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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의 눈을 끌고 가는 이슈는 아무래도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BBK 의혹'과 '삼성 비자금 의혹'일 것입니다.

두 사태의 공통점이 있다면, 소위 말하는 고위층 인사들의 법과 도덕에 대한 인식 수준을 가늠하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의 법과 도덕 인식 수준이 어떤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지 드러낼 것이라는 점입니다.

게다가, 이 두 사건이 보이는 공통의 키워드는 다름아닌 '검찰'입니다.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는 수사기관이 얼마나 권력과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지 가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사건들은 '검찰'을 향한 우리 국민들의 시선이 왜 부정적이었는지를 드러내는 계기가 됐습니다.

에리카 김은 왜 '기자회견'을 자청했을까

박근혜 캠프가 기자들에게 배포한 이명박 후보의 명함 (2000년경으로 추정)
▲ 이명박 후보의 사이버금융업 도전 당시의 명함 박근혜 캠프가 기자들에게 배포한 이명박 후보의 명함 (2000년경으로 추정)
ⓒ 박근혜 캠프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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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준씨는 이명박씨 밑에서 일했을 뿐이고, LKe뱅크의 자회사인 BBK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씨라고 얘기해왔다. 사진은 LKe뱅크를 지주회사로 하고 BBK, e뱅크증권중개 등을 자회사로 설명하고 있는 브로슈어다. 이명박 캠프에선 이 브로슈어가 배포된게 아니라고 반박해왔다. 
-<한겨레21> 8월 16일자 기사 <“BBK, 자기가 창업했다더니 이제 와 딴소리”>에서
▲ E-뱅크의 홍보 브로슈어 △ 김경준씨는 이명박씨 밑에서 일했을 뿐이고, LKe뱅크의 자회사인 BBK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씨라고 얘기해왔다. 사진은 LKe뱅크를 지주회사로 하고 BBK, e뱅크증권중개 등을 자회사로 설명하고 있는 브로슈어다. 이명박 캠프에선 이 브로슈어가 배포된게 아니라고 반박해왔다. -<한겨레21> 8월 16일자 기사 <“BBK, 자기가 창업했다더니 이제 와 딴소리”>에서
ⓒ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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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새벽, 제가 이 글을 작성하는 지금 이 시간에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BBK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김경준씨의 누나이자 이 사건에 개입돼 있는 에리카 김 변호사가 곧 기자회견을 가질 것입니다.

BBK 의혹은 사이버금융과 주가조작, 그리고 돈세탁의 의혹 등, 첨단금융의 온갖 테크닉이 모두 개입된 사건이라 우리 국민들은 물론 언론조차도 제대로 소화하기 어려운 사건입니다. 하지만, 국민들도 핵심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이명박 후보가 회장으로 재직하던 E-뱅크코리아의 틀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며, BBK투자자문과 LKE뱅크 계좌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즉, BBK의 실소유주가 김경준씨의 주장대로 이명박 후보였는지, BBK의 자본금이 정말로 다스의 투자금이었는지, 그리고 김경준씨가 주장하는 BBK의 이면계약서의 사실 여부만 알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만 해소되면, 멀게는 도곡동 땅에서 다스에 얽힌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소됩니다.

김경준씨의 오랜 주장과는 달리 이명박 후보 역시 BBK와의 연관성을 오랫동안 부인해왔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이명박 후보에게 유리하진 않습니다. 일단, 이명박 후보 스스로가 2000년 10월 15일과 16일을 기점으로 보수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BBK를 창업한 바 있다"고 말했으며, 이명박 후보의 LKE뱅크 관련 명함과 홍보 브로슈어에는 분명히 BBK투자자문이 지주회사로 표현돼 있습니다.

물론, 이명박 후보는 이에 대해 각각 '오보'와 '조작'을 주장하고 있으며, 김경준·에리카 김 남매가 선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이면계약서'에 대해서도 김경준씨의 사문서위조 혐의를 근거로 들면서 '위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선거를 28일 앞둔 상황에서, 이명박 후보의 검증 국면이 절정에 접어들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과연 진실이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냐는 점입니다.

일단, 검찰은 김경준씨 호송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민첩한 솜씨를 국민에게 선보여왔습니다. 문제는, 이런 정치인 관련 대형 사건에서 늘상 거론됐듯이 검찰이 과연 제대로 철저한 수사를 할 것이냐는 점입니다.

이미 한나라당에서는 '민란'이라는 말을 거론했으며, 자신들의 주장과 다른 수사결과가 발표될 경우 '정치공작'이라는 주장을 전개할 것입니다. 5년 전, '김대업 사건'을 강하게 거론하는 한나라당으로서는, 이 '정치공작'이라는 말이 내부단속이나 지지자 단속에 있어서는 효과를 보장한다고 판단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입장이 어려워지는 것은 '검찰'입니다. 현실적으로, 검찰이 정치와 관계없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독립돼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한나라당의 반응처럼, 수사결과가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와 다를 경우 '정치검찰'과 '민란' 등의 강도높은 단어를 구사하는 현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죠. 게다가,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는 더 큰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김경준씨와 더불어 동시 귀국 가능성이 점쳐지던 에리카 김 변호사는 귀국을 택하는 대신, 일종의 '외곽플레이'를 선택했습니다.

사실 에리카 김 변호사도 귀국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수사방향에 따라 '공범'이 될 수도 있으며, 실제로 한나라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에리카 김도 사기 공범"이라는 주장과 더불어 '이면계약서'에 대해서도 "사기남매가 위조한 문서"라는 주장을 전개했습니다. 이래서야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제대로 말할 수 없는거죠.

이 사건의 중압감은, 김경준씨의 변호를 맡던 박수종 변호사가 '부담감'을 이유로 돌연 사임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정도의 큰 사건이면, 선후배 관계가 유독 엄격한 법조인 사회의 성격상 검찰마저 눈치볼 수 밖에 없는 중량급 변호사가 나서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로 박수종 변호사의 '사임'은 실질적으로 '사임'이 아니라 '해임'이라는 이야기도 있는 듯합니다.

에리카 김 변호사가 중량급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 '교체'를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는 거죠. 그게 사실이라면, 자청한 '기자회견'과 맞물려 BBK 의혹은 더 큰 파급을 유도할지도 모릅니다.

김경준씨 측의 입장에서는, "BBK의 실소유주는 엠비 리이며 나(김경준)는 하수인이었다"는 주장을 전개하기 위해서 여론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수단입니다. 그네들로서는 '검찰'은 섣불리 믿어서는 안되는 입장입니다. 다름아닌 여론조사 부동의 1위인 유력 대선후보와의 법적 대결이기 때문에, 유력 대선후보와 그가 속한 정당의 눈치를 볼 수도 있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경준씨 측으로서는 언론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김경준씨 측으로서는 일단 '알리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언론은 사실 유무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럼으로써, 대중 스스로도 사건에 대해 나름의 판단을 하게 될 것이며 그에 대한 여론을 모아갈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유리한 수사결과가 발표된다면 이명박 후보에 대해 부정적인 누리꾼들이 똘똘 뭉쳐 검찰을 성토할 것입니다. 안그래도, 이명박 후보는 수많은 비리의혹으로 안티 성향 유권자들에게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철저하게 굳혀진 상황입니다. 얼마든지 뭉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리카 김 변호사 스스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염문설'까지 도는 마당이라, 동생 김경준씨에게 쏠린 시선을 멀리 떨어진 LA에서도 여론을 자신에게 확실히 집중시킬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면계약서'를 주장할 경우, 사실관계를 떠나 그 여파는 언론 보도를 타고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입니다. 정황상 이명박 후보와는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이들 남매가 바라는 결과일테죠.

사실, 남매의 이런 전략적인 선택은 법과 금융을 잘 아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이라는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검찰이 국민에게 신뢰를 제대로 주지 못한 점에서 비롯됩니다. 사건의 사실관계를 떠나, 근본적인 문제가 발견되는 것입니다.

검찰이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면, 그리고 철저한 중립성과 함께 일본의 동경지검 특수부처럼 전직 수상이라 할지라도 새벽녘에라도 자택으로 쳐들어가 긴급구속할 수 있는 엄정함을 보여줬더라면, 이런 전략적인 선택이 난무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한나라당도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를 '후보 등록 이전'에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후보 등록 이후'에 이명박 후보에게 치명적인 수사결과가 발표될 경우, 한나라당으로서는 대선 직전에 힘을 잃고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역시나, 정치와 선거를 매개로 검찰을 압박하는 것인데, 만일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남매와 통합신당이 밀약을 맺은 것이라면, 그 역시 검찰에게는 치명적인 상처로 남을 것입니다.

'검찰의 신뢰도 문제'를 보여주는 '삼성 비자금 의혹'

'삼성 비자금 의혹'은 청와대 전 법무비서관을 지낸 이용철 변호사의 '복병'과도 같은 양심고백으로 인해,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에 더욱 무게가 실렸습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주장한 정황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는 상황, 금액 등이 구체성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하 사제단)은 "문제의 본질은 '뇌물 수수 검사' 명단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사실 언론이나 대중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는 이유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습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사건,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이 검찰의 총체적인 신뢰도, 그리고 비자금 의혹이 혹시 사실이라 할지라도 '뇌물 수수 검사'들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느냐에 따라 수사 자체의 신뢰도가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과 사제단의 증거 제시 역시 일종의 '외곽플레이'로 봐야 합니다. 검찰이 제대로 된 신뢰도와 엄정한 의지를 역사적으로 보여줬더라면, 김용철 변호사는 사제단이 아니라 검찰에 찾아가 '양심고백'을 하면서 '자수'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김용철 변호사는 검찰과 언론, 심지어 시민단체에서도 외면당했다고 하며, 마지막 수단으로 사제단을 찾아가 드디어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애초에, 검찰도 신뢰도에 의문을 품도록 할 수밖에 없는 단서를 제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의 본질보다 내부의 기강과 사기 문제가 달린 '뇌물 수수 검사 명단'에 집착한 감이 있었으며, "명단 공개부터 하라"는 압박까지 가했습니다. 그러다가 검찰총장 후보자와 대검 중앙수사부장, 국가청렴위원장 등, 검찰 최고위층의 뇌물 수수 의혹을 공개하면서 더 큰 역풍을 맞은 거죠.

더욱이, 수사가 지지부진해지려는 찰나에 이용철 변호사의 '추가 양심고백'이 이뤄지면서 결정타를 맞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검찰은 얼마든지 '인지수사(검찰이 범죄의 단서를 직접 찾아서 조사하는 일)'를 할 수 있음에도, 그럴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신정아-변양균 스캔들'에서 선보였던 검찰의 추상같은 엄정함을 기억해보면, 더더욱 이해가 안가는 일이죠.

어쨌든, 검찰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신뢰도에 관한 최대의 위기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앞서 이야기했듯이 'BBK 의혹'에서까지 어떤 수사결과를 발표한다 해도 한쪽의 반발을 유발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검찰은 책임없나

흔히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합니다. 죄를 지어도 돈이 많거나 권력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엄격하지 못하지만, 그 반대의 사람에게는 때때로 가혹할 정도로 엄격한 사례가 빈번하다고 판단하면서 생겨난 말입니다.

검찰이 정치와 돈에 자유로운 사회였다면, 이렇듯 검찰이 신뢰도 문제로 인해 이리저리 흔들리며 '외곽 플레이'에 시달리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선후배 관계가 유난히 엄격한 폐쇄적 조직이기에, 정치권으로 진출한 '선배'들이 많기에 일어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선후배 관계'는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진국이 되려면, 그럴수록 공적 관계에 있어서는 더더욱 엄정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검찰이 눈치봐야 할 대상은 다름아닌 '법'이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성토하는 국민의 목소리입니다.

그런 이유에서라도, 검찰은 'BBK 의혹'과 '삼성 비자금 의혹'을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 검찰, '특검'을 특히나 싫어한다고 했죠? 하지만, 그 '특검'은 신뢰도를 잃은 검찰이 자초한 것입니다. 스스로 자초했다는 겸허한 반성과 더불어, '법 질서 수호'라는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면서, 어떤 검사라 할지라도 초심을 품었을 것입니다. 'BBK 의혹'과 '삼성 비자금 의혹'은 그 초심을 전국민 앞에서 떳떳하고 바람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소중한 반전의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삼성 뇌물 파문, #BBK 에리카 김, #BBK, #삼성,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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