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고고미술실 다음으로 간 곳은 문헌자료실이다. 이곳에는 말 그대로 문서와 책이 전시되어 있다. 문서에는 교지·서간·명문·입안·분재기 등이 있으며 책에는 불경과 사서(史書), 문집 등이 있다.

경기도 박물관에 있는 문헌자료는 약 4000점이나 되는데 그 중 3000여점이 개인이나 문중으로부터 기증을 받거나 위탁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유물은 경기도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11세기 고려시대 인쇄된 대방광불화엄경 제1권(국보 제256호), 고려 후기(1315년)에 발행된 천태사교의(보물 제1052호), 조선 초(1496년)에 한글로 쓰여진 진언권공(보물 제1053호), 조선 중기 선조 때(1604년) 발행된 원릉군 원균 선무공신 교서(보물 제1133호) 등이 있다.

 원릉군 원균 선무공신 교서의 앞 부분
 원릉군 원균 선무공신 교서의 앞 부분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전시장에는 이들 중 원릉군 원균의 공신교서와 청원군 심대호의 공신교서만이 보인다. 1604년 이 공신교서를 받은 원릉군 원균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라이벌이었던 무장으로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를 받고 있는 분이다. 이순신 장군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원균 장군에 대한 이야기 중 상당수가 우리에게 잘못 알려져 있다.
   
이 교서에는 임진왜란 때 경상도 수군 절도사로 왜군을 물리치는데 크게 기여했고, 정유재란 때 수군 통제사가 되어 왜적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원균(1540∼1597)의 공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물론 이것은 원균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중간 부분에 나오는 공신의 명단을 통해 여러 사람이 함께 받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때 1등 공신이 된 사람이 바로 이순신과 권율과 원균이다.

 1등 공신의 명단: 이순신, 권율, 원균의 이름이 보인다.
 1등 공신의 명단: 이순신, 권율, 원균의 이름이 보인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1층으로 내려가 민속생활실에 들어가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의식주, 세시풍속, 의례와 관련된 유물이 주를 이루고 민예품들이 부차적으로 진열되어 있다. 이곳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없다. 모양이나 장식 등이 다른 장과 상과 함이 여럿 있다. 의류도 꽤나 많이 전시되어 있는데, 잘 몰라서 자세히 살펴볼 수도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민속생활실 옆에는 서화실이 있다. 서화실에는 말 그대로 글씨와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사실 글씨와 그림에 대해서는 누구나 조금은 알기 때문에 박물관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공간이다. 더구나 글씨와 그림에 대한 심미안이 있다면 서화 감상이 훨씬 더 재미있을 수 있다.

 원교진묵으로 알려져 있는 글씨
 원교진묵으로 알려져 있는 글씨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글씨로는 원교 이광사의 작품과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 있다고 하는데 보지를 못했다. 나중에 박물관 도록을 통해 확인해 보니 원교의 작품은 원교진묵(員嶠眞墨)이라는 이름으로, 추사의 작품은 보담제왕복간(寶覃齊往復簡)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추사의 글씨는 진본처럼 보이는데, 원교의 글씨는 느낌이 조금은 다르다. 우리가 통상 보아오던 원교 이광사의 서체와는 조금 다르다.

 원교 이광사가 8촌형을 위해 쓴 묘비명: 충주시 가금면 장미산성에 있다.
 원교 이광사가 8촌형을 위해 쓴 묘비명: 충주시 가금면 장미산성에 있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이광사의 글씨는 동국진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전통적인 서체를 우리 식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선이 가늘고 글자가 조금은 삐뚤빼뚤하다. 그런데 이곳에 전시된 원교진묵의 글자는 너무나 단정하고 정직하다. 전문가들의 감식을 거쳐 진열되었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박물관이 유물을 세탁한 꼴이 되고 만다. 추사 글씨의 진위에 대해 지금도 논쟁이 있는 걸 보면 글씨를 위조하기가 가장 쉬운 모양이다.

그림으로는 풍경화·풍속화·기록화·초상화·민화 등이 있다. 풍경화는 전통적인 산수화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겸재 정선의 양화답설도, 긍재 김득신의 취선도가 유명하다. 겸재의 그림에는 양화답설(楊花踏雪)이라는 제목과 낙관이 보이고, 긍재의 그림에는 낙관만이 보인다. 이들 그림에서는 조선 후기의 진경산수 또는 실경산수를 볼 수 있다.

 이인문이 그린 것으로 설명되어 있는 그림: 그러나 진본인지 여부가 의심스럽다.
 이인문이 그린 것으로 설명되어 있는 그림: 그러나 진본인지 여부가 의심스럽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다른 쪽을 보니 보존상태가 썩 좋지 않은 풍경화가 하나 걸려 있다. 안내문을 보니 이인문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쓰여 있다. 제목은 ‘소나무 아래 피리 부는 신선’이라고 되어 있다. 이 그림 역시 진품일까 하는 의심이 든다. 붓의 터치라든지, 인물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다. 추정이라고 했으니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이것 역시 경우에 따라서는 세탁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 그림은 헌종가례 진하계병이다. 헌종이 가례를 치른 것을 축하하는 모습을 그리고 양쪽에 예문관 제학 조병구의 글과 참석한 관리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총 8폭으로 된 병풍이다. 가운데 두 폭에 가례와 진하 장면이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조선 후기 왕실의 행사 모습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헌종가례 진하계병의 일부분
 헌종가례 진하계병의 일부분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기묘명현 이자의 자취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