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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의 경제공약을 잘 살펴보면, "공정한 경쟁을 추구할 수 있는 시장 경제"를 표방한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4조 2교대제'와 '평생학습'은 국민 개개인의 총체적인 경쟁력 강화를 추구하는 공약이며, 한미 FTA에 있어 의료·교육시장 개방을 중요시 여긴 것 역시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재벌 하도급 비리 척결'과 '건설 부패 척결'을 주장하는 것 역시 흥미롭게 지켜볼만 합니다. '부패'는 전반적으로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방해합니다. 재벌 주도의 부패 구조는 약자인 중소기업과 서민의 경쟁력 강화를 방해합니다. 문국현 후보가 주장하는 '8% 성장론'의 핵심은 공정한 경쟁을 위한 경쟁력 강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장 경제에 있어 "경쟁의 성립 가능성"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신자유주의 이론의 핵심은 시장의 무차별적인 자유를 주장하면서 경쟁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강자에게 모든 것을 몰아주겠다는 것입니다.

 

약소국이 금융시장을 개방하거나 자유경제협정을 체결하면서 경제기반 자체가 해외기업으로 넘어가면서 자체기업을 육성하지 못하는 사례를 참고할만 합니다. 멕시코나 아르헨티나 등의 중남미 국가의 경제를 참고하면 알 수 있는 일이죠.

 

이런 사례는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가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를 통해 체계적으로 이론을 전개한 바 있으며, 정승일 교수와의 대담 모음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도 쉽게 해설한 바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그가 도입을 주장한 이론은 스웨덴식 대타협입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재벌에게 무거운 세금과 사회적 역할을 요구하면서 (족벌 체제를 비롯한) 그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재벌을 사회와 국가 시스템의 영향력 아래에 두면서 해외투기자본의 침투에 방어해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진중권, '장하준 이론'을 제대로 이해해야

 

진중권씨는 2년 전, TV 대담 프로그램에서 장하준·정승일 교수와 '박정희 논쟁'을 비롯한 전반적인 경제이론 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답지 않은 허술한 논리 전개를 펼쳤습니다.

 

장하준·정승일 양자는 "박정희는 민주주의자도 아니었고 자유주의자도 아니었다"는 전제, 그리고 "박정희는 시장주의자도 아니었다"는 전제 아래, 그의 권력이 재벌을 압도할 정도로 강했던 경향이 '중화학공업 육성' 등 성장정책을 펼치는데에 있어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주장을 전개합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급격한 경제성장 과정에서는 역사적으로 노동 착취와 저임금 구조의 임금체제를 거치는 경우가 많으며, 박정희는 여타의 독재자들과는 달리 폭력으로 착취한 부를 '재투자'함으로써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쳤다는 논지입니다. 정확히 말해 "세계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비교적 자립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쾌도난마 한국경제> 53pg)는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자본을 비판하면서 사회주의자들이 나타난 계기, 확실히 산업혁명 이후 유럽 일대의 경제성장은 일어났지만 자본가들의 폭력적인 착취로 인해 '빈부격차'가 극심해졌다는 것 자체에 있습니다.

 

하지만, 진중권씨는 그답지 않은 '이분법적인 논리'로 양자를 대한 적이 있습니다. 장하준·정승일 교수는 박정희식 경제개발을 평가하면서, "박정희의 정책은 신고전파 경제학적인 시장 경제 노선과 너무 다르다. 오히려 맑스주의나, 좀 넓게 보면, 고전파 경제학적으로 경제 발전을 이해할 때 갖출 수 있는 시각"(<쾌도난마 한국경제> 57pg)라고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진중권씨는 여기서 '맑스주의'라는 부분만 눈여겨본듯 싶습니다. 2년 전, <TV 책을 말한다>라는 대담 프로그램에서 "박정희가 왜 사회주의자냐"는 주장을 전개하다가, "정책의 일부 경향이 사회주의적이었다"는 반론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진중권씨의 인식이 여전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박정희가 사회주의적이었다? 절대로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세 가지를 다 할 수 있습니다. 국가주의적 통제를 할 수 있어요. 파시즘처럼. 그러다 완전 자유주의로 갈 수도 있는 겁니다. 그 다음에 뉴딜식 사회복지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는 겁니다.

 

이 세 가지는 자본주의가 택할 수 있는 옵션에 속하지 '어느 게 사회주의냐', 이렇게 얘기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사회주의는 국가가 경제에 조정적 개입을 하는 체제가 아니라 사회복지적 개입을 하는 체제거든요. 그런데 저 사람들 얘기하는 건 경제조정적 개입이에요. 그걸 사회주의로 본다는 게 황당하다는 거죠." -<프레시안> 12일자 기사 <"사회적 대타협? 삼성을 보세요">-

 

경제학에는 다양한 노선과 방향이 존재합니다. "박정희식 경제정책의 일부 경향이 사회주의적"이었다는 주장은, 다양한 경향 중에 하나였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진중권씨는 '박정희가 사회주의적'이었다는 논지 단 하나만을 표방해 반론을 펴 설득력을 떨어뜨렸던 것입니다.

 

이런 경향은, 당시 "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던 장하준 교수에 "자유기업원이 그런 주장을 한다"고 반론했던 것에서 다시 한번 드러납니다. 정승일 교수는 이에 대해 "자유기업원이 하는 주장도 맞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재반론했죠. 경제학에 있어 '일부분'을 '전체'로 몰아가며 딱지를 붙이는 것은 논쟁 과정에서 결코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중권씨는 "내가 생각하는 사회주의는 국가가 경제에 조정적 개입을 하는 체제가 아니라 사회복지적 개입을 하는 체제 아니냐"는 논거로 "박정희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라는 주장을 전개합니다만, 엄밀히 밀해 그들이 언급한 '사회주의'는 스탈린식 국가사회주의였습니다.

 

게다가, 박정희는 경제정책을 펼 당시에는 '사회주의자'로서 경제개발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그 일부 경향을 받아들인 것이었습니다. 복잡한 경향이 하나의 슬로건과 '거시경제정책' 전반에 담길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스웨덴식 대타협, '재벌'을 방치하자는 이론 아니다

 

물론, 진중권씨는 본인이 생각하는 사회주의를 '사회복지적 개입'으로 봄으로써,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주의를 피력했습니다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들이 주장하는 '박정희가 일부분 받아들인 사회주의'는 스탈린식 국가 강제의 경제개발 시스템을 의미하는 '스탈린식 국가사회주의'였습니다.


사회주의도 스펙트럼이 다양하죠? '사회복지적 개입'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들은 '좌파'임을 주장한 적도 없고, 애초에 그들의 '사회적 대타협'을 사회주의 이론으로써 거론한 적이 없기 때문에, 논점이 일탈된 답변인 것입니다.

"장하준 씨가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 얘기하잖아요? 삼성을 보라는 거예요, 지금. 과연 대타협의 문제냐는 겁니다. 삼성이 노조를 인정 안 하는 겁니다. 타협 한 번 해보라고 해요. 어떤 타협안이 가능한지. 그리고 스웨덴에도 재벌이 있다? 스웨덴 재벌하고 한국 재벌이 같으냐는 겁니다.

 

(재벌의 성격을 비유적으로 말하면) 스웨덴은 입헌군주국이고 우리나라는 봉건군주국이에요. 재벌 체제가 완전히 다른데 같다고 하고. 그리고 그나마도 스웨덴이 전 세계에서 유일한 겁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재벌 해체하자고 한다는데 해체할 힘이 있습니까. 해체 안 됩니다, 결코. 재벌 해체한다는 게 기업군을 해체한다는 게 아니잖아요. 다른 차원의 문제예요."

 

진중권씨의 주장은 "지금의 삼성같은 재벌 집단과 대타협이 가능하겠느냐"는 주장을 전개합니다만, 장하준 교수는 여기에 분명히 살을 붙였습니다. "일국의 토양과 노동자의 힘이 필요하기에 타협을 하지 않으면 일하기 힘들다"면서 "족벌 체제를 인정해주는 대신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허용하고 세금도 많이 내라"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에 구체적인 살을 붙인 이가 바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입니다. '재벌 하도급 비리'와 '건설 부패'를 척결하고, 그 이후에 '대타협'을 시도하겠다는 것이 그의 경제공약입니다.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는 강자의 횡포부터 척결하겠다는 뜻이죠. 무턱대고 '재벌'과 타협하자는 주장이 아니죠.

 

게다가, 장하준 교수는 "재벌 해체"를 주장한 적도 없다는 것 역시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하며, "스웨덴이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했기에 안된다"는 주장 역시 시도해보고 나서 평가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부패 척결'이나 '거시경제 정책 전환'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도'를 했느냐, 안했느냐는 것. 그런 부분이 전제돼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삼성 비자금 사태', 제대로 대처하면 '대타협'의 길이 보인다

 

'삼성 비자금 사태'는, 고질적인 정경유착과 재벌의 뇌물 공여, 그리고 '삼성은행 소유 의혹'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경유착이나 뇌물 공여가 국가정책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드러내는 사태입니다.

 

진중권씨의 언급대로, '지금의 삼성'과는 '대타협'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사태를 철저하게 파헤치고 의혹이 사실로 명확하게 드러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대처해 재벌의 횡포를 방지하는 선례를 남겨놔야 합니다. 그리고 이 횡포 방지가 어느 정도 보장된 시점에서, '노동자의 경영 참여'와 '세무 행정 투명화', '사회사업 참여 보장'을 명시적으로 법에 담을 수 있다면 '대타협'의 길이 보일 것입니다.

 

소버린과 SK의 경영권 분쟁, 그리고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문제 등을 기억해보시길 바랍니다. 신자유주의는 재벌·중소기업을 가리지 않습니다. 신자유주의는 본질적으로 금융자본과 투기자본의 천국을 보장하는 시스템, 그 피해대상은 '무차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장하준 교수는 "재벌과의 대타협을 통해 신자유주의에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문국현 후보가 어느 정도 보이고 있다고 봅니다. '삼성 비자금 특검'이 거론되고 있고 '반부패연대'의 고리가 드러나고 있죠? 이런 고리들이 제대로 보장돼 잘 연결될 수 있다면,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드러났던 '대타협'은 꿈만은 아닐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삼성 비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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