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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 종이돈에 실릴 '위인' 선정이 끝났답니다. 한국은행이 드디어 후보를 두 명으로 압축해 선정했답니다. 고액권 초상 인물 선정을 위해 올해 5월 각계 전문가 8명과 한은 부총재, 발권국장 등 10명이 참여하는 '화폐도안자문위원회'를 구성, 후보 인물 20명을 선정했던 한국은행이 드디어 결론을 발표했습니다. 10만 원권엔 백범 김구, 5만 원권엔 신사임당을 선정했답니다. 이제 2009년에 나올 일만 남았답니다.

 

선정 사유요? 한국은행은 "김구를 화폐 인물로 선정함으로써 독립애국지사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한편 통일의 길을 모색한 지도자로서 미래의 바람직한 인물상을 제시하는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답니다.

 

그러니까 백범 김구가 선정된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1)독립 애국지사라서 존경심 표함 2) 애국심 고취 3) 통일의 길을 모색한 지도자로서 미래 바람직한 인물상 제시

 

그렇다면 신사임당은 어쩌다 뽑혔을까요? 독립 애국지사도 아니고요. 애국심을 고취할 일을 하지도 않았고요. 지도자로 미래 바람직한 인물상을 제시하지도 않으셨는데요?

 

한국은행은 신사임당을 후보로 선정한 이유를 "우리 사회의 양성 평등의식 제고와 여성의 사회참여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문화 중시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한편 교육과 가정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답니다.

 

보기 좋게 구분하면 이유는 네 가지입니다. 1)우리 양성평등 의식 제고 2) 여성의 사회 참여에 긍정적 기여 3) 문화 중시 시대정신 반영 4) 교육과 가정의 중요성 환기

 

지금 장난 하시나요? 여성을 화폐에 등장시켰으니 '양성평등 의식이 제고' 된다고요? 신사임당이 누굴까요? 대한민국 국민치고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신사임당?" 하면 어린애들도 압니다. 이순신 하면 '거북선' 하듯이, 신사임당 하면 '현모양처'입니다. 가정을 지키고, 율곡 이이를 잘 가르쳐 키웠다는 이야기지요. 율곡 이이는 또 누구입니까? 유교 사상인 대표적인 성리학자입니다. 이 인물을 잘 키웠고, 유교에 따르는 '현모양처' 표본이 신사임당입니다.

 

사회 참여요? 전혀 하신 바 없습니다. 집에서 사대부 마나님답게 곱게 자식 키우시고 살림 하셨습니다. 그림 잘 그렸다고 이름도 높으시지만요.

 

 

그러니까 여성은 남편 뒷바라지를 하고, 자식을 돌보는 일에 전념한 분을 앞세워서 지금 '양성평등' 의식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내 '가족밖에 몰라"하신 분을 앞에 놓고, 지금 "여성의 사회 참여에 긍정적 기여"라고 한국은행은 말씀하시는 겁니다.

 

지금, 장난하십니까? 몰라서 그런 걸까요? 알면서 시침 뚝 떼시는 건가요? 아니면, 양성평등과 여성의 사회참여란 바로, 여성이 '전업주부'로 바깥 일하는 남편을 뒷바라지 하고, 자라는 자식을 잘 키워내는 거라고 생각하신다고 지금 고백하시는 건가요?

 

신사임당과 같이 선정된 인물을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다른 한 분이 백범 김구이시잖아요. 어쩌면 백범 김구를 선정한 이유와 신사임당을 선정한 이유가 이렇게 천지 차이일까요? 백범 김구는 '애국지사'라서 뽑았고요. 신사임당은 '교육과 가정의 중요성' 때문에 뽑으셨다면서요?

 

그러니까 지금 남성은 '나라'를 구하고, 여성은 '가정'을 구하라는 거 아닌가요? 이런 분들이 모범이라고요? 참, 밖에서 회사일 하느라 허덕이고 퇴근하면 얼마 없는 시간 쪼개 자식 해먹이고 가르치고 집안일 홀로 다하는 여성들 약 올리는 소리로 보입니다.

 

그게 아니라고요? 그럼 남성분은 왜 가정을 잘 돌보고, 자식 교육을 중시 여긴 분을 뽑지 않으신 걸까요? 그런 분이 없어서인가요? 가정이 그리 중요하다면, 여성한테만 왜 가정의 중요성 운운하는 걸까요? 설마 남성분이 신사임당을 본받아 '가정의 중요성과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진 않을 텐데 말이지요?

 

남자들이 여성에게서 역할 모델을 찾지 않는다는 건 상식입니다. 사람은 자기와 같은 성에서 모델을 찾습니다. 설마 한국은행측은 남자 아이들이 신사임당을 보며, "으음, 나도 신사임당처럼 '현모양처'가 될 거야" 이런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시겠죠? 신사임당을 역할 모델로 제시할 때, 그건 어쨌든 여자아이들 몫입니다. 어른 여자 몫입니다. 여자들이 신사임당을 보고 본받아, '현모양처'가 되길 바란단 소릴 하신 겁니다.

 

그렇다면 백범 김구를 뽑은 사유를 보죠. 딱 한 마디로 '애국'과 '지도자상'입니다. 나라를 구하고, 나라를 지도한단 거죠. 아. 멋집니다. 남자분은 '가정'은 팽개쳐도 '나라'를 구하면 되고, 이 나라의 '지도자'로 자라납니다. 그가 그 '애국'을 하기 위해서, 분명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했으리란 건, '김구 위인전'을 읽지 않았거나 바보가 아니라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가정'과 '교육'이 중요하다면, 왜 남자 위인에게선 그런 걸 찾지 않을까요? 간단합니다. '가정'을 돌보고, '자식'을 돌보고, '가사'를 하는 건, 그저 '여자 몫'이라는 뿌리 박힌 생각이 그 뿌리를 기반으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거죠.

 

뭐 이 지폐 인물 선정하는데 '밀실' 선정 어쩌고 하는 이야긴 구차해 하지 않겠습니다. 다 나온 이야기고요. 여론 조사 한다고 해놓고, 실제 여론조사에서 몰표 비슷하게 나온 광개토대왕과 단군은 후보에도 끼지 못했으니까요. 그렇게 금방 '구색'으로 끼워놓은 게 들통 나고 탄로 날 거짓말을 왜 하시는진 묻지 않겠습니다. 이분들 좋아하시는 게 '충효'이신데, 충효가 그거 아닙니까? 나라가 하는 일을 신하가 따지지 말라. 그저 충성하라. 충성!

 

화폐에 찍힌 인물은 그 나라가 지향하는 미래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개척 정신과 미래 지향적인 호주 같은 나라는 여성을 선정해도 호주 최초로 성공한 여성 사업가이자 자선사업가인 메리 라이비를 20달러에 등장시킨다니까요. 우리가 보수적이라고 말하는 일본도 2004년에 처음으로 화폐에 여성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여성인지 아십니까? 자식을 잘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를 잘한 아름답고 현명한 '일본여성' 현모양처가 아니라, 24살에 요절한 소설가랍니다. 1872년에 태어난 여성이니까, 여성 소설가가 드물던 19세기 일본에서 남성들 틈바구니 속에서 소설을 쓰고 새로운 인생을 꿈꾼 여성이랄까요? 참 일본이 다시 보이는 대목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말해봅니다. 정말 우리나라 지폐에 찍힌 인물들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신사임당뿐이 아닙니다. 이순신, 이황, 이이, 세종대왕이십니다. 다들 조선시대 인물이시죠. 박정희 대통령 때 선정한 인물입니다. 유교 사상을 강조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각이시랍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변해도 그 정신은 지금도 면면히 전해 내려오는 걸까요? 은행관계자분들이 그대로 전해 내려와서 그런 걸까요?

 

혹시 모르실까봐, 이분들을 위해 한 마디 해봅니다. 한국은행측과 전문가 8분? 지금 21세기라네요. 해마다 발표되는 여성 지위 지수에서 모로코 같은 이슬람권과 경쟁하는 우리나라지만, 그런 우리나라도 여성이 한 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 국무총리가 되는 시대입니다. 딸이라고, 내 딸이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만 되는 게 아니라, 자기 일을 가지고 사랑하는 '멋진' 사람이 되길 바라는 아버지들이 수두룩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한국은행측은 어쩌면 이리 시대착오적이고, 봉건적이실까요? 또 왜 우리 지폐엔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발전시킨 인물들이 아니라, '임금' 아니면, 임금의 역할과 신하의 역할, 부모의 역할과 자식의 역할, 그리고 양반이란 계급 사회를 떠받들던 유교 학자와 조선시대 인물만 있을까요?

 

지금 우리 돈이 본받으란 인물은 말이지요, 신하는 대통령이라는 임금에게 무조건 충성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무조건 효를 다하고, 여성은 남자가 나라를 세우고 회사를 세울 수 있도록 집에서 집안일에 전념하고 아이를 잘 키우는 게 최고라고 말하고 싶으신 거 아닌가요?

 

아. 정말 왜 이러세요. 화폐에 들어갈 인물 선정을 위해 각계 전문가 8인을 포함해 꾸리셨다는 그 '화폐도안자문위원회' 말인데요. 혹시 그 전문가가 '공자님'을 모시는 '유교 전문가' 아니세요?

 

화폐에 새기는 첫 위인 여성이 '신사임당'이라니요. 신사임당, 누가 좋아하시는데요? 차라리 장금이를 넣지 그러셨어요? 혹시 알아요? 그럼 5만 원권 지폐가 불티나게 팔리고, 되레 웃돈까지 얹혀 팔리는 진풍경이 연출될 지요? 한류 인기 상품으로요? 물론 '장금'이 얼굴은 이영애고요. 그렇다면 지금처럼 여성을 뽑아놓고도 '여성계'에게 욕을 바가지로 드시는 사태가 아니라, 외국에서도 '환호'가 몰아쳤을지 아나요?


태그:#지폐, #신사임당, #김구,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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