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중앙일보>의 '삼성' 구하기가 눈물 겹다. 지난 10월 29일 삼성 비자금이 폭로 된 이후 <중앙일보> 지면에서는 사제단과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기사는 찾아 보기 힘들고, 삼성의 해명과 김용철 변호사 개인의 치부는 도드라진다. 신문이 거짓을 전하는 것만 왜곡이 아니라, 마땅히 전해야 할 사실을 전하지 않는 것도 명백한 왜곡임을 <중앙일보>가 지면으로 증명하고 있다.

축소 보도만 문제가 아니다. 사설을 통한 초점 흐리기도 왜곡의 한 방법이다.

그가 최근까지 삼성으로부터 받아온 거액의 고문료가 중단될 시점에 의혹을 폭로하겠다고 삼성 측에 알려 왔다는 것은 그가 제기한 의혹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하다. – 11월 8일 사설 '검찰의 손에 넘겨진 삼성의 의혹' 중 일부

지금처럼 상황에 따라 찔끔찔끔 의혹을 꺼내 놓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특히 대선을 한 달 앞둔 상황에서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듯한 태도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 11월 14일 사설 '검찰 떡값 의혹, 증거 공개가 먼저다' 중 일부


위와 같이 삼성 비자금 의혹과 관련하여 내 놓은 두 개의 사설에서도 의혹의 시선은 삼성이 아니라 김용철 변호사에게로 향해 있다. <중앙일보>의 태도는 도둑을 신고한 이에게 신고한 의도를 대라고 다그치는 격이다.

<중앙일보> 김종혁 기자의 칼럼
 <중앙일보> 김종혁 기자의 칼럼
ⓒ 이봉렬

관련사진보기


칼럼은 사설보다 한 술 더 뜬다. 김종혁 사회부문 부에디터는 '삼성과 김용철 변호사'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욕을 먹어도 할 얘긴 해야겠다"며 "'삼성 두들겨 패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지식인이 아닌 것 같은 분위기"라고 말한다. 욕 먹어도 싸다.

지금은 삼성을 두들겨 패서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두들겨 패지 않아서 문제다. 기성 언론들이 삼성의 비리 의혹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바람에 시민단체와 누리꾼들이 각 신문사의 보도 내용을 비교하는 표까지 만들어서 제대로 된 보도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혹시 지금 정치게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이젠 '증오감 불어넣기'가 그 자리를 대체한 건지도 모르겠다."
"받을 건 다 받고, 돈 더 안 주니 폭로하는 게 아니냐는 또 다른 비아냥도 있기 때문이다."

김종혁 부에디터의 이 같은 언급은 논리적인 반박보다는 '욕'이 먼저 나오게 한다. 욕을 먹을 걸 뻔히 알면서도 이처럼 터무니 없는 이야길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기사 축소, 삐딱한 사설, 악의적 칼럼 말고도 <중앙일보>가 삼성 구하기에 쓰는 방법이 하나 더 있다. '초일류 기업' 삼성 띄우기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대뜸 '오, 샘썽(Samsung)'이라고 했다. 전자 제품 판매업자인 그는 한국 하면 삼성이 떠오른다고 했다. 골프 치는 내내 그는 삼성을 칭찬했고, 괜히 내가 기분이 우쭐했었다."

김종혁 부에디터의 말이다. 삼성 때문에 기분이 우쭐했단다.

기분이 우쭐한 사람이 또 있다. 전진배 파리 특파원은 20일자 신문에 실린 '취재일기' "르몽드의 한국기업 칭찬"을 통해 아래와 같이 한국 기업을 한껏 추켜 올렸다.
.
"휴대전화 분야의 세계 챔피언인 노키아가 프랑스에서는 삼성전자에 한참 밀리는 2위라는 사실이 관심거리였다."
"기업이 국가를 말해 준다."
"우리 기업들이 만드는 유럽에서의 한류 바람에 교민들은 오랜만에 어깨 펴고 살고 있다."

<중앙일보> 전진배 기자의 칼럼
 <중앙일보> 전진배 기자의 칼럼
ⓒ 이봉렬

관련사진보기


'기업이 국가를 말해'주는데 삼성이 유럽에서 '한류 바람'을 만들고 있으며 그 덕에 교민들이 '어깨 펴고 살고 있다'는 거다. 삼성 때문에 대한민국이 이 만큼 먹고 사는데 어지간한 잘못은 덮어주자는 행간을 읽은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중앙일보>하면 반사적으로 떠 오르는 말이 있다. 검찰 조사를 받는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을 향한 일선 기자들의 충성스런 한마디. "회장님 힘내세요."

지금 <중앙일보>를 보면 기사든, 칼럼이든, 사설이든 아무튼 모든 텍스트가 모여 "회장님 힘내세요"를 외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다만 그 회장님이 홍회장님에서 이회장님으로 바뀌었을 뿐, 사주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이라는 그 근본은 같다.

<중앙일보> 이럴 거면 언론 하지 말고, 그냥 삼성 사보 해라. 그게 정체성에 맞다.


태그:#중앙일보, #삼성 비자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