리’가 터질 때마다 나는 2년 반의 군생활을 교도소 초소경비로 보냈다는 어느 선배의 경험담을 떠올리곤 한다. 그는 지방 어느 광역시에 있는 초대형 교도소에 근무했다 하는데 군생활 2년 반은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인지라 죄수들의 야화, 특히 조폭들의 야화에 대해서는 숱하게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한다.

 

물론 조폭들의 이야기라는 것이 상당 부분 과장된 것일 것이므로 걸러서 들어야겠지만 그의 이야기 중에서 나에게 가장 유의미하게 들렸던 대목은 조폭들이 자신들의 천적들을 포섭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조폭들의 천적이란 ‘경찰, 검찰, 법원’을 말하는 것이고 간접적으로는 이권이 관련된 분야를 감독하는 공무원들일 터이다. 조폭들은 자신들의 천적과의 관계가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에 천적과의 관계에 관한 한 매우 풍부한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최근 일부가 소개된 이건희 회장의 뇌물공여 지침서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우선 자신들의 천적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데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하자면, 경찰, 검찰, 법원, 지자체 공무원들도 대부분 다 초년병 시절에는 나름대로 정의감에 불타 있기  때문에 조폭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아주 부담없이, 그리고 아주 간접적으로 제3자를 통해 마수를 뻗친다고 한다.

 

그리고 또 이들은 거의 모든 인간이 가지는 약점을 충분히 활용하여 처음에는 죄를 크게 뉘우치는 회개한 양처럼 순하고 착하게 굴면서 천적들의 경계심을 풀고 환심을 산다고 한다. 그런 다음에는 1만원 미만의 약소한 선물로 작업을 시작하고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선물의 강도를 높여 가는데, 만약 천적들 중 심지 굳은 친구가 있어 부담감을 조금이라도 내비치면 바로 “형님, 선물이 약소해서 그러십니까?” 혹은 “하찮은 놈의 선물이라서 그러십니까?”라며  천적들의 인간적인 약점을 파고 든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대부분의 천적들은 ‘속 좁은 사람’, ‘사람차별하는 이중적인 사람’으로 비추어질까 염려되어 이들에게 단호한 태도를 보이지 못한다고 한다. 특히 그 자리에 술시중을 드는 여성들이 끼어 있다면 천적은 더욱더 단호함을 보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고 선물과 향응의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면 나중에 천적들은 헤어나오기 어려운 구렁텅이에 빠져 있게 되는데 조폭들은 이런 상태를 두고 “코를 꿰었다”라고 부른다고 한다.

 

물론 이런 과정은 조폭영화에서도 부분적으로 비추어지지만 조폭영화들은 예술인 특유의 냉소주의 때문에 조폭의 천적들 자체를 애초부터 부도덕한 인간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아서 세밀한 심리묘사에 성공한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어쨌거나 내가 삼성의 뇌물공세에 대해 크게 분노하는 것은 이들의 뇌물공여 행태가 기본적으로 조폭들과 유사하면서도 이들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훨씬 더 강력할 뿐만 아니라 훨씬 더 광범하고 그러면서도 경제성장의 주역이라는 호화로운 외피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더욱 더 개탄스러운 것은 삼성이 관료들의 퇴직후 거액의 일자리 보장이라는 미끼를 통하여 관료들의 균형감각과 양심의 발동을 무력화시키고 초년병 시절에 정의감 강하고 유능했던 관료들의 영혼을 암세포로 채우고 있다는 점이다.

 

오직 한 가지 이건희 일가의 사익(私益)을 위해서 대한민국의 수많은 관료들이 저렇게 너저분하고 비참하게 영혼을 팔고 사익집단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국가 공권력이 일개 재벌의 사익에 의해 속절없이 좌지우지되어야 하는 것인지, 도대체 이런 나라가 정상적인 나라인지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는 지난 15일 민정수석실을 통해 ‘삼성특검법’이 재검토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이 “이번 사안에 아무런 정치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으며 다만 원칙과 절차와  사리에 맞지 않아 문제를 제기한다”고 강변한 바 있다.

 

그런데 이들이 “원칙과 절차와  사리에 맞지 않다”고 강변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구차하기 이를 데 없다.

 

(1) 수사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서 소기의 성과를 내기 어렵다? 보충성과 특정성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

 

수사범위가 너무 넓으면 소기의 성과를 내기 어려우니 너무 넓으면 안된다는 것이 청와대의 주장이다. 그런데 수사범위가 지나치게 넓은지 좁은지는 청와대 자기들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청와대가 그런 것에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이해관계자들이 법적으로 따지면 될 일이다.

 

(2) 정치적인 남용의 소지?

 

청와대는 이렇게 주장한다.

 

“우선 수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특정 정치세력이 정략적 목적으로 의혹을 부풀리고, 언론이 이를 증폭시키면서 그때마다 우리 사회가 불필요한 논란에 휩싸였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무런 성과도 없는 특검을 위해 막대한 예산이 사용된 것도 국력낭비에 해당할 것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메아리다. 특검의 정략적인 이용을 경계한다? 그래서 특검이 우려스럽다? 청와대가 얼마나 삼성의 광범한 뇌물공여사태를 안이하게 바라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그렇게 말로는 정략적인 이용을 경계하면서도 자신들이 삼성 특검에 딴지 거는 정략적인 이유를 빼놓지 않고 서술했다는 점이다. 이들의 진짜 목적은 다음 구절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자금 및 당선축하금 의혹’ 등을 수사대상에 포함한 별도의 특검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는 명백한 허위사실을 특검의 수사대상에 포함시키려는 정략적 행태입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특검이 얼마나 정략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삼성비자금 특검에 관한 한 성역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과 사리에 맞다고 본다. 왜냐하면 삼성이 우리나라의 선량하고 유능한 관료들과 언론인들을 오염시키는 폐해가 노대통령 당선축하금 논란이 가져오는 약간의 분란보다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다.

 

삼성은 단순히 이건희 일가의 사익을 위해 대한민국 정치권력, 관료권력, 언론권력, 문화권력에 관여하는 수많은 인재들을 금력으로 포섭하며 이들의 영혼을 오염시키고 있다. 이런 비참한 상황 앞에 우리가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노 대통령 당선축하금 논란을 피해 보자고 온갖 수사를 다 동원하며 엉뚱하고 구차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의 지금 태도는 지극히 “정략적”이다. 

      

청와대 행태가 독선적이라는 비판은 보수진영은 물론 진보진영에서도 자주 터져나오곤 하는데 그런 비판에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청와대가 자신들의 어줍잖은 원칙을 세우고 이것을 진리라고 강변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책이든 결정이든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가진다. 예를 들어 부동산정책을 예를 들어보자. 부동산 가격안정은 무주택 서민들과 건설업을 제외한 내수산업 종사자들에게는 이익이지만 주택 소유자들과 건설사들과 금융사들에게는 별로 반가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가. 외환위기와 같이 자산시장의 낙폭이 유난히 클 때는 자산시장 규제를 완화해야 하고 2002년 이후처럼 거품 상승이 현실화될 때는 자산시장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삼성비리 특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삼성비리가 가져오는 폐해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즉 삼성이 이건희 일가의 사익을 위해 대한민국 정치권력, 관료권력, 언론권력, 문화권력에 관여하는 수많은 인재들을 금력으로 포섭하며 이들의 영혼을 오염시키는 정도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시급하게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공수처 타령하면서 딴지를 거는데 그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우선은 삼성에의 오염도가 큰 세력들을 친일파 제거하듯 각 부문 권력의 핵심부에서 솎아 내고, 오염도가 적고 유능하고 정의감 있는 신진인물들이 반부패 개혁을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청와대의 민정수석실처럼 비본질적인 부분으로 본질적인 부분을 무력화시키려 하는 세력들, 즉 개혁에 딴지 거는데 능통한 세력들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이다.

 

청와대는 참여정부 평가에 대해서 유난히 민감한 것 같은데 나는 그런 태도가 대단히 옹졸하다고 본다. 참여정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차후의 역사가들이 제대로 할 것이다. 청와대에 그렇게 시간이 남아 돌아간다면 그런 작업할 시간에 진보개혁세력들에게 힘이 되는 개혁이나 지속적으로 추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대자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삼성 특검법, #청와대, #조폭과 삼성행태, #뇌물공여지침서, #이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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