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공간의 세 남녀

그들만의 공간의 세 남녀 ⓒ 시네필 엔터테인먼트


<몽상가들>은 2005년도 3월에 국내개봉 되었다가 외설적인 성표현이 문제가 되었던 영화다. 난 이 영화를 개봉이 끝난 후에 DVD로 보았다. 감독이 워낙 유명한 거장이라서 꼭 봐둬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보았다. 그런데, 영화가 내가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래서 3분의 2정도 보다가 반납해 버렸다.

올해 들어서 프랑스 68혁명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인터넷도 뒤지고 책도 빌리고 하다가 모 영화사 강좌에서 <몽상가들>의 배경이 되는 시위장면이 프랑스 68혁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몽상가들>에서의 외설시비도 단지 외설여부에 대한 우파적(영화심의관련)시비가 전부가 아니라 다른 맥락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 이 영화를 사전지식을 어느 정도 갖춘 채로 다시 보았다. 그런데, <몽상가들>에 대한 솔직한 소감은 감독이 노망이 난게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화 자체만 놓고 보면 오랜 영화제작의 노련함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한 때는 이탈리아 공산당 당원이기도 했던 그의 영화가 너무나 몰역사적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철부지들의 섹스게임을 역사적인 사건(프랑스 68혁명)과 병치시켜 놨는지 이해가 잘 안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정서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물론, 나와 다른 누군가의 정서와 취향에 만족스러울 수는 있겠지만.

거대서사의 종말과 개인의 출현 그리고 그 극단

이와 비슷한 테마나 소재를 가지고 접근한 영화가 두 편 정도 생각이 난다. 지금 개봉중인 <색, 계>와 개봉한 지 몇 년 된 일본영화 <감각의 제국>이다. 이 두 편은 <몽상가들>과 유사한 점이 있다.

<몽상가들>이 68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섹스를 탐닉하는 젊은이들을 그렸다면, <색, 계>는 중일전쟁을 배경으로 성관계에 몰입하는 남녀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일본영화 <감각의 제국>에서도 1930년대 군국주의 일본을 배경으로 남녀가 섹스에 몰입하다가 결국에는 죽음에 이른다.

<몽상가들>을 비롯한 세 편의 작품에서는 역사라는 거대서사와 지극히 개인적 영역인 성(性)이 극단적으로 대비되고 있다. 이런 대비를 통해서 <몽상가들>의 애초 기획 내지 제작의도를 추측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추측을 하고 나서도 <몽상가들>에 대한 소감은 “그래서 어쨌다는건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몽상가들>에서 세 젊은이는 68혁명의 도화선이 되는 씨네마테크 시위에서 만난다. 그리고는 시위와 데모의 현장에서 빠져나와 테오의 집으로 가게 되고, 이 시점부터 영화 상영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세 남녀의 폐쇄적인 영화맞추기 게임과 성적 유희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별 설득력도 없이 시위대에 참가하고, 테오가 경찰을 향해 화염병을 던진 후 영화는 끝난다.

어차피 <몽상가들>에서 역사는 중심이 아니다. 68혁명은 액세서리에 불과하다. 이 영화의 중심은 세 남녀의 성애에 있다. 그런데, 그런 성적 유희들이 이 영화내에서 무슨 의미를 가질까? 관객들의 눈요기거리나 영화흥행을 위한 장치이상으로는 보기 어렵다. 영상표현의 한계를 깨기 위한 의미있는 시도라거나, 미학적 성묘사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라는 감독의 이름값에 이끌려 안 보고 넘어가면 안 되는 영화로 생각하고 보기는 했지만, 3류 에로물만도 못한 영화인 것 같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는 예술영화로 간주들을 하는데, <몽상가들> 하나만 놓고 보면 감독의 역량조차도 의심스러워진다.

감독이 68혁명이라는 역사를 팔고, 외설적인 장면으로 마케팅을 해서 흥행을 하려는 의도는 설마 아니겠지라는 생각도 든다. 너무 실망스러운 영화다.

몽상가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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