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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 6명이 같은 시간에 한 자리에 설 것이라는 기대는 불발로 끝났다.

 

6일 오후 한국농업경영인중앙회(이하 한농연)는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 경기장에서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이인제 민주당 후보,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 심대평 국민중심당 후보가 참석했다.

 

그러나 애초 예상과 달리 이들이 한꺼번에 모이지는 못했다. 행사는 오후 2시에 시작됐지만 이명박, 정동영 후보가 1시간 정도 지각을 했기 때문이다. 두 후보가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인제 후보와 심대평 후보는 이미 현장을 떠났다.

 

결국 대선 후보 6명은 같은 자리에서 연설은 했지만, 함께 얼굴을 마주하지는 못했다. 이날 토론회는 대선 후보들의 몫은 아니었다. 대선 후보들은 연설을 한 뒤 현장을 떠났고, 토론은 각 후보 캠프의 정책담당자들이 나섰다.

 

이날 현장에는 약 1천여 명의 농민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대선 후보들이 연설 할 때 박수와 환호를 보냈고, 때로는 야유와 욕설을 터뜨렸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준 현장이었다.

 

각 후보자들의 연설과 현장의 분위기를 짧게 정리해봤다.

 

[권영길 후보] 화끈한 연설 뜨거운 박수

 

확실히 권영길 후보는 농민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박수와 환호가 가장 많이 터졌고 곳곳에서 "권영길!"을 연호했다.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18일 동안 만인보 행사를 벌였던 권 후보의 목소리에는 힘이 잔뜩 실렸다.

 

권 후보는 "지금 한국 농업은 거의 숨통이 끊어질까 말까 하는 상황"라며 "90년 이후 최대 흉작을 기록한 이번 쌀농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이 이 자리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권 후보는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이 아니라 누가 실천할 수 있느냐"라며 "나는 농민을 살리기 위해 한미FTA 저지를, 노동자를 살리기 위해 비정규직 철폐를 내세웠다"며 오는 11일 100만 민중대회에 많이 참석해줄 것은 요청했다.

 

권 후보는 주요 정책으로 ▲ 식량주권 실현 ▲ 농업의 다원적 기능 확보 ▲ 남북의 상호보완적인 농업 체계 실현을 내세웠다.

 

[이인제 후보] "콩나물 처럼 쑥쑥 키우달라"

 

"권영길 후보나 나나 둘 다 대권 삼수생인데, 이제 대통령 좀 만들어 달라."

 

이인제 후보의 말에 농민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이 후보는 자신의 경험과 민주당 간판을 내세우며 농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농민들은 냉소가 아닌 즐거운 박수를 이 후보에게 보냈다.

 

이 후보는 "대권 후보 중 골수 농민의 아들은 나 하나 뿐"이라며 "민주당은 서민과 중산층을 부자로 만들어 주는 정당"이라며 농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이어 이 후보는 "나는 정치에 입문한 이후 주로 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고 노동부 장관을 지내는 등 노동자를 위한 혁명적 개혁을 단행해봤다"며 "경기도지사 시절에도 광대한 경기도의 농촌을 샅샅이 누비며 농민 문제 해결에 앞장선 경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 후보는 콩나물에 자신을 비유하며 시작할 때처럼 웃음으로 연설을 마무리 했다.

 

"어릴적 아침에 일어나며 콩나물 시루에 물 주는 게 내 일이었다. 자고나면 콩나물이 쑥쑥 자라 있었다. 내 지지율이 지금 바닥을 기며 꿈틀거리지 않고 있다. 여러분들이 내 연설을 잘 소화해주시고, 내 지지율을 콩나물 처럼 쑥쑥 높여달라."

 

[심대평 후보] "농가소득안정 특별법 제정"

 

심대평 후보의 연설은 평이했다. 농민들도 크게 반기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심 후보는 정동영 후보의 연설이 진행될 때 자리를 떴다.

 

심 후보는 "한미FTA로 이익을 보는 이들에게서 재원을 확보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게 주는 농가소득안정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농가부채의 원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농지은행 조건부 환매제도를 통해 농가부채의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말했다.

 

심 후보는 농업 정책으로 ▲ 농어촌의 문화상품화를 통한 지역 활성화 ▲ 쌀 생산 중심에서 식품산업 중심으로 재편 ▲ 전국 단위의 농업회의소 설치를 내세웠다.

 

[문국현] 아직 미숙한 연설, 구체적 정책

 

문국현 후보는 아직 연설에 익숙하지 않아 보였다. 그는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었지만, 태도와 말투에서는 기존 정치인 후보들에 비해 많이 어색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가끔씩 "문국현!"을 연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문 후보는 한중FTA 등을 언급하며 "농업과 농민과 농촌을 생각하지 않고, 여타 산업만을 위해서 무조건 진행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며 "농민이 더 이상 제조업을 위한, 서비스업을 위한 희생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문 후보는 "농어촌과 도시의 주민이 순환하고 상생하는 나라, 그때 비로소 우리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고향세'를 만들어 농촌과 산촌, 어촌이 도시와 삶의 질이 다르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문 후보는 "21세기의 농업도 지식기반 가치창조경영을 해야 한다"며 "농민들과 농촌에서의 학습과 교육이 농민을 세계적 지식 경영인으로 만들 것"이라며 기존의 평생 학습을 강조했다.

 

문 후보는 구체적 정책으로 ▲ 국민의 먹을거리 기본권 보장 ▲ 농민의 생활권 보장 ▲ 상생과 순환의 농촌공동체 구성 ▲ 지역 먹을거리 체계 확립(로컬푸드 시스팀) 등을 제시했다. 
 
[정동영 후보] "넥타이도 풀고 왔는데..."

 

이날 정동영 후보는 넥타이를 착용하지 않았다. 그는 "넥타이 메고 농사짓는 사람 보지 못했기 때문에 풀고 왔다"며 자신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정동영 후보는 진지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그에게 가장 많은 야유와 욕설을 보냈다. 곳곳에서 "참여정부에서 뭘 했느냐!" "여긴 왜 왔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정동영 후보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연설을 했다. 정 후보는 "공격적이고 적극적으로 개방의 파도를 넘자"며 "대통합민주신당은 (한미 FTA에 따른) 피해 보존 대책과 부채 감소 대책을 확실히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 후보는 "앞으로의 10년을,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13년처럼 허송세월로 보낸다면 한국 농업의 미래는 끝장 난다"며 "서로 역할을 분담해 다가올 10년을 잘 활용하자"고 말했다.

 

또 정 후보는 이명박 후보를 겨냥해 "지난 60년 동안 상상해보지 못했던 평화협정 시대가 곧 시작된다"며 "이번 대선은 서민을 위한 경제와 특권층만을 위한 경제와의 대결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후보는 정책으로 ▲ 유통 개혁을 통한 농산물 판매 촉진 ▲ 농업 기반 시설 확충 ▲ 남북 농업 협력 강화 등을 내세웠다.

 

[이명박 후보] "내가 바보인가, 자세히 알고 공격하라"

 

이명박 후보는 정동영 후보의 연설이 진행될 때 현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마지막으로 나선 이 후보는 특별한 원고 없이 손짓을 해가며 당당하게 연설했다. 그리고 기업과 행정기관에서 성과를 만들어 냈던 자신을 적극 내세웠다. 가끔씩 욕설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확실히 그는 많은 박수를 받은 후보였다.

 

이 후보는 처음부터 "대선이 다가오고 있어서 그런지 '말의 잔치'가 크게 번성하고 있다"며 "부질 없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시작했다.


이 후보는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100조 가까운 돈을 농촌에 쏟아부었지만 오히려 농가 부채는 10년 전 가구당 900만원에서 2700만원 세 배로 늘었다"며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의 농업 정책을 비판했다.

 

이어 이 후보는 "한미FTA는 피할 수 없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기 때문에 반대하기보다는 이길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며 "농민들 스스로 극복의 당사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 후보는 정동영 후보를 겨냥해 "내가 바보인가? 부자들만 들어가는 학교를 내가 만든다고? 이게 정치지만 자세히 좀 알고 공격했으면 좋겠다"며 날을 세웠다.


태그:#정동영, #문국현, #이명박, #이인제, #권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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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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