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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에 발행된 고등학교 <국사>
 2007년에 발행된 고등학교 <국사>
ⓒ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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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간 한국인들이 학교 수업시간 때마다 자주 듣던 표현 중에 하나가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것이다. 이 표현은 국사 교과서 앞부분에도 꼬박꼬박 등장하곤 했다.

일천 번이 넘는 외세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단일민족의 순수 혈통을 지켜왔다는 사실에 대해 한국인들은 모종의 자긍심을 갖고 있다. 동시에 이것은 한국인들의 배타성을 부채질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단일민족’이라는 표현이, 2007년에 발행된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2쇄에서 슬그머니 빠져 있다. 현행 고등학교 <국사> 어디를 보아도 ‘단일민족’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다. 머리말이나 앞부분에서도 ‘우리 민족’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할 뿐이다.

국사편찬위원회가 2007년도 국사교과서를 발행하면서 “단일민족 표현을 삭제하겠다”고 공표했다는 언론 보도를 들은 적이 없다. 이처럼 지난 수십 년간 국민들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주입한 ‘단일민족’이라는 표현을, 한국정부가 국사 교과서에서 슬그머니 삭제한 이유는 무엇일까?

현행 국사교과서 발행에 연구진으로 참여한 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국사편찬위원회가 단일민족 표현을 뺀 이유는 바로 고구려사 때문이라고 한다. 그에 말에 의하면,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의 차원에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고구려인들뿐만 아니라 말갈족 등 여러 민족(혹은 종족)을 포괄한 대제국인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에 빼앗기지 않으려면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명제를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교과서 집필진 및 연구진의 대체적인 의견이었다고 위 관계자는 전했다. 단일민족을 고수하게 되면 ‘고구려사=한국사’라는 주장을 굳게 밀고 나가기 힘들다는 것이 내부의 분위기였다고 그는 덧붙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삼국사기> 등에 따르면 고구려·백제는 한 계통이라는 게 인정되지만, 신라·가야의 경우에는 고구려·백제와 한 계통이라는 것이 명확히 인정되지 않는다. 엄밀한 잣대를 들이대자면, 상호 별개의 혈통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한 일이다.

이처럼 한국인들이 잘 알고 있는 <삼국사기>만 놓고 보아도, 한민족이 과연 단일민족인가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이 그동안 ‘우리는 단일민족’이라고 믿은 것은 다분히 정치적 선전의 산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같은 상식적 잣대를 기준으로 할 때에도, 국사편찬위원회가 2007년 국사교과서에서 ‘단일민족’ 표현을 삭제한 것은, 비록 때 늦은 감은 있지만, 매우 바람직한 조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국사편찬위원회가 고구려사 문제라는 현실적 난제에 대한 임기응변책으로 그런 결단을 내린 것이나, 이런 중대한 변화에 관해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은 현명하지 못한 태도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국사편찬위원회가 한민족의 혈통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는 것은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역사가 어떠했는지에 관계없이, 이 같은 전환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올바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최소한 수십만 명의 ‘이방인’들이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국인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또 한국인들 역시 종전과는 달리 국제적 교류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인들이 종전처럼 ‘단일민족’ 신화에만 얽매여 산다면, 이는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로 만족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단일민족’ 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에 불과한데,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토대로 현재 및 미래의 실제적 삶을 구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차제에 한국사회는 민족 획정의 기준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재검토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종전처럼 혈통 위주로 한민족의 범위를 획정한다면, 현실과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고구려사나 발해사도 제대로 지킬 수 없을 것이다. 또 무엇보다도 그것은 한국인들을 지구촌 시대의 낙오자로 만드는 원인이 될 뿐이다.

한국인들이 과거의 역사를 지키면서 좀 더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려면, 한문으로 된 족보에 이름이 없더라도 또 한국어가 좀 서툴더라도 또 피부색이 좀 다르더라도, 한국 사람들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는 공동체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우리 민족’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포용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한민족의 범위를 관대하게 인정한다면, 한민족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그만큼 늘어나게 될 것이다. 한민족이 혈통에 구애됨 없이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 울타리가 되어 준다면, 한민족은 전 세계로부터 우수한 사람들을 보다 더 많이 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한민족을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 나간다면, 한민족의 생명력은 그만큼 더 질기고 풍요롭게 될 것이다.

한민족은 단일민족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게 아니라, 복합민족이었기 때문에 그 힘을 바탕으로 나라와 영토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신화에 불과한 단일민족 논리에 연연하지 말고, 복합민족이라는 사실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민족의 외연을 끊임없이 넓혀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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