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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인하여 촉발된 삼성그룹의 비자금 문제가 관심을 끌고 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삼성의 영향력이 실로 엄청난 수준임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좋은 기업이 잘 발전하여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은 국민 누구나 바라는 일일 것이다. 삼성이 여러차례 국민적 비판에 직면한 것도 국민의 애정과 염려가 서린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거나 해당기업이 많은 기여를 했다고 그들의 범죄행위까지 면책할 사유는 안된다. 잘못이 있다면 그 행위에 가담한 사람들이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누구라도 국가의 기본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우월적 위치에 설 수는 없다. 삼성의 경우도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법적 책임을 물어야한다. 또한 경영진의 잘못과 기업의 존립과는 분리해서 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오늘(16일)자 <매일경제신문>의 1면 톱에 실린 기사는 상식의 범주를 한참 넘었다. 이 기사의 제목은 "바이어 문의 쇄도 삼성, 해명에 진땀"으로 되어있다. 기사의 내용은 더욱 황당하다. 삼성의 비자금 폭로로 인하여 해외의 바이어들이 연일 제품의 질에는 관계가 없는지, 납기에는 지장이 없을 것인지 묻는 전화가 쇄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경영활동이 지장을 받고 있어서 큰 일이라고 걱정을 한다.

 

도표까지 그려서 삼성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며 걱정을 늘어놓고 있다. 매출액이 152조원으로 20%, 수출액이 633억 달러로 20.4%, 그리고 시가총액이 150조원으로 15.5%로 돼있는 세개의 도표를 눈에 확 보이도록 배치하였다. 이러한 삼성이 김변호사의 폭로로 인하여 경영에 차질이 생기면 국가적인 손해이자 국민에게 이익될 것이 없다는 취지인 듯하다. 마치 삼성그룹의 홍보지를 보는 느낌이다.

 

사실 외국의 바이어들은 이러한 사건의 파장을 걱정할만 할 것이다. 어떤 나라도 거대기업이 이렇게 큰 의혹에 휩싸이면 상당한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 만큼 이번 폭로의 내용은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비자금을 조직적으로 조성하고 관리하였을 뿐 아니라 국가의 공권력을 상징하는 검찰을 관리해 왔다니 경악할 일이 아닌가?

 

아마도 선진국들의 경우 기업이 이러한 일을 저질렀다면 당장 영업을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혹한 단죄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품질과 납기에 지장이 없다는 삼성의 해명이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선진국에서 느끼는 비자금 조성과 금품로비 기업이라는 용어는 몸서리칠 일이 아니겠는가? 그만큼 그 내용이 충격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국민들이 그리 크게 놀라지도 않는다. 우리의 재벌들이 이러한 일로 한두 번 구설에 오르고, 수사를 받고, 유야무야 넘어가거나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성이 돼 버렸다.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만 벌써 몇 번째인가? 그리고 경영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범법행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은 일이 별로 없다. 오히려 이러한 우리사회의 모습이 외국인들의 눈에는 이해가 안될 일이다.

 

좋다. 삼성이 이 사건으로 곤혹을 치르는 사이 경영상의 차질이 빚어지고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걱정하는 우국충정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이렇게 중대한 기업의 범죄의혹을 덮어 버려야 한다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대표적 경제전문지의 염려가 그것을 주장하는 것인가?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그 다음에 우리경제는 어떻게 될까? 너도나도 기업활동의 편의를 위해서 비자금을 만들고 뇌물을 돌려도 눈감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부패의 수렁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한국경제는 과연 망하지 않고 발전할 수 있을까?

 

은근히 기업의 어려움을 빙자하여 국민여론을 호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국민여론이 삼성을 걱정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삼성이 타격을 입으면 국가경제가 흔들린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이거 대국민 협박이 아닌가? 국가경제를 위해서 삼성의 죄를 덮자는 듯한 기사가 대국민 협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대한민국 최대의 광고주인 삼성을 위해서 일면 탑에 이러한 기사를 싣는 것이 정론지의 모습이라 주장할 것인가?

 

1면 톱에 기사를 배치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고 치자. 경제지의 특성상 경제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삼성의 경영차질을 염려하며 국가경제에서의 비중을 부각하는 것은 너무한 일이 아닌가? 그러한 염려라면 당연히 불법행위를 덮자는 주장이 될 수 있다. 법질서를 이렇게 유린했다면 매우 중대한 사건인데, 기업의 경영활동 차질을 이유로 덮고 넘어가는 나라가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글로벌 기업으로서 삼성이 롱런하기를 바라는 심정이라면 투명한 정도경영을 더욱 앞장서야 촉구해야할 것이 아닌가?

 

또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삼성의 총수일가가 범죄행위를 해서 처벌을 받는다고 기업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은 높지않다는 점이다. 삼성이 총수일가의 능력에 의존하지 않으면 경영이 어려워질 정도로 저급한 회사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 저급한 기업이라면 살을 도려내는 고통을 감수하고 도려내는 것이 오히려 국가경제를 위하는 길이다. 그런 수준의 기업은 시장의 진입장벽만 만들고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다. 삼성은 최소한 그 수준의 기업집단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우리국민은 여전히 삼성을 사랑한다. 세계속에서 발전하고 있는 우리의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수일가의 불법까지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 들이 그러한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도 얼마든지 더 좋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국민은 총수일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을 사랑하는 것이다.

 

기업과 그 기업을 소유 및 지배하는 자연인은 엄연히 실체가 구분된다. 기업이 영원히 존재하는 실체(Going concern)라면 자연인은 유한한 생명체에 불과하다. 총수가 수명을 다해도 기업은 영원히 발전하거나 존립할 수가 있는 것이다. 총수의 운명과 기업의 운명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총수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생각은 단견이다. 한마디로 국민을 협박하는 주장에 불과하다.

 

이제 삼성은 세계속에서 경쟁하고 있다. 지금까지 처럼 부당한 행위를 지속해서는 결국 도태를 면치 못할 것이다. 국내 유수의 경제지가 경제정의는 다 필요없고, 재벌총수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만을 염려하는 보도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그 것도 1면 톱에 그러한 염려를 부각시키는 것은 삼성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총수일가의 불법을 보호하려는 것으로 심각한 사태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경제전문지는 특정 재벌그룹의 사내홍보지와 구분되야 한다. 제발 품위를 지켰으면 좋겠다.

 

불법행위가 있다면 특검을 해서라도 밝혀서 차후에는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처벌해야 옳다. 삼성도 스스로의 잘못을 감추고 총수를 비호하는데 온갖 역량을 다 쏟을 일이 아니라 잘못이 있다면 처벌받고, 당당히 투명경영에 앞장서야한다. 그 길이 더 좋은 삼성을 만드는 길이다. 더 많이 대한민국에 기여하는 길이다. 돈으로 권력기관을 사서 잘못을 덮으려는 방식으로 덩치만을 키워서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에 대한 구구절절한 염려와 걱정을 담은 <매일경제신문>의 오늘자 일면 기사는 유감스럽다. 제발 더 이상 국민을 협박하지 말라!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태그:#매일경제신문, #삼성비자금의혹, #삼성의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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