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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비자금 의혹을 향한 검찰의 칼날은 일견 날카로워 보인다.

 

지난 20일 검찰 특별수사 · 감찰본부장으로 임명된 박한철 본부장은 "검사의 자존심과 명예가 달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특검이 필요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철저히 밝히겠다"며 "일체의 성역이나 예외 없이 수사한다"고 밝혔다. 그런데다 수사본부 규모도 검사와 수사관을 합해 30명에서 40명 정도로 중수부에 버금가는 규모다. 수사팀 인선도 특별본부 차장으로 낙점된 김수남 차장검사의 주도 하에 진행 중이다.

 

그러나 그 칼날이 제대로 휘둘러질지는 미지수다. 21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을 방문한 김수남 차장검사는 "수사팀 인선이 힘들지 않겠냐"는 질문에 "대부분 안 하고 싶어하지 않겠냐"며 "나조차도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 역시 전날 대검을 방문했을 때 "다들 사건을 맡기 꺼려하지 않냐"는 질문에 "저도 같은 심정이지만 누군가는 맡아서 해야 한다"고 답한 바 있다. 이같은 특별본부의 1인자와 2인자의 고뇌는 검찰이 이번 사건 수사에 대해 얼마나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들 안 하고 싶지 않겠나"... 삼성 수사가 부담스러운 검찰

 

검찰이 부담감을 느끼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박 본부장이 밝힌대로 이 사건에는 '검사의 자존심과 명예'가 걸려있다는 점이다. 검찰은 처음부터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전방위 로비 행위'를 폭로할 때 "삼성의 뇌물을 받은 검사도 있다"는 말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김경수 대검 홍보기획관은 지난 1일 "검사들이 떡값과 휴가비 조로 돈을 받았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며 불쾌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또 "개인간 차명거래 이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추가로 발표하거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고발한다면 수사할 수 있다"며 수사하기 힘들다는 뜻을 밝혔다.

 

5일 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검찰의 이같은 태도를 비판하며 대검에 이건희 회장과 삼성 임원진을 업무상 횡령, 뇌물공여 등 혐의로 고발한 뒤에도 검찰의 소극적인 태도는 여전했다. 검찰은 "뇌물 수수 명단을 공개하지 않으면 사건배당이 어렵다"며 명단공개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몇 차례의 기자회견 내내 "본질은 삼성의 불법 행위이지 뇌물 수수 검사의 명단이 아니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참여연대와 민변 등 시민단체들은 "고발하면 수사한다더니 이제는 명단부터 공개하라며 말을 바꿨다"며 "검찰이 삼성의 눈치를 보는 것이냐"고 압박하고 나섰다.

 

결국 '뇌물 수수 검사'로 임채진 차기 검찰총장 내정자와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 등 검찰의 지휘부가 지목되자 검찰의 입장은 더욱 곤란해졌다. 임 내정자와 이 중수부장은 의혹을 전면으로 부인하고 나섰지만 이미 검찰과 시민단체 간의 공방으로 검찰의 신뢰도가 추락했다. 정치권도 특별검사 도입을 주장하고 나서 검찰은 사면초가에 몰린 형국이었다.

 

"특검법도 '반쪽짜리'... 국회도 삼성의 힘에 굴복했나"

 

또 하나는 삼성의 힘이다. 이번에 밝혀진 이건희 삼성 회장 지시사항 문건을 보면 삼성의 전방위 로비는 정치인과 판검사, 언론과 시민단체 등 우리 사회 전반에 뻗쳐있다.

 

김용철 변호사에 이어 삼성의 로비 시도를 밝힌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지난 20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반부패제도개혁을 담당하던 나한테도 삼성은 돈을 전달했다"며 "삼성의 이런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게 두렵다"고 말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함세웅 신부도 20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삼성과 언론, 검찰, 국세청, 금감원, 재경부, 청와대, 국회의원, 모든 관계자들이 심각하게 먹이사슬이 얽혀있다"며 "이것이 정말 슬프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경제일간지의 사회부장은 10월 31일자 칼럼을 통해 삼성그룹의 비자금 의혹에 대해 "때론 사회의 흠집처럼 보이더라도 불완전한 인간이 모여사는 곳에는 '합리적 무시'가 필요하다"며 삼성그룹의 비자금 의혹을 덮자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또 전국경영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5개단체는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 특검 도입은 경제 전반의 활력 저하를 가져올 것"이라며 삼성 특검 도입을 반대하고 나섰다.

 

정치권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이 이번 사건의 '알맹이'라고 할 수 있는 삼성그룹의 불법 상속 의혹을 뺀 특검법을 발의한데 이어 대통합민주신당도 애초 포함됐던 삼성그룹의 불법 상속 의혹을 제외시켜버렸다. 오늘 상정된 특검법도 한나라당과 통합신당의 입장 차로 회기내 처리여부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특별본부 행보에 검찰 신뢰회복 달려있다

 

결국 삼성 비자금 의혹을 수사할 검찰 특별수사 · 감찰본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셈이다. 이미 박 본부장이 "아직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경영권 승계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고, 특별본부는 삼성의 '경영권 승계', '비자금 조성', '정·관계 로비' 의혹 등 3개의 전담팀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또 애초 특검 도입을 주장했던 참여연대와 민변이 21일 성명서를 내고 "반쪽짜리 특검은 검찰 특별본부의 전방위적 수사보다 못할 것"이라며 이번 특검법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혀 특별본부의 책임은 더욱 막중해졌다.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여러차례 밝혀온 바와 같이 온전한 특검법에 의해 구성된 특검이 수사에 착수하기까지 한 두달 정도 걸리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범죄행위에 대한 은닉이나 증거 폐기를 막기 위해서라도 특별수사본부의 초동수사가 중요하다"며 특별본부의 강도 높은 수사를 주문했다.

 

특별본부의 수사팀 인선을 맡은 김 차장검사가 "다음주부터는 수사계획을 세우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겠다"고 밝혀 특별본부의 삼성 의혹 수사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소극적 수사의지와 수뇌부의 뇌물 수수 의혹으로 상처입은 검찰이 부담을 이겨내고 국민들의 신뢰회복을 얻어낼 지 주목된다.


태그:#삼성 뇌물 파문, #검찰, #삼성 비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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