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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박형규 목사, 백낙청 서울대 교수, 함세웅 신부(왼쪽부터) 등 재야 사회원로들이 후보단일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19일 오전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박형규 목사, 백낙청 서울대 교수, 함세웅 신부(왼쪽부터) 등 재야 사회원로들이 후보단일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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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대선은 끝났다."
"암흑의 시기가 올 것 같다. 앞으로 5년 동안 해가 뜰까?"
"이명박, 이회창 중에 누가 되는 게 날까?"


대선이 오늘로 꼭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여기저기선 냉소와 패배어린 말들이 심심치 않다.

잠시 접고 보자. 여론조사? 흔들리는 이명박 표가 정동영, 문국현, 권영길쪽으로 넘어오지 않는다. 후보 단일화? 해도 20% 수준이란다. 자체 동력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상태 아닌가? 대선 마지막 변수라며 다들 'BBK 김경준' 입만 바라보고 있다. 여론조사니, 검찰이니 수치와 팩트의 마술에서 벗어나 한번쯤 '빈 마음'으로 대선을 보자.

19일 열린 사회원로 기자회견을 지켜보며 문뜩 '낙관'을 떠올렸다. 새로운 논리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말하는 자의 힘 때문이었다. 낙관은 차분하고 조용히 찾아왔다.

오전 10시 30분 여의도 국회의사당 건너편 모처에서 박형규 목사(85), 백낙청 교수(70), 함세웅 신부(66)가 자리를 함께 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진보 진영의 원로들이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권의 흥망사를 몸으로 기록해온 인물들이다.

'민주개혁세력의 패배주의 극복과 후보단일화 촉구 사회원로 기자회견.' 이들이 내건 회견 제목이다. 목에 힘준 구호도, 면면의 배석자들도 없었다. 정해구 교수(성공회대 정치학)가 사회를 보는 정도였다. 백낙청 교수는 "민주개혁세력이 패배주의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다각도의 논의가 있지만 일단 원로라고 하는 나이 든 우리들이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아직껏 상식과 몰상식의 대립구도 유효"

A4 2장 분량의 회견문 초안은 백낙청 교수가 작성했다. 문학도의 언어로 표현하는 2007 대선의 구도는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 사회에는 아직껏 상식과 몰상식의 대립구도가 유효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사회악과 냉전적 사고를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한국의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많은 이들이 열정적으로 헌신해왔고 이만큼이나마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우리는 절감합니다. 지금이야말로 민주개혁세력이 한 번 더 분발하여 상식의 지배영역이 넓어지는 미래를 확정지을 때입니다."

박형규 목사는 특히 성명서에서 "정교하고 효율적인 정치공학을 통해 최대한의 세력연합을 달성하는 것이 민주개혁세력이 역사 앞에 책임져야 할 임무"라는 표현에 주목했다. "나라의 전진을 바라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에게 요구하는 바를 간단명료하게 집약했다"고 평가했다. 

힘을 보태라는 주문이다. 선거연합이든, 합당이든, 또 어떤 방식이든. 민주당에겐 "지역기반을", 통합신당에겐 "의원들의 힘을", 문국현 후보에겐 "정책과 인력의 참신성을", 민주노동당을 향해서도 "독자적인 민중조직을 지닌 집단 역시 힘을 보태는 방법을 강구하라"는 것이다. 방법? 정치인들이 할 일이다.

백 교수는 '정치공학'의 의미를 새롭게 규정했다. 아니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정치공학의 본래 의미를 찾아주었다. 

"정치공론을 왜곡하는데 활용되는 단어가 되었어요. 집의 설계도가 아무리 좋아도 구조공학의 뒷받침 없이는 안됩니다. 현실정치에서 공학이 없으면 안되죠. 세력을 키우려면 공학을 해야 합니다. 엔지니어들이 공학을 다루잖아요? 우리는 여기까지 하고 정치인들이 집을 잘 지어주어야 합니다."

함세웅 신부는 기도하는 심정을 드러냈다. 함 신부는 "나는 옆에 계신 박형규 목사와 백낙청 교수를 모시고 35년 가까이 민주화와 인권 회복을 위해 함께 일해 왔다"며 운을 뗐다. 

"대선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바른 가치를 지녀야 합니다. 성경에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정의를 구하라. 그러면 모든 것을 저절로 얻을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것을 톨스토이가 <부활>에서 인용하고 있지요. 하늘나라와 정의를 구하지 않고 덤으로 보장된 것을 찾다간 부정과 부패에 매몰된다는 것을 톨스토이가 지적하고 있습니다."

덤! 총선을 염두하고 지분을 따지는 세력과 대선을 선전장으로 삼는 세력에 대한 꾸짖음이다. 백 교수는 "우리가 성명서를 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민주개혁을 표방하는 정당과 사람들이 패배주의 젖어서 총선을 바라본다던가, 실리를 따지지는 않아도 대선공간에서 자신들의 가치를 선전하는 장으로 활용해 패배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 명의 원로는 낙관했다. 당위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박형규 목사는 다시 기적을 말했다.

"그랜저를 타는 세력들이예요. 차가 크면 클수록 왕창 부서질 가능성이 높아요. 작은 차를 타던 사람들은 오래 타다보니 낡고 부품도 갈아야 되는 상황이 된 거예요. 하지만 작은 차는 수리도 쉽고 속도를 내면 빨리 달릴 수 있어요. 한국은 항상 기적을 통해 발전해 왔습니다."

"후보 단일화가 되면 민주개혁세력은 성공합니다. 역사는 진전하지 후퇴하지 않아요. 30, 40년 민주화 열정 되살아날 것이라 봅니다. 자신감과 확신을 갖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함세웅)

"저도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봅니다.(백낙청)

회견장에 늦게 도착한 김병상 신부는 "우리가 결실을 이뤄내지 못하면 그동안 죽고 감옥에 가고 눈물 흘린 많은 사람들에게 할 말이 없다"며 "노무현 정부가 다른 건 잘했더라도 제일 잘못하는 것을 지적하라면 민주화 정부를 이어주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끝을 내고 말았다는 결과를 낸다면 역사 앞에 그 죄를 용서받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국민, 마취 상태에서 깨어날 것이라 믿어"

19일 오전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백낙청 서울대 교수가 후보단일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19일 오전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백낙청 서울대 교수가 후보단일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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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견이 끝나고 백 교수에게 몇 가지를 더 물었다.

- 현실 정치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나서게 된 어떤 절박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나는 현실 정치에 직접 몸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해왔고 여러 가지 권유를 받았지만 그 원칙은 지켜왔어요. 오늘 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시민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전체 흐름에 대해서 혹은 우리 원칙적인 의견을 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인과 직접 교섭을 한다거나 내가 직접 현실정치에 나선다는 것은 아닙니다."

- 상황이 매우 어렵습니다. 후보 단일화만 되면 승리할 수 있다고 낙관하는 이유는 뭔가요.
"국민의 대다수는 변화를 바랍니다.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고 그 다음이 중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도 대선판은 보수 위주로 가고 있어요. 민주개혁 세력이 패배주의에 젖어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참여정부가 인심도 많이 잃고 거듭된 패배를 하다 보니 전의를 상실했어요. 전의를 상실하다 보니 정치담론의 주도권이 반대쪽에 가 있는 겁니다. 국민들은 사실 마음속으로는 미래를 보고 가길 원하고 있어요. 미래 지향 세력이 패배 의식만 떨치면 얼마든지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와 누구의 가치가 차이가 제일 중요한 것인지 직시하고 거기에 상응하는 대응을 하자는 겁니다."

- 내용 없는 세력규합은 정치공학이다, 그런 부정적 인식이 있어요.
"정치공학 없는 정치가 어디 있습니까? 가치는 없이 순전히 권모술수만 부리는 것은 거부하지만 정치를 하려고 하면 세력을 모으는 기술이 있어야 해요. 세력규합을 두려워하는 세력들이 선거 국면에서 효과적인 언어를 발명했다고 생각해요. '정치공학'이란 표현도 그렇고, '네거티브'가 또 하나입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과연 기본적인 도덕성을 갖췄느냐, 법률적인 무슨 문제가 없느냐 그걸 따지는 것도 네거티브라고 한단 말이에요. '단일화를 위한 단일화'니 이런 말을 만들어내는 데는 보수층만 아니고 진보를 자칭하는 지식인들의 역할도 컸다고 봐요. 이건 합작품입니다. 국민들이 현명하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고 봅니다."

- 후보단일화 만큼이나 '우리를 한번만 더 믿어 달라'는 진정성 있는 반성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후보 단일화 자체가 진정성 있는 태도라고 봐요. 그리고 단일화 된 후보를 위해 나머지 사람들이 적극 뛰는 모습이 가장 감동적이에요. 우리가 스포츠 경기를 왜 좋아합니까? 물론 스타들이 현란한 개인기를 보여주는 재미도 있지만 그건 덤이고, 기본은 팀이 일치단결해서 이겨야겠다고 혼신의 힘을 쏟는 게, 그게 감동이거든요. 그러니까 뭐가 좀 다르다고 해서 뒤로 빼고 그러면 국민들이 안움직입니다."

- 이번 선거를 관통하는 언어가 '잃어버린 10년' '민주정부 무능론'인데요.
"지난 20년을 민주화 20년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역사라는 게 분단된 나라의 역사이기 때문에 시원하게 뭐가 되는 게 없어요. 구질구질하게 나갑니다. 지난 20년 중에서도 처음 5년은 군사정권의 연장인 면이 있었고 다음 5년은 문민정부지만 과거 세력이 힘을 발휘했고 그 다음 10년이 좀더 본격적인 민주정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자랑할만한 역사의 한 부분이다 이렇게 봐야되고요.

'잃어버린 10년이다' 이건 보수언론쪽에서 참 잘 만들어낸 말이에요(웃음). 사실 지난 10년 동안에 사람들은 다 잃어버린 게 있잖아요. 특히 서민층에서는 IMF 이후에 양극화 심해지면서 더 많이 잃었단 말이지요. 하지만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는 기득권에서는 자기들이 정권을 잃어버린 걸 말하는 건데 사람들은 '내가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게 되는 거죠. 참 교묘한 언어의 마술입니다.

문제는 잃어버린 정권과 기득권을 탈환하려는 분들이 없는 사람들의 사정을 생각해주는 사람들이냐는 겁니다. 우리 국민이 끝까지 속아 넘어갈만큼 어리석지 않아요. 저력이 있고 역동성이 넘치는 국민이기 때문에 내내 마취되어 있지는 않을 겁니다."

- 특히 30,40대 개혁층의 선거에 대한 냉담이 심각합니다.
"이번이 사회의 앞날을 결정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선거입니다. 젊은이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선거입니다. 수치상의 경제성장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거든요. 거기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갖고 대응하는 세력이 있어야지 됩니다. 또 젊은이들일수록 한반도 전체에 대해 원대한 꿈을 가지고 살아야 좀 사는 맛이 날텐데 객관적인 정세는 한반도가 지금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지 않습니까?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고 전에 없던 기회예요.

미국이 만약 북측하고 관계 개선을 완전히 실현한다면 미국 역사상 특정 정권과의 적대 관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관계를 청산하는 겁니다. 쿠바의 카스트로보다 북한과의 적대관계가 더 오래되었어요. 스탈린, 히틀러도 잠깐이었고요. 젊은이들이 호연지기를 가지고 이 판을 보고 대응해야 될 거라고 봅니다."


태그:#단일화, #함세웅, #박형규, #백낙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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