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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지식인, 전문가는 많은데 삶의 사표로 삶을 만한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 시대입니다. 살아갈 인생이 비굴하지 않도록, 마지막 육신 장막을 내려놓을 때, 헛되어 살 지는 않았다고, 그가 간 길을 길었기에 헛되지, 비굴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존경할만한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눈을 조금만 달리하여 본다면. 자본과 권력에만 집중하지 않고, 조금만 다른 눈으로 목표를 삼는다면 험악한 세월을 살았지만 비굴하지 않고, 헛되게 살지 않는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신 이들을 우리는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닥터 노먼 베쑨>

 

베쑨은 의사다. 조국은 캐나다이지만 양심적인 인사들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압살했던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해 군집한 스페인이었고, 일본 군사 파시스트들이 득실거리는 중국 땅에서 한 인간으로서 투쟁하였다. 투쟁하면 사람을 죽이는 전쟁무기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의 무기는 달랐다.

 

베쑨은 생명을 살리는 의사라는 직분으로 투쟁에 참여했다. 흉부외과 의사였던 그는 의술을 단지 몸에 들어온 질병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사회의 질병을 통합적으로 파악하여 새로운 사회체제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몸과 사회 질병을 함께 고쳐 새로운 사회체제를 건설하고 제대로 된 인술을 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장에서도 의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쳤고 최초로 혈액은행을 운영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부상병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그대들이 먼저 그들을 찾아가시오"라는 말은 전쟁이란 참혹한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살리는 일임을 젊은 의사들에게 가르쳤다.

 

그는 시대에 묻히지 않았다. 흐름에 안주하지 않았다. 시대가 인간을 해하면 저항하였고,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일에 투신했다. 인간의 몸이 질병으로 고통당할 때 치료해주는 일을 의사가 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구조질병까지 치료했던 삶을 살아간 의사는 많지 않다. 이 시대 의사는 과연 어떨까? 인간 질병을 돈에 파는 의사도 있고, 돈에 팔린 의사이기에 사회구조병폐에는 관심이 없다. 물론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면서 사회구조병폐를 위하여 노력하는 의사도 있다. 의사로 살아갈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닥터노면베쑨'을 반드시 만나보시라.

 

"우리는 한 인간의 이상의 것을 통곡합니다. 일반 민중들에 대한 닥터 노먼 베쑨의 헌신은 우리 모두에게 교훈입니다. 우리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 자체가 그의 인격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겨 놓았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그의 무사 정신을 다투어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민중들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출발점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 개인은 커다란 능력을 가질 수도 있고 또 아주 작은 능력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무사정신의 소유자라면, 누구나 모두 민중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내던지는 중요한 인간, 완전한 인간, 덕 있는 인간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본문 608쪽)

 

<케테 콜비츠>

 

20세기 그의 작품이 세상에 나온 이래 그에 대한 논평은 아직도 멈춰지지 않고 있다. ‘콜비츠야말로 위대한 판화가다’, ‘여성으로서는 유일한 신예술 판화가다’, ‘사회민주주의 선전가다’, ‘비탄과 고난을 형상화한 화가다’, ‘종교적 예술가의 한 사람이다’ 따위로 평한다. 사람은 어느 누구를 평할 때에 '그'에게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출발한다. 

 

제 나름대로 취향과 감각과 지성을 동원하여 평을 듣는 일은 콜비츠도 마찬가이다. 하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일은 ‘사람들은 그녀의 작품을 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콜비츠의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그가 '사람'을 말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케테 콜비츠 인생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그녀의 작품 속에 형상화한 대상은 인간이다. 인간, 인간이 작품의 중심이다. 인간이 작품을 철저하게 지배한다. 풍경화나 정물화 따위는 콜비츠의 작품 목록에 들어 있지 않다." (본문 9쪽)

 

콜비츠 작품 중 <빈곤>, <죽음>, <회의>, <직조공의 행진>, <소요>, <결말> 은 석판화와 동판화이다. 직조공 가족의 비참한 삶과 빈곤을 말한다. 그들에게 드리우진 죽음 그림자. 그들은 죽음의 그림자를 걷고자 은밀한 모의 후 거리를 나서지만. 그 결과 비극적으로 죽임을 당한 자와 남은 자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 주면서 가장 비천할 수 있는 실존과 삶의 투쟁을 근접하여 생생히 묘사했다.

 

그가 그린 작품에서 우리나라 민중판화가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 자연과 풍경을 담지 않고 인간 자체를 담은 민중판화와 콜비츠가 담은 판화가 닮지 않았다고 평할지라도 왠지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인간을 그리고자 했던 콜비츠.

 

그는 1944년 7월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 생애를 살아가고 있던 그가 자녀들에게 남긴 말이다.

 

"너희들 그리고 너희 자녀들과 작별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몹시 우울하구나. 그러나 죽음에 대한 갈망도 꺼지지 않고 있다. 그 고난에도 불구하고 내게 줄곡 행운을 가져다주었던 내 인생에 성호를 긋는다. 나는 내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으며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 이제는 내가 떠나게 내버려 두렴. 내 시대는 이제 다 지나갔다"

 

<뇌봉>

 

"만약 그대가 한 방울의 물이라면 다만 얼마의 땅이라도 적시었는가? 만약 그대가 한 줄기의 햇빛이라면 다만 얼마의 어두움이라도 밝혀보았는가? 만약 그대가 한 알의 씨알이라면 한 소중한 생명이라도 키워보았는가? 만약 그대가 하나의 작은 나사못이라면 그대의 일터를 언제나 굳건히 지키고 있는가" (65쪽)

뇌봉은 중국 혁명 영웅이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우리는 모택동, 저우언라이, 덩샤오핑만 알지 뇌봉 같은 이는 잘 모른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혁명 여정에서 국민당과 싸워 이기는 과정, 결국 승리하여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던 중국 공산당에서 민중 하나하나 인민 하나하나가 없었더라면 중국공산당 혁명은 성공할 수 없었다. 그 중 하나가 뇌봉이다. 


뇌봉은 22살 어린 나이에 육신을 내려놓았다. 중국은 요즘 뇌봉 따라배우기가 한창이다. 하지만 이미 중국은 뇌봉 정신을 상실했다. 자본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다. 한 방울 물이라면 땅을 적시어야 하지만, 작은 나사못이라면 일터에서 굳건히 지켜야 하지만, 인민을 위하여 자신을 드려야 하지만 인민은 사라졌고, 자본만 남은 중국이다.

 

인민을 위해 살았던 뇌봉을 따라간다는 것은 말이 아니라 삶을 통하여 보여주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노먼베쑨> 테드 알렌, 시드니 고든 공저/천희상 역 | 실천문학사 | 2001년 06월 
<케테 콜비츠> 카테리네 크라머 저/이순례,최영진 공역 | 실천문학사 | 2004년 09월 
<뇌봉> 진광생 저/최성만 등역 | 실천문학사 | 2001년 02월 


닥터 노먼 베쑨

테드 알렌 지음, 천희상 옮김, 실천문학사(2001)


태그:#노먼 베쑨, #콜비츠, #뇌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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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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