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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리칸 고딕 (1930)
 어메리칸 고딕 (1930)
ⓒ 시카고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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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왁스박물관을 찾았을 때 이 그림을 왁스로 형상화한 걸 보고 무척 반가웠다. 그때는 누가 그린 작품인지도 몰랐지만 어디서 많이 본 친근한 작품이었다. 가장 미국적 이미지란 느낌이 들어서 그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미국 대중문화 역사상 가장 많이 패러디된 그림이 아닐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에드바르드 뭉크의 절규와 더불어 인기 있는 패러디의 소재가 된 그림이다. 인기 텔레비전 시리즈인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의 도입부에 어메리칸 고딕이 다른 그림과 더불어 들어가 있다. 미국 대중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그림의 패러디를 수시로 만나게 될 것이다.

어메리칸 고딕의 배경이 된 집에서 살고 있는 브루스 타이허씨.
 어메리칸 고딕의 배경이 된 집에서 살고 있는 브루스 타이허씨.
ⓒ Melissa G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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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리칸 고딕은 아이오와주 시골마을 씨더 레피즈 출신인 화가 그랜트 우드(Grant Wood)가 자신의 여동생과 가정치과 의사를 모델로 완성한 작품이다. 1930년 여름 아이오와주 시골을 여행하던 그랜트 우드는 이 그림의 배경이 된 고딕양식의 집을 발견했다. 그랜트 우드는 실제로 두 모델을 저 집에 세우고 작업하지 않았다. 따로 모델을 그려서 이 작품을 완성하였다. 모델이 된 집은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어서 관광명소가 되었다.

1930년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에 어메리칸 고딕이 전시되었을 때 상당한 논쟁을 일으켰다. 이 시기 미국은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경제적 공황의 격변기였다. 한쪽에서는 이 그림은 중서부 시골의 삶을 미국적 가치로 찬양한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다른 편은 중서부 시골의 삶에 대한 강한 풍자가 드러난 그림이라고 주장하였다.

고향인 아이오와 사람들은 풍자적 평가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랜트 우드는 풍자적 의도만으로 그린 작품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약간의 풍자가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는 작품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침묵하였다. 그는 아이오와에 살았기에 중서부 삶을 풍자하는 활동이 버거웠는지도 모른다.

이 그림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풍자적 비틀기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심통난 여자의 표정, 근엄한 남자가 들고 있는 갈고리, 고딕양식의 창문, 뾰족한 지붕이 모여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런 묘한 설정 때문에 이 작품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그림의 모델이 된 여동생 낸 우드 그래험과 치과의사 맥키비
 그림의 모델이 된 여동생 낸 우드 그래험과 치과의사 맥키비
ⓒ Cedar Rapids Museum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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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의 커플을 어떤 이는 부부 사이로 보고 다른 사람들은 아버지와 딸로 보기도 한다. 1942년에 찍힌 사진에 의하면 여자의 얼굴을 더 나이들어 보이게 그렸음을 짐작하게 된다. 게다가 의도적으로 여자의 얼굴을 길게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오해는 그랜트 우드가 의도적으로 계획한 것일 수 있다. 그림을 그릴 당시에 각각 30살과 62살이던 두 인물의 나이 차이가 그림 속에서는 좁혀져 있었다. 여자 모델이던 낸 우드 그래험은 부부라는 평론을 불쾌하게 느꼈다. 그녀는 사람들이 어떻게 나이가 두 배도 넘게 차이가 나는 관계를 부부로 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아버지와 딸의 설정으로 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그랜트 우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두 인물의 관계를 딸로 볼 경우에도 여러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딸이 노처녀라는 해석도 있다. 웬디 수녀는 딸이 근엄한 아버지에 억눌려 있지만 자유와 자기 주장이 있었다고 해석한다. 여자의 목 뒤로 헝클어진 곱슬머리는 자유를 의미한다.

갈고리를 들고 있는 아버지는 딸의 처녀성을 지키려는 보수적인 가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골과 자연의 보수적 가치를 지키려고 하지만 딸은 그걸 마뜩하지 않게 여긴다.

고딕 스타일은 반복적으로 표현되었다. 창살, 지붕, 남자 멜빵바지, 셔츠 등에서 고딕의 무늬를 찾을 수 있다. 여자 옷의 물방울 무늬는 모성을 상징한다. 전원의 미국적 삶과 고딕 양식은 이렇게 만날 수도 있다.

어메리칸 고딕의 패러디
 어메리칸 고딕의 패러디
ⓒ Emad Hajj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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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들수록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건 패러디의 좋은 소재가 된다. 모나리자도 전형적인 미인의 범주와 다르다. 눈썹도 없고 무표정한 얼굴은 그림 속에 긴장감을 자아낸다. 절규에 그려진 인물의 공포는 괴기스럽기보다 웃음을 유발한다. 어메리칸 고딕도 전원 속의 미국인들을 재기발랄하게 살짝 비틀고 있다. 이러한 특징이 패러디로 인기를 구가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건축양식에서 고딕은 시대에 뒤떨어진 양식이다. 왜 하필이면 중서부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서 고딕을 빌려온 것일까? 세련되지 않은 양식으로 고향을 표현하는 재밌는 시도를 한 셈이다.

그랜트 우드가 다큐멘타리같은 정확한 시각으로 어메리칸 고딕을 그렸다면, 지금과 같은 인기는 못 얻었을 것이다. 어메리칸 고딕은 시카고 미술을 떠나서, 미국을 대표하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성장하여 드라마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인 맛있는 대중문화(http://ryudonghyup.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어메리칸 고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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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협 기자는 미국 포틀랜드 근교에서 아내와 함께 아이를 키우며, 육아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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