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삼성비자금 관련 특검 법안이 발의됐다. 수십명의 검사들이 삼성 관리대상이 되어 뇌물을 받아 왔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특검 대상사건이다. 그런데 청와대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법안의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뜻밖이다. 아니, 청와대 스스로 특검수사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현 정권은 출발 초기 대북송금특검을 강행해서 남북대화와 교류에 찬물을 끼얹었다. 당시 대북송금과정이 실정법에 어긋났던 것은 남북교류를 예상하고 이를 적절하게 규율할 법규정비가 전무한 상태에서는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실정법에 벗어난 점이 있더라도 실질적 기소유예 차원에서 수사대상으로 삼지 말았어야 했다.

 

대북송금특검은 정치적으로는 우리당과 민주당의 분열을 가져와 상대적으로 보수세력들이 커가는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이제 정권이 끝나는 마당에 이번에는 꼭 성사시켜야 할 삼성특검법에 청와대가 딴죽을 걸고 나선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수사대상 넓다고? 당연히 넓어야 하는 것 아닌가

 

'수사대상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검찰 수사권을 무력화시키고 특검권한의 남용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는 청와대의 주장은 수사대상인 삼성과 검찰을 대변하는게 아닌가 의심이 들게 한다.

 

수사대상 범위는 당연히 넓을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수출의1/5, 세금의 10%, 5대그룹 매출의 50%이상을 차지하는 글로벌기업 삼성이 벌인 일이니 비자금의 범위가 넓고 깊을 것은 당연하다. 당연히 수사범위도 '지나치게' 넓을 수 밖에 없다. 비자금이란 본래 그 뿌리가 깊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밑바닥 뿌리까지 파고들어야 비자금이란 양분을 먹고 큰, 땅위의 가지며 잎과 열매를 정리할 수가 있다.

 

법안이 수사범위를 97년 이후로 정한 것도 김용철 변호사가 그때부터 삼성에서 일을 시작해서 잘 알고 있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10년의 소멸시효를 고려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제대로 하려면 그 이전 것도 모두 한뿌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단 전부 수사를 하고 기소만 하지 않는 것이 옳다.

 

검찰 수사권을 무력화 시키고 특검 권한의 남용을 가져온다는 청와대 주장 역시 터무니없다. 혹여 검찰이 이 사건을 특검과 동시에 수사한다면 검찰수사권 무력화나 특검권한 남용을 걱정할 수도 있겠으나 삼성비자금 관련된 검찰뇌물수수라는 분명한 범위안에서 특검이 파헤치라는 것인데 무슨 '무력화'라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히려 2002년 대통령당선 축하금에 비자금이 흘러갔다는 의혹을 청와대가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비친다.

 

'SBS 신주인수권부사채사건'이나 삼성계열사 이재용씨 주식매입사건이 현재 검찰에서 수사 중이고 에버랜드사건이 재판에 계류중임을 들어 검찰의 수사권과 법원의 재판권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는 청와대 주장 역시 이유가 되지 않는다.

 

검찰이 3년째 수사를 미루고 있고, 대법원에 가있는 에버랜드 사건 역시 피고인으로 되어 있는 박노빈, 허태학이 사실은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고 실제 범행을 한 사람은 따로 있으며 이러한 증거조작을 자신이 했다는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이 나온 마당이다. 당연히 특검을 통해 처음부터 다시 철저히 파헤쳐야 할 내용이다.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특검을 할 이유가 없다. 재판중이라 해서 진범을 밝혀내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펴는 것을 보면 정말로 청와대가 의심스러워진다.

 

200일의 수사기간이 길다는 주장도 그렇다. 글로벌기업 삼성과 이에 유착되었다고 주장되어지는 검찰 요직의 검사들을 수사하는데 고작200일이라니.

 

마니 플리테, 깨끗한손. 이탈리아는 정경유착의 부패 정치인, 관리들, 기업인들을 수년 동안 끝까지 수사해 3000명을 처벌했다.

 

삼성비자금과 검찰, 국세청, 재경부를 비롯한 정부부처에 대한 로비의혹을 수사하는 일은 우리사회가 현재 처해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파헤치는 어마어마한 과업이다. 따라서 상설에 가까운 독립적인 수사기구를 만들어 수년 동안을 애써도 제대로 될까말까한 일이다. 특별검사들이 수년씩 활동을 한 미국의 예를 보라.

 

삼성비자금사건을 잘 파헤치려면 이번 특검을 기왕의 여러 특검처럼 운용해서는 안 된다.
우선 상당한 기간을 보장해야 한다. 200일은 오히려 짧다. 사실 특검이 활동을 시작해도 물증없이 벌어지는 비자금조성이나 로비를 밝혀내는 일은 매우 어렵다. 김용철 변호사가 공개적으로 일을 터뜨리기 전에 그의 진술에 나오는 여러 사실들에 대해 압수, 수색, 체포 등의 강제수사를 통해 기습적으로 증거를 확보했어야 했다. 그렇게 했어도 제대로 수사가 될까말까한 일이다.

 

이번에 검찰은 최근 몇 년 동안 정치인이나 경제인들 수사를 통해 쌓아온 얼마간의 신뢰를 모두 잃었다. 하지만 워낙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일어난 일이 그냥 묻힐 리가 없다. 오랜 기간을 두고 꾸준히 수사해 간다면 결국은 상당부분 그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사필귀정이다.

 

 

대검 중수부나 특수부보다 강한 '특검팀' 만들자

 

두 번째로 특검의 구성도 어려운 문제다. 검찰이 특검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검찰의 도움 없이 수사를 제대로 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1999년 조폐공사파업유도특검 때도 그랬다. 파업을 유도한 대전지검 공안부를 수사하라고 특검법에 명시했지만 검사들을 파견받아 수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현직 공안부 검사와 공안부검사 출신 변호사가 특검 내에 들어와 수사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심지어 그 변호사는 수사대상인 대전지검 공안부검사와 직원들을 특검 사무실에 데리고 와서 파업유도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대전지검에서 가져온 서류들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절도의혹을 받고 있는 피의자가 검사에게 압수물을 돌려달라고 협박하는 꼴이었다.

 

지금 검찰에는 공직자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유능한 검사들이 많이 있다. 이들을 잘 선별해서 대검 중수부나 특수부보다 훨씬 유능하고 강한 수사팀을 꾸려야 한다. 지휘를 특검이 하는 것이지 사실상 검찰 특별수사부 정도의 위상을 갖추어야 한다. 사실 특검에 김용철 변호사가 들어가면 그 누구보다도 가장 확실하게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이번 특검은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정권 차원에서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지원을 해나가야 한다. 삼성비자금과 로비, 편법상속문제는 진보, 보수를 떠나서 우리사회가 한 단계 올라 서는데 있어 꼭 풀고 가야할 숙제다.

 

글로벌 기업 삼성에게는 더더욱 필요한 일이다. 문자 그대로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려면 '투명성과 공익성'이 반드시 전제된다. 기업으로서의 삼성이 효율성이 뛰어나고 경쟁력이 있음에도 대주주나 일부 최고위 임원진들의 전근대적 행태 때문에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면 삼성과 우리사회 모두에게 커다란 불행이다.

 

삼성 스스로 자기 모순을 도려내기에는 병이 너무 깊어졌다. 이번 특검은 삼성과 우리사회, 국가를 치료하는 명의가 돼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김형태 변호사는 전 조폐공사 파업유도 특별검사보와 전 천주교 인권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태그:#삼성비자금, #김용철, #청와대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